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인간의 조건 (Part 2) - 한나 아렌트

인간은 공적 영역에서 순수하게 드러내고 상호 고양되는 경험을 가져야 인간의 삶을 증진시킬 수 있다. 공적 영역에서 순수하게 존재를 드러내는 ‘행위’는 인간의 다원성과 유사성 때문에 창발적으로 새로운 권력을 창출한다. 이 권력은 내부통제의 권력이 아니라 공동체 내외부의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 근원적인 힘을 말한다. 공적 영역이 잘 유지됨으로써 창발적인 권력이 나타난 가장 크고 알기 쉬운 사례는 ‘과학기술계’이다. 수학자와 과학자는 순수하게 자신을 과학기술계에 드러낸다. 흔히 이야기하는 명예욕이나 인지 욕망만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고 많은 과학인들이 고백하고 있다, 진정한 세계 확장은 명예욕 같은 것으로 이루어 낼 수 없는 것이다. 공적 영역이 잘 유지되고 인간이 공적 영역에 순수하게 참여한다면 공동체와 인간 모두 삶의 의미를 증진할 수 있다.


근대를 지나면서 정치는 고대의 공적 영역인 폴리스 정치와 달리 내부통제의 권력배분에 몰두하는 구조가 되고 있다. 우리는 쉽게 의회나 사회, 직장 같은 곳을 공적 영역이라 부르지만, 현대의 그곳에서 공적 영역의 본래 의미를 찾기는 어렵다. 현대의 인간은 사적 영역도 공적 영역도 참여할 수 없어 ‘세계 소외’의 존재가 되고 있다.


‘행위’가 이루어지는 공적 영역도 창발적인 권력이 불가역적이고 불가측적이기 때문에 항상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근본악’이 잉태되는 곳은 이 곳이다. 그 권력이 ‘선’이라고 착각할 때, 맹목적으로 그것을 따를 때, 히틀러와 스탈린 같은 전체주의의 ‘근본악’이 나타나고 우리의 이웃이 ‘악의 평범성’을 드러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처벌할 수 없는 ‘근본악’으로부터 인간이 벗어 날 수 있는 방법은 과거를 ‘용서’하고 미래를 위해 ‘약속’하는 것이다. ‘근본악’은 개인의 악이 아니고 나와 우리 모두가 저지른 ‘악’이므로, ‘용서’함으로써 나와 우리의 기억을 정화하고, 정화된 기억으로 힘을 얻고, 그 힘으로 ‘미래’를 위한 ‘약속’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용서’와 ‘약속’을 통해 우리의 시간을 존재적 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상의 내용이 ‘인간의 조건’의 개괄적인 내용이다. 본문에는 이 내용 이외에도 ‘생산’, ‘소유’,  ‘존재’, ‘욕망과 가치’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이 있다. 내가 요약한 이른바 이 줄거리 외에 독자는 이 책을 읽고 다른 줄거리를 구성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하시길 바란다. 이 책은 내용과 맥락에서 현대적 인간의  ‘시간과 존재’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포함한 책이다. 나에게는 ‘존재와 시간’을 쓴 하이데거가 쓰겠다고 공언하고, 쓰지 못한 ‘시간과 존재’의 원형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현대의 기업경영은 복잡하다. 그러나 아무리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도 기업의 기본은 가치의 지속적인 제공이라는 활동이다.  경영은 가치를 통합하는 노력을 통해서 기업을 지속하려는 행위이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통해 존재의 시간이 지속되고 있음을, 그러나 마침내 과거는 지속될 수 없으며 새로움이 시작되었다는 경고의 행위이다. 



이 책은 인간 존재는 스스로 ‘근본악’을 잉태하여 세계를 파괴할 수 있고, 존재 스스로 ‘용서’와 ‘약속’을 통해 새로움을 만들어 내야만 지속될 수 있는 ‘시간 내의 존재’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현대의 경영과 예술은 복잡성 때문에 방향을 잃기 쉽다. 경영자는 기업의 지속을 위해 인간의 노력을 효율적으로 통합해야 하는 데, 한나 아렌트는 지속을 위해 인간의 ‘노동’과 ‘작업, ’ 행위’를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는지를 알려 주고 있다. 기업 구성원의 창발적 활동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하는 기업 경영자에게, 아름다움을 드러냄으로써 새로운 힘의 출현과 존재의 가능함을 보여주어야 하는 예술가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 책이다.


이 책을 소개하는 두 번째 이유는 이 책이 철학계에서는 드물게 여성 철학자가 쓴 책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세계 이해의 기초를 사유하는 학문이고, 이성적인 세계관을 요구한다. 철학 영역은 주로 남성만이 참여하여 왔기 때문에, 남성들의 세계 인식을 기초로 하고 있고 남성의 가치 이해를 기초로 만들어져 왔다. 다시 말하면 여성의 세계 이해는 배제되거나 축소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성이 보는 세계는 배제되어 반쪽 짜리 세계, 혹은 절반에 의해 구성된 세계를 전부라고 착각하는 현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철학적 사고는 이성적인 사고이지만, 그 이성은 감각에 의존한다. 절대적으로 이성의 세계라고 믿는 수학의 세계 조차도 수학자들에게는 수학이 우리의 감각을 초월했는지 의심을 받는다. 게다가 철학적 진술은 세심하게 자신의 이성을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진술자 자신의 세계 인식을 더 세밀하게 보여주는 결과를 얻는다. 비록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자신의 감각과 가치와 세계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성의 철학서에서 우리는 남성의 세계관에 덜 영향받은 여성의 이성적 세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 여성이 보는 세계 이해를 짐작할 수 있다면 독자는 더 넓은 세계 이해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시 경영자와 예술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여성 철학자의 결을 읽어내면서 이 책을 읽는다면, 경영자는 새롭게 얻은 절반의 가치 수요를 알게 될 것이고, 예술가는 새로운 세계 확장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감각이 바뀌면 가치가 바뀌며, 가치가 바뀌면, 우리의 관계와 힘을 재배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성 혹은 다양한 ‘젠더’라는 감각의 다양성을 더 잘 이해한다는 것은 경영자와 예술가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이자 세계 확장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인터넷 이후에 새로운 기술 변혁의 방향은 AI와 빅데이터 같은 정보처리의 영역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변혁의 방향은 인간의 편익을 증진시킬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존재의 지속을 저해하는 잠재적 위험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한나 아렌트의 ‘근본악’은 ‘존재의 지속을 저해하는 힘’에 관한 이야기이다. ‘악의 평범성’은 개인이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우리의 일상을 세계가 암시하는 방향으로 무심하게 따라갈 때, 우리 개인이 저지를 수 있는 ‘악’에 관한 이야기이다. 새로운 AI의 세계에서 우리의 존재를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은 지금까지의 이성의 세계가 구축한 현재보다 더 확장된 이성의 세계, 즉 확장된 ‘세계 이해’를 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이 책은 읽기가 수월하지 않다. 수많은 고대 철학자들의 이름을 호출하고, 그들의 사상의 편린을 예시하며, 많은 각주를 포함한다. 하지만 한나 아렌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큰 줄거리를 놓치지 않으려는 주의를 기울이면서 읽는다면, 인간 존재의 활동과 시간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여성’으로, ‘유태인’으로, ‘여성 철학자’로, 예민한 ‘천재’로, 자신이 속한 모든 곳에서 비주류로 살아 간 사람이다. ‘인간의 조건’은 고독을 온몸으로 겪어 낸 사람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절규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시대를 소외와 상처로 살아내고, 후대에 큰 사상적 영향을 미친 한나 아렌트에게 쓸쓸한 경의를 바친다.


- 다음의 책은 존 러스킨의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를 통해 ‘돈의 의미’를 소개합니다.





경영컨설턴트로 경영혁신, M&A, 벤처투자 등의 일을 하며 20대(1984)부터 10년을 보냈다. 인터넷 사업(1995)과 포스트인터넷사업(건축,2002)을 하면서 30대 이후 10년을 보냈고, 이후 경영전략, 인터넷, 지식, 건축, 문화에 관한 생각과 실천을 삶의 모토로 생각하면서 지낸다. 경영과 예술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책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클래식기타를 취미로 하고 최근 유투브에 기타곡과 자작곡을 올리기도 한다. (etime2b@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