홍콩현대무용단 CCDC, 혁신적 무대 《Mr. Blank 2.0》로 한국 첫 공연 성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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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을 대표하는 현대무용단 CCDC(시티컨템포러리댄스컴퍼니)가 대표작 《Mr. Blank 2.0》을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며 관객의 깊은 호응 속에 막을 내렸다. 이번 공연은 ‘홍콩위크 2025@서울’의 공식 프로그램으로, 홍콩특별행정구 정부 레저문화서비스부가 주최하고 CCDC가 제작·공연했다. 지난 10월 24일과 25일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에서 열린 무대는 무용과 영상, 디지털 기술이 결합된 크로스미디어 퍼포먼스로, 유리벽과 실시간 영상 장치를 활용해 ‘관찰자와 관찰당하는 자’의 경계를 허물며 감시와 기억, 정체성이라는 현대 사회의 주제를 강렬하게 시각화했다. 2018년 초연 이후 꾸준히 진화를 거듭해온 이 작품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일상을 지배하는 시대에 인간이 겪는 혼란과 각성의 순간을 신체 언어로 풀어내며, 동시대 무용이 도달할 수 있는 새로운 표현의 지점을 제시했다.

이번 공연은 미국 작가 폴 오스터의 『기록실로의 여행』에서 영감을 받아 인간의 기억과 기록, 그리고 진실을 향한 탐구를 무용화한 작품이다. 안무가 상지자(Sang Jijia)는 유리벽으로 관객과 무용수를 분리하고,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밀폐된 공간 안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투사하며 감시 사회의 긴장감을 극대화했다. 무용수들의 절제된 움직임과 영상의 중첩, 조명과 사운드의 섬세한 조율은 실제와 가상이 교차하는 무대 위에서 관객 스스로를 ‘관찰자이자 피관찰자’로 느끼게 했다. 상지자는 “기술이 인간을 끊임없이 기록하는 시대에 우리는 얼마나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무용이라는 매체를 통해 인간 존재의 불안과 회복을 탐색했다. 작품은 제21회 홍콩댄스어워즈에서 최우수 안무상, 중극장 프로덕션상, 남성 무용수상, 조명·시각디자인상 등 4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평단의 극찬을 받았으며, 한국 무대에서도 그 예술적 완성도를 입증했다.

1979년 창단된 홍콩현대무용단은 200편이 넘는 창작 레퍼토리를 발표하며 아시아 현대무용의 선두에 서 왔다. 2025년 새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상지자는 발레 프랑크푸르트와 포사이드 컴퍼니에서 활동하며 윌리엄 포사이드에게 사사받은 안무가로, 무용과 디지털, 드라마투르기를 결합한 실험적 작업을 통해 국제적 명성을 쌓았다. 그는 2024년 제25회 홍콩댄스어워즈 ‘우수 작품상’, 제18회 홍콩아트디벨롭먼트어워즈 ‘올해의 예술가(무용)’를 수상하며 홍콩 무용계의 대표적인 창작자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도 영상 디렉터 올리버 싱(Oliver Shing), 드라마투르그 멜리사 렁(Melissa Leung) 등 다국적 창작진과 협업해 영화적 리듬과 무용의 생동감을 결합한 입체적 무대를 완성했다.

공연과 함께 마련된 대화 프로그램도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10월 22일 인사동 고트에서 열린 ‘무용과 드라마투르기에 관한 대화’에서는 홍콩과 한국의 예술가들이 창작과 해석의 언어를 공유했고, 24일 공연 종료 후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상지자와 올리버 싱이 창작 과정과 무용·영상 융합의 실험을 나누며 관객들과 예술의 본질에 대해 소통했다.

《Mr. Blank 2.0》은 홍콩 현대무용이 지닌 기술적 정교함과 개념적 깊이를 동시에 보여준 무대로, 감시 사회 속 인간의 자아를 탐구하는 예술적 성취를 완성했다. 공연을 마친 강동아트센터에는 관객들의 긴 박수와 탄성이 이어졌으며, CCDC는 이번 한국 공연을 통해 아시아 현대무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