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서용선 - 회상, 소나무


📅 2022. 12. 09 - 2023. 01. 28

🏛️ 갤러리JJ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로745

⏰ 화-토 11am-7pm (일, 월요일 휴관)

❓galleryjjinfo@gmail.com


서용선, 암태도 소나무 Amtaedo Pine trees, 2022, Acrylic on canvas, 45.8 x 60.8cm ©서용선, 갤러리JJ


갤러리JJ는 ‘그리기’를 중심으로 인간 탐구를 실천해오고 있는 작가 서용선의 개인전을 다시 마련하였다. 이번에는 소나무를 주제로 한다. 40여년전 그의 작업이 처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일련의 <소나무> 회화 연작으로, 서용선 회화의 초석이자 출발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작업의 근원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드로잉 2점을 포함한 2022년의 신작 소나무 풍경 그림 9점을 새로 발표한다. 초기 드로잉들과 당시 작가가 찍은 소나무 사진 자료가 전시된다. 전시는 초기 작가가 실험하고 모색하였던 회화적 비전으로 소나무 풍경이 어떻게 당대성을 획득했으며, 그것이 던지는 오늘날의 화두와 영향은 무엇인지 최근까지 전개된 변화 등에 주목한다. 그동안 우리가 서용선 작업으로 익히 봐왔던 인물, 역사와 도시 삶의 이미지에서 한발짝 물러나서 어쩌면 ‘소나무’가 가진 상징성에, ‘산수’ 혹은 ‘풍경’ 그림에, 우리를 둘러싼 자연과 너머의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우리의 시선을 잠시 돌리게 한다.


서용선, 숲 Forest, 1989, 1990, Oil on canvas, 80 x 130cm ©서용선, 갤러리JJ


1980년대 초반의 3년가량은 소나무 작업의 비중이 컸고 80년대 중반부터 <노산군 일지>를 비롯한 역사화와 도시인 연작들이 주로 내보이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현실 삶의 맥락에서 전개되어 왔다. 이번 전시에서 소나무 작업은 1991년에서 2009년으로 건너뛴다. 풍경을 테마로 하는 작업은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선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산·수(山·水)>(리씨갤러리) 전시는 작가의 풍경을 전통적 산수의 관점으로 바라보았다. 작가가 그려온 풍경 역시 작가의 화폭에서 그저 미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거기에는 문화와 역사적 삶의 흔적이 깃든 자연 혹은 온전히 자신의 몸 감각으로 마주한 낯선 자연풍광들이다.


전시에 나온 최근작 중 특히 담백한 구성의 <겨울소나무>(2022) 그리고 <겨울산책>(2022), <소나무 아래에서>(2022) 같은 경우, 보기에도 사람이 부재하던 예전의 소나무 작업과는 다르다. 풍경화보다 거리 인물 풍경 같고, 얼핏 자연의 소나무와 인간이 함께 있는 전통 산수화를 떠올린다면, 산수화의 현대적 버전인 듯 전통과 현대가 통합된 작업으로 보인다.


서용선, 소나무 Pine trees, 1983, 1986, Oil on canvas, 100 x 60cm ©서용선, 갤러리JJ


작가는 늘 그래왔듯이 눈 앞에 있는 현상을 그대로 선입견 없이 보여주려고 하며, 소나무라는 현실 속 대상을 매개로 그 뒤편에 펼쳐진 하늘, 자신을 둘러싼 우주공간을 지향한다. 이렇듯 세계를 지향하여 그 본질을 파악하려는 시도는 40여년전 초기 소나무 그림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이러한 ‘판단 정지’의 서구 현상학적 태도는 현재까지 서용선 작업의 특징이 된다.


우리 주위에 흔하게 보이는 소나무는 한국인의 상징체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십장생 중의 하나로 변하지 않는 색과 생명력으로 보편성, 동양인들의 세계관을 반영하며, 또한 사군자와 함께 문인화, 동양 수묵화의 소재로 한민족의 정서를 간직하고 있다. 당시 사회는 전통 산수화에 대한 관심이 거의 사라졌고 작가 자신 역시 서양화의 길을 선택하였으나 오히려 그때 중국 명말청초 시대의 화가인 석도의 소나무 그림, 간송미술관 전시 등을 통해 동양 산수화 정신, 그리고 우리의 진경문화, 조선성리학과 산수의 관계 등을 스스로 알아가면서 전통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었다고 회상한다. 서로 다른 사유와 경험에서 나오는 동서양의 감각 사이에서, 살면서 몸에 밴 것들에 대한 궁금증과 선택이었다. 특히 작가가 인상 깊게 체험한 석도의 소나무 그림들은 우주의 깊이를 보여주고 세계와 이를 관조하는 화가의 의식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서용선, 소나무 Pine tree, 2022, Acrylic on canvas, 116.5 x 90.8cm ©서용선, 갤러리JJ


자연관에서나 미학에서나 서양의 풍경화와 동양의 산수화는 다르다. 서용선의 소나무 풍경은 유한한 대상 너머 전체 우주의 생기를 표현하려고 했던 전통 산수화의 정신이 은연 중에 반영되어 있다. 초기 소나무 풍경의 비가시적 공간은 이렇게 기운생동하는 수묵화의 먼 공간과 시간으로부터 한 갈래가 나온다. 


“내가 그린 초기의 소나무는 실제 자연에서 그려낸 소나무가 아니고, 소나무라는 개념과, 사물을 보면서 내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 혹은 형태 인식에 대한 실제세계와 그것을 받아들인 지각적 감각에 대한 관계를 ‘그림 그리기’라는 과정을 통해 해결해 나가는 것이었다.” –작가노트, 2022.10- 


오래지 않아 작가는 자연풍경을 개념 등의 선입견 없이, 직접 살아 움직이는 몸 감각으로 만나고 표현하면서 작품은 표현적 색채와 물성을 드러낸다. 인간이 보는 세계는 그것을 감각하고 사유하는 인간의 몸과 분리될 수 없다. 소나무 풍경화는 몸의 만남과 사유를 통해 광활한 우주공간의 깊이를 느끼고, 현실 풍경을 보편적 속성으로 재구축하고자 한다.


 서용선, 겨울 소나무 A Winter Pine tree, 2022, Acrylic on canvas, 58.5 x 64cm ©서용선, 갤러리JJ


<겨울 소나무> 등 최근작에서 새삼 산수화의 회상을 꺼내 든 것에 대해 작가는 “오랜 시간이 흐른다면, 이러한 그림에 대한 공감과 애착은 휩쓸려오는 새로운 과학문명에 대한 어떤 저항감이나 과학문명이 놓치고 있는 삶의 리듬을 유지하려는 자의식의 발동일 수도 있다.”라고 말한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소나무 작품들이 말을 걸어온다. 과거와 현재,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몸과 자연 그 시공간적 깊이에서… 이번 전시는 소나무 그림을 발표한 지 40여년이 지난 지금, 서용선 작업의 축적된 깊이만큼 새로운 화두로 이어질 것을 기대한다. 


“최근에 나는 내 그림그리기의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초기의 흑백 소나무의 흰색 여백이 은연 중 산수화 여백과 나의 감각이 미치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지향성의 표현이다. 이후의 소나무 그림들은 붉은색 소나무 줄기와 짙은 녹색이 뒤섞인 강한 원색의 그림들이다. 소나무 그림들은 주관적인 표현으로 흘러갔다.” –작가노트, 2022.10-



- 강주연 Gallery JJ Director 글 중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