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8.28(금) - 2026.9.23(수)
🏛️ 누크갤러리
📍 서울시 종로구 평창34길 8-3
⏰ 화-토 11:00-18:00 / 공휴일 13:00-18:00 / 일·월 휴관
💬 02-732-7241 / nookgallery1@gmail.com

누크갤러리가 서동욱과 안경수의 2인전 《회화의 이름: 이방인과 연출가》를 8월 28일부터 9월 23일까지 선보인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현실에 접근해온 두 화가의 신작 25점을 통해 오래됐지만 여전히 유효한 질문, ‘회화란 무엇인가’를 다시 꺼내는 전시다.
《회화의 이름》은 누크갤러리가 매년 하반기 첫 전시로 이어온 기획전이다. 제목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출발했다. 사라진 장미 뒤에 이름만 남는다는 소설의 문장처럼, ‘회화 또한 덧없이 남아 있는 이름뿐일까’라는 물음을 서로 다른 두 화가의 작업을 나란히 놓으며 탐색해왔다.
2022년부터 노충현과 샌정, 김지원과 최진욱, 서용선과 옥승철, 유근택과 정용국 등 서로 다른 세대와 방법론을 지닌 작가들이 참여했다. 올해 서동욱과 안경수의 전시는 이 연례 기획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전시이기도 하다.
이방인의 풍경, 연출가의 장면
이번 전시의 부제인 ‘이방인과 연출가’는 두 작가가 스스로 자신의 태도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말에서 가져왔다. 같은 회화라는 매체를 사용하지만 현실을 화면으로 옮기는 방식은 뚜렷하게 갈린다.
안경수가 현실을 관찰하는 ‘이방인’에 가깝다면 서동욱은 현실의 한 장면을 구축하는 ‘연출가’에 가깝다. 전시 서문을 쓴 화가 노충현은 이 차이를 두 사람이 현실에 접근하는 근본적인 태도의 차이로 짚는다.
안경수의 화면에는 공터와 낡은 건물, 공장, 버려진 수영장처럼 도시의 중심에서 비껴난 풍경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서울 근교 여러 지역에서 거주와 작업실을 옮겨온 그는 장소를 익숙한 내부자의 시선보다 경계인이자 관찰자의 위치에서 바라본다.
특정 장소를 충실히 기록하는 데 머무르기보다 한때 머물렀던 ‘어떤 자리’의 감각을 회화로 옮긴다. 대상을 미화하거나 극적인 풍경으로 바꾸기보다 화면 전체를 고른 밀도로 채우면서 그곳의 스산함과 습도, 온도까지 붙잡으려 한다.
신작 '펜스 아래 수영장'과 '깊고 엷은', '사무동', '공허한' 등에서도 이러한 관심은 이어진다. 방치된 구조물과 식물, 물과 건축물의 표면이 한 화면에 얽힌다. 근경과 원경의 깊이가 압축된 화면에서는 특정한 장소를 바라보는 일과 물감으로 만들어진 평면을 바라보는 일이 겹친다.
서동욱이 연출하는 ‘젊음이라는 시간’
서동욱은 사람과 실내, 밤을 오랫동안 그려왔다. 초기에는 사진의 형식을 회화로 다시 기록했다면 최근에는 영화의 미장센을 참조해 인물과 공간의 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구성한다.
특히 그의 화면에서 반복되는 것은 ‘젊음’이다. 여기서 젊음은 단순히 인물의 나이를 뜻하기보다 지속될 수 없는 시간과 그 뒤에 따라오는 상실감, 우울의 정서에 가깝다.
작업 방식도 변화했다. 지인을 직관적으로 그리던 방식에서 배우를 섭외하고 장소를 물색해 장면을 만드는 방식으로 확장됐다. 단독 인물에 집중했던 화면에는 두 사람 사이의 거리와 관계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기 작업에서 카메라 플래시처럼 강한 빛이 인물을 비췄다면 최근 작품에서는 그림자가 옅어지고 빨강, 노랑, 파랑, 녹색 등의 밝은 색조가 화면 전반으로 퍼진다. 하지만 화면이 밝아졌다고 해서 그가 지속해온 멜랑콜리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물 사이의 공백과 정적인 분위기가 화사한 색채 뒤에서 두드러진다.
'안마당의 문을 두드리며', '유소의 여름', '무제', 'The Lonely one', '티비를 켜고 나서' 등의 신작은 인물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만큼 인물과 주변 공간 사이에 만들어진 거리를 눈여겨보게 한다. 영화의 한 쇼트처럼 앞뒤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지만, 서사는 화면 안에서 완결되지 않는다.
두 화가 사이에서 다시 묻는 회화의 이름
한쪽에는 도시 주변부를 낯선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는 풍경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인물과 장소를 선택해 하나의 순간을 만들어내는 장면이 있다. 안경수가 눈앞의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풍경을 붙잡는다면, 서동욱은 현실의 요소를 조율해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순간을 만든다.
두 사람의 차이는 이번 전시를 단순한 풍경화와 인물화의 대비에서 벗어나게 한다.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현실을 어떤 태도로 바라보고, 그것을 어떻게 회화의 평면으로 옮기는가가 중심에 놓이기 때문이다.
《회화의 이름》이 지난 몇 년간 서로 다른 화가들을 한자리에 불러온 이유 역시 특정한 회화 양식이나 흐름을 정의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를 질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연례 기획의 마지막에 선 《회화의 이름: 이방인과 연출가》는 그래서 하나의 답을 내놓기보다 질문을 조금 바꿔 남긴다. ‘회화란 무엇인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것 가운데 과연 무엇을 회화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이미지 제공|Courtesy of the artist and nook gallery, Seoul
📅 2026.8.28(금) - 2026.9.23(수)
🏛️ 누크갤러리
📍 서울시 종로구 평창34길 8-3
⏰ 화-토 11:00-18:00 / 공휴일 13:00-18:00 / 일·월 휴관
💬 02-732-7241 / nookgallery1@gmail.com
누크갤러리가 서동욱과 안경수의 2인전 《회화의 이름: 이방인과 연출가》를 8월 28일부터 9월 23일까지 선보인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현실에 접근해온 두 화가의 신작 25점을 통해 오래됐지만 여전히 유효한 질문, ‘회화란 무엇인가’를 다시 꺼내는 전시다.
《회화의 이름》은 누크갤러리가 매년 하반기 첫 전시로 이어온 기획전이다. 제목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출발했다. 사라진 장미 뒤에 이름만 남는다는 소설의 문장처럼, ‘회화 또한 덧없이 남아 있는 이름뿐일까’라는 물음을 서로 다른 두 화가의 작업을 나란히 놓으며 탐색해왔다.
2022년부터 노충현과 샌정, 김지원과 최진욱, 서용선과 옥승철, 유근택과 정용국 등 서로 다른 세대와 방법론을 지닌 작가들이 참여했다. 올해 서동욱과 안경수의 전시는 이 연례 기획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전시이기도 하다.
이방인의 풍경, 연출가의 장면
이번 전시의 부제인 ‘이방인과 연출가’는 두 작가가 스스로 자신의 태도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말에서 가져왔다. 같은 회화라는 매체를 사용하지만 현실을 화면으로 옮기는 방식은 뚜렷하게 갈린다.
안경수가 현실을 관찰하는 ‘이방인’에 가깝다면 서동욱은 현실의 한 장면을 구축하는 ‘연출가’에 가깝다. 전시 서문을 쓴 화가 노충현은 이 차이를 두 사람이 현실에 접근하는 근본적인 태도의 차이로 짚는다.
안경수의 화면에는 공터와 낡은 건물, 공장, 버려진 수영장처럼 도시의 중심에서 비껴난 풍경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서울 근교 여러 지역에서 거주와 작업실을 옮겨온 그는 장소를 익숙한 내부자의 시선보다 경계인이자 관찰자의 위치에서 바라본다.
특정 장소를 충실히 기록하는 데 머무르기보다 한때 머물렀던 ‘어떤 자리’의 감각을 회화로 옮긴다. 대상을 미화하거나 극적인 풍경으로 바꾸기보다 화면 전체를 고른 밀도로 채우면서 그곳의 스산함과 습도, 온도까지 붙잡으려 한다.
신작 '펜스 아래 수영장'과 '깊고 엷은', '사무동', '공허한' 등에서도 이러한 관심은 이어진다. 방치된 구조물과 식물, 물과 건축물의 표면이 한 화면에 얽힌다. 근경과 원경의 깊이가 압축된 화면에서는 특정한 장소를 바라보는 일과 물감으로 만들어진 평면을 바라보는 일이 겹친다.
서동욱이 연출하는 ‘젊음이라는 시간’
서동욱은 사람과 실내, 밤을 오랫동안 그려왔다. 초기에는 사진의 형식을 회화로 다시 기록했다면 최근에는 영화의 미장센을 참조해 인물과 공간의 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구성한다.
특히 그의 화면에서 반복되는 것은 ‘젊음’이다. 여기서 젊음은 단순히 인물의 나이를 뜻하기보다 지속될 수 없는 시간과 그 뒤에 따라오는 상실감, 우울의 정서에 가깝다.
작업 방식도 변화했다. 지인을 직관적으로 그리던 방식에서 배우를 섭외하고 장소를 물색해 장면을 만드는 방식으로 확장됐다. 단독 인물에 집중했던 화면에는 두 사람 사이의 거리와 관계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기 작업에서 카메라 플래시처럼 강한 빛이 인물을 비췄다면 최근 작품에서는 그림자가 옅어지고 빨강, 노랑, 파랑, 녹색 등의 밝은 색조가 화면 전반으로 퍼진다. 하지만 화면이 밝아졌다고 해서 그가 지속해온 멜랑콜리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물 사이의 공백과 정적인 분위기가 화사한 색채 뒤에서 두드러진다.
'안마당의 문을 두드리며', '유소의 여름', '무제', 'The Lonely one', '티비를 켜고 나서' 등의 신작은 인물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만큼 인물과 주변 공간 사이에 만들어진 거리를 눈여겨보게 한다. 영화의 한 쇼트처럼 앞뒤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지만, 서사는 화면 안에서 완결되지 않는다.
두 화가 사이에서 다시 묻는 회화의 이름
한쪽에는 도시 주변부를 낯선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는 풍경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인물과 장소를 선택해 하나의 순간을 만들어내는 장면이 있다. 안경수가 눈앞의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풍경을 붙잡는다면, 서동욱은 현실의 요소를 조율해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순간을 만든다.
두 사람의 차이는 이번 전시를 단순한 풍경화와 인물화의 대비에서 벗어나게 한다.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현실을 어떤 태도로 바라보고, 그것을 어떻게 회화의 평면으로 옮기는가가 중심에 놓이기 때문이다.
《회화의 이름》이 지난 몇 년간 서로 다른 화가들을 한자리에 불러온 이유 역시 특정한 회화 양식이나 흐름을 정의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를 질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연례 기획의 마지막에 선 《회화의 이름: 이방인과 연출가》는 그래서 하나의 답을 내놓기보다 질문을 조금 바꿔 남긴다. ‘회화란 무엇인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것 가운데 과연 무엇을 회화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이미지 제공|Courtesy of the artist and nook gallery, 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