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평행///연결》 - 박선민, 이의록


2021. 04. 22 - 2021. 05. 23

원앤제이 갤러리

위치: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31-14

관람시간: 화요일 – 일요일(오전 11시 – 오후 6시), 월요일 휴관

전시 문의: 010-6721-2988, sy@oneandj.com


▶ 우주 (블랙홀)와 미생물 (버섯) 이라는 아주 큰 것과 아주 작은 것에 각각 관심을 갖고, 전혀 다른 태도와 관심으로 작업하고 있는 두 작가의 작품을 한 공간에 평행하게 구성한 영상과 사진, 설치 10작품
▶ 교차지점이 없어 보이는 작품의 이미지들이 겹쳐보이는 순간의 경험을 통해, 현실과 무관해 보이는 것들과 현실이 맞닿아지는 경험을 은유


 박선민,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는다〉, 2018. 단채널 영상, 컬러, 7분 43초. © 박선민, 원앤제이 갤러리

 이의록, 〈Lagrange Point〉, 2019.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30분. © 이의록, 원앤제이 갤러리


두 작가의 작품이 각각 다른 층에 간섭 없이 구성된다. 모든 면에서 차이를 보이는 두 작가는 너무 가깝거나 너무 멀어서, 또는 너무 낮거나 너무 높아서 일상에서의 시선에서 빗겨나 있다는 점 외에는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는다. 바라보는 대상만 다른 것이 아니라 카메라의 움직임에서부터 이미지를 다루는 방식까지. 전혀 교차점을 가지지 않는 두 사람의 작품은 ‘이인전'이라는 명칭이 무색할 만큼 무심하게 양극(兩極)을 향해 멀어져가는 듯 보인다. 그리고 전시는 그것에 가담하듯 그 둘을 평행 시킬 뿐 거리를 좁혀내지 않는다. 


이렇게 섞이지 않는, 평행하는 이미지들은 상대가 관객에게 온전하게 침투하는 것을 방해한다. 보는 이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김으로써가 아니라, 자신의 영역에서 튀어나와 다른 쪽에 찰싹 달라붙음으로써. 그것을 이미지의 힘이라 부를 수 있다면, 그 힘은 거리를 두어야지만 작동하는 힘이며 상대를 통해 드러나는 힘이다. 그 힘은 서로 멀어졌을 때에 오히려  바짝 붙어 상대를 해체하고 자신 역시도 분해하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용해하지 않고 그저 들러붙어 있게 한다. 


이러한 힘의 양상은 이미지와 언어의 관계 안에서도 드러난다. 두 작가의 영상에 등장하는 언어는 이미지와 분리되어 있지만 그 분리를 통해 오히려 달라붙고, 그때에 비로소 작동한다. 예컨대, 이의록의 <Lagrange Point>(2019)에서의 언어는 들려지는 것과 보여지는 것으로 나뉘는데, 발화자의 이미지가 소리와 함께 등장할 때 - 가까이에 있을 때 - 낯설지 않았던 언어는, 흑백 무성(無聲)의 장면에서 텍스트로만 등장할 때 - 이미지와 언어가 멀어졌을 때 -  오히려 강하게 이미지에 다가가 그 거리를 디딤하여 서로의 침투를 방해한다. 그리고 그 텍스트는 전혀 다른 작업 - <Merry Go Round>(2020) 을 통해 오히려 더욱더 세게 반응한다. 저편에 있던 언어가 이편에서 작동하여 이미지를 해체하고 자신 역시도 분해되고야 만다.


 이의록, 〈Lagrange Point〉, 2019.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30분. © 이의록, 원앤제이 갤러리

 이의록, 〈Merry Go Round〉, 2020.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42분. © 이의록, 원앤제이 갤러리


한편 박선민의 <버섯의 건축>(2019)에서는 이미지를 지시하지 않는 언어가 등장한다. 그것들은 보여지는 이미지들과 결과 맥이 다른, 정보와 지식의 언어이지만 분리되었기에 교차할 수 있는 어느 지점에서 서로에게 달라붙어 은유한다. 그러나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지시하지 않는 언어는 그 틈 사이로 작가가 의도했거나 의도하지 않은 의미들을 끌어들이며, 관객이 하나의 이미지를 온전하게 소유하는 것을 방해하고, 새로운 구성을 요청한다. 이제 소유할 수 없는 이미지의 조각들을 재구성해야 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박선민, 〈버섯의 건축〉, 2019.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15분 28초. © 박선민, 원앤제이 갤러리


어쩌면 전시는 당신이 두 층의 전시장 사이를 오가는 계단 위에서 벌어질 사건으로 구성되는 것일 수 있다. 전시는 당신이 차이를 사유하는 가운데, 당신이 온전하게 소유할 수 없는 이것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관한 물음으로 두 평행하는 공간을 부유하고 가로지르기를 요청한다. 더 이상 분류되지 않고 어느 한 쪽으로 포섭되지도 않는, 그 둘이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도, 또는 그 둘 다 아닌 것으로도 여길 수 없는, 기이하게 남겨진 잔여물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을 ‘당신'에게 요청하는 데에는 당신이, 또는 당신의 경험이 세계의 일부로서 그것을 구성하고 있음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시간, 공간, 운동을 세계라고 본다면, 이의록은 세계의 구조와 조건들을 인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박선민은 대상과 신체의 맞닿음으로 직접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작품을 만든다. 하지만 이 결과로서의 작품들은 작가들의 지난 경험을 기록한 이미지 다발일 뿐이며, 당신의 경험을 통해서만 다시 세계로 구축된다. 기다림과 좇음, 영원과 순간, 극소와 극대의 사이를 오가는 당신의 계단 위에서 문득 두 이미지가 중첩되었다가 흩어질 때, 정적인 이미지의 숨 가쁜 떨림과 쉴새 없이 운동하는 이미지의 고요한 영원성이 펼쳐질 때, 그 이미지들은 통합되지 않고 오히려 파편화되어 재배치를 통한 시(詩)가 되기를 기다린다.


박선민, 〈소금 결정〉, 2013. 피그먼트 프린트, 디아섹, 50 x 40 cm. © 박선민, 원앤제이 갤러리


전시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에 전시된 두 작가의 작품의 기저에는 7년 전, 4월의 기억이 함께한다. 마주하기 힘든 현실을 우회하여 바라보도록 하는 것은 예술이 해야 할 일일 수도, 피해야하는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전시는 그에 대한 답을 보류하고, 다만 평화롭게 보이는 일상이나 뜻하지 않게 발견된 아름다움에 당신을 빠뜨리지 않는, ‘시쓰기’에 대한 요청이 되고자 한다.




About Artist


박선민 작가(b. 1979, 한국)는 서울대학교에서 조소 전공으로 학사,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마에스터 슐러) 석사학위를 받았다. 비아아트 아트센터 (2018, 제주), 윌링 앤 딜링 (2015, 서울), 갤러리 팩토리 (2013, 서울), 대안공간 건희 (2006, 서울), Galerie der Stadt Remscheid (2005, 독일), Galerie Ockhardt (2004, 독일) 등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이외 백남준 아트센터 (2021, 경기), 뿐또블루 서울 (2021, 서울), the MUSE museum (2021, 이탈리아), 남서울시립미술관 (2020, 서울), 성북아트센터 (2020, 서울), Volvo studio Milano (2020, 밀라노, 이탈리아)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2005년에 박건희 문화재단 제4회 다음작가상을 수상하였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 스튜디오 입주작가로 참여하였다.


이의록 작가(b. 1985, 한국)는 상명대학교에서 사진 전공으로 학사,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산수문화 (2020, 서울), 지금여기 (2016, 서울)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이외 주홍콩한국문화원 (2020, 홍콩), 인사미술공간 (2019, 서울), 안산문화예술의전당 (2019, 경기),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2018, 서울), 서울시립미술관 (2016, 서울), 아트선재센터 (2015, 서울)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