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접는 도시 ≫ - 을지예술센터


2021. 11. 27 - 2022. 01. 23

을지예술센터

위치: 서울특별시 중구 창경궁로 5다길 18 을지예술센터

관람시간: 화~일 오후 1시~오후 8시, 매주 월요일 및 공휴일 휴관

전시 문의: 02-6956-3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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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예술센터는 도시 공장의 역할을 하던 과거의 을지로에서 부터 다양한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 현재의 을지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욕구와 갈등이 맞물리는 현실에 상생하기 위한 전시 <접는 도시> 를 2021년 11월 27일부터 2022년 1월 23일까지 개최한다. 한정된 구역 안에 수많은 사람이 공간에 부딪히지 않고 공존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넘나들지 않으면서 마주칠 수 있는 접점과 구분이 필요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권지현, 김자현, 민찬욱, 박소선, 이준영, 김슬기, 김준수, 정희민 8명의 작가들의 시선을 따라 을지로의 근미래를 염탐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전시는 무료 관람.


권지현, 당신의 어깨에 올라앉고 말테다, 천과 석고, 가변크기, 2021. ©권지현, 을지예술센터


을지로라는 도시는 현재 '틈', 즉 사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도시이다. 점차 거대도시로 확장될 을지로에서 우리는 불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당신 어깨에 올라앉고 말테다>는 확장의 효율을 추구하기 위해 매끈해진 거대도시와 그 매끈함 속에서 발견되는 균열에 집중한다. 이 매끈함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사람들의 활동이 정지된 밤에만 이루어지게 되는데, 밤이 되면 비로소 우리는 도시의 균열인 '틈'을 볼 수 있다. 작품을 구성하는 패브릭 기둥들은 마치 도심의 빌딩을 떠올리게 하는데, 기둥 사이사이로 보이는 '틈'이 관람객의 어깨에 닿는 순간 거대도시의 균열을 목도하며 도시의 완전성과 그 궁극적 불가능성을 떠올리게 한다.


김슬기, 청키 토템 시리즈 1-5, 혼합매체, 가변크기, 2021. ©김슬기, 을지예술센터


산맥을 휘어감는 용의 형상이 표현된 'Chunky Totem Series'는 하나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5개의 모듈 조각이다. 이 용의 형상은 메타버스 속에 사는 미래 무당이야기 <SF 산신 할머니>에 등장한 이면용을 상징하는 쌍두 형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난세의 영웅 탄생을 암시하는 이면용, 이 용의 형상이 담긴 조각은 마치 유물이나 신물처럼 보이며, 기능이 사라지고 실체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도드라지게 보이는 아크릴, MDF 등 현대 산업을 상징하는 물성은 가상 유물의 시간성을 교란시키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작품은 우리가 바라는 이 도시의 '구복'이라는 것이 무엇일지 질문하게 한다.


김자현, 미., 피아노, 전자음향, 5분 7초, 2021. ©김자현, 을지예술센터


<E.>는 전시 공간에 공기처럼 흐르고 있는 음악이다. 악기 중 '철'이 가장 많이 들어 있는 피아노와 을지로 거리에서 녹음된 소리를 혼합하여 만들어졌다. 자연배음에 해당하는 조화로운 진동은 희망찬 미래를 향하고 피아노는 을지로(Eulji-ro)의 머리글자인 E음의 배음(overtone)을 연주한다. 존재하지만 들리지 않는 배음으로 구성된 음악은 언젠가 현실이 되겠지만 아직은 그릴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미래를 상상한다. 피아노는 가볍고 편안하지만, 동시에 들리는 전자음으로 전환된 을지로의 소리는 묘한 불안감을 자아내면서, 도시가 겪는 불안을 소리로 풀어낸다.


김준수, 감각의 요소 ver.3, DC 모터, 스테인리스 스틸, 24 프리즘, 베어링, 80x80x10cm, 2021. ©김준수, 을지예술센터


을지로 철공소 골목을 지나 마주하는 <Element of sense ver3>는 지금의 도시 을지로와 이후의 도시 을지로의 경계를 감각하는 '텔레포트'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에 등장할 것 같은 이 작품은 시계처럼 서서히 운동하며 다양한 색의 빛을 공간에 펼쳐 놓는다. 수치적 완결성을 담보로 하는 계산된 메탈의 움직임과 미세하게 조정된 빛은 도시, 을지로의 물리적 전환에 대한 고민을 소환한다.


민찬욱, 타임 오브젝트 #2, 스틸, 레진, 모터, 전자기기, 전선, 가변크기, 2021. ©민찬욱, 을지예술센터


기술의 발달로 일상의 온-오프라인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경험과 감각의 체계는 새롭게 구축되고 있다. 온라인의 경험은 오프라인에서 재경험되고, 오프라인의 경험은 온라인에서 다시 확장된다. <타임 오브젝트 #2>는 각각 다른 체계로 움직이는 14개의 시계 중심에 표준 시간대의 시계가 움직이고 있는 설치 조형물이다. 벽에 설치된 각각의 시계는 다른 속도로 움직이다가 일정 간격으로 오프라인 시계에 맞추어 시스템이 리셋되는데, 이 순간은 마치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순간을 닮았다. 저마다 다른 속도를 가진 시계 소리의 중첩은 각기 다른 속도의 시간을 경험하는 현대사회의 모습이다. 작가는 온라인 공간의 경험이 확장될 근미래 도시의 시간에 대해 질문한다.


박소선, 을지로에는 공원이 없다, 멀티채널 영상 프로젝션, 실시간 3D 컴퓨팅, 인터렉티브 웹, 2021. ©박소선, 을지예술센터


을지로의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를 상상하며 3D 공간을 구축했다. 하오징팡의 소설 『접는 도시』 속 사람들이 시간에 따라 구역을 나누어 사용하는 것처럼 을지로는 무엇이든 만드는 기술인, 무엇이든 만들고 싶은 예술가와 메이커, 맛집과 네온 불빛 아래 골목을 탐방하는 관광객들이 시간을 나누어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작품에는 섞일 듯 섞이지 않는 을지로의 다양한 모습을 3개의 구역으로 나누고, 접점에 공원을 만들었다. 공원은 고갈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며, 3개의 구역을 횡단할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다. 을지로의 구역을 횡단하며 걷다 보면 미래 도시의 공존을 위한 다양성과 소통의 가치를 생각하게 된다.


정희민, 나는 오븐에서 기어 나왔다, 캔버스 위에 오일과 아크릴, 190x226cm, 2021. ©정희민, 을지예술센터


<나는 오븐에서 기어 나왔다 (I Crawled Out of the Oven)> 속 작가의 모습은 비디오 게임 <툼레이더>의 여성 캐릭터의 모습을 본따 표현되었다. 마치 유저가 자리를 비운 것처럼 생명력 없이 구겨진 상태로 나뒹구는 캐릭터의 모습과 'hyperproductive mediocre (과잉생산적 범인)'이라는 3D 글자의 조각들이 신체 이미지와 뒤섞인 채 흩뿌려져 있다. 자화상 앞 윈드스크린에는 D. H. 로렌스의 글을 재배치한 비문이 새겨져 있다. 그의 시에서 우산은 혼돈을 가리는 환영적 가림막의 역할을 한다. '이미지'를 떠나 '오븐에서 기어 나왔다'는 자화상의 제목과 '나는 우산을 내려놓으면 태어난다'는 비문의 내용은 불균질하며 비이상적인 도시의 삶을 향한 일종의 선언이다.


이준영,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전단지, 가변크기, 2021.  ©이준영, 을지예술센터


을지로4가 전경을 마주보고 있는 작품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는 을지로판 삐라 배포의 순간을 표현했다. 을지로를 외부인이 점유하는 과정을 작가 특유의 해학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서 외부인은 작가 자신을 포함한다.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과 행위인 삐라를 배포하는 것은 제조와 유통의 시간과 비례하여 정립된 낡은 시스템에 대한 저항이다. 이것은 빠르게 바뀌는 시대에 과거의 관습이 남아 있는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가 앞으로 마주하게 될 도시, 미래 을지로의 주체는 과연 누가 될까.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