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나무 갤러리, 물질의 우발성과 창작의 흔적 조명하는 기획전 《클리나멘: 비껴가는 궤적들》 선보여


📅 2026. 7. 28(화) – 2026. 8. 19(수) (매주 월요일 휴관)

🏛️ 성수나무 갤러리
📍 서울 성동구 성덕정3가길 3-14
⏰ 12:00 –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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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매끄럽고 완결된 이미지를 손쉽게 생산하는 시대, 인간의 손과 재료가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예측 불가능한 순간에 다시 주목하는 전시가 열린다. 성수나무 갤러리는 레이프로젝트 서울과 함께 기획전 《클리나멘(Clinamen): 비껴가는 궤적들》을 개최하고, 조형·설치 작가 박원주, 회화 작가 유지영, 조각 작가 이주해의 작업을 통해 물질과 신체가 만들어내는 '실재의 궤적'을 조명한다. 


이번 전시는 성수나무 갤러리가 새롭게 시작하는 연간 작가 지원 프로그램 〈From Sprout〉의 첫 번째 프로젝트다. 장르와 세대의 경계를 넘어 동시대성을 공유하는 작가들을 발굴하고 소개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신진과 중견 작가가 하나의 전시 안에서 서로 다른 조형 언어를 펼쳐 보인다. 


전시 제목인 '클리나멘(Clinamen)'은 고대 철학자 루크레티우스가 말한 '원자의 미세한 이탈'에서 가져왔다. 완벽한 통제보다 우연한 흔들림과 예기치 않은 변화를 긍정하는 개념으로, 이번 전시는 재료가 저항하고 도구가 빗겨 나가는 순간에 비로소 드러나는 창작의 본질을 탐색한다. 계산된 결과보다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질의 반응과 작가의 몸짓이 작품의 핵심이 되는 셈이다. 


박원주는 1,000도가 넘는 고온에서 유리를 구기고 압력을 가하며 물성이 한계에 이르는 순간을 포착한다. 대표작 '펴기-칼날삼부작'과 '필수실물' 연작에서는 투명한 재료라는 고정된 인식을 벗어난 유리의 낯선 표정과 긴장감을 경험할 수 있다. 완전한 통제가 불가능한 재료의 특성을 오히려 작품의 언어로 받아들이며 '약함의 힘(Power of the Vulnerable)'을 제안한다. 


유지영은 무엇을 그릴지 미리 결정하지 않은 채 캔버스를 마주한다. 스퀴즈 등 비전통적 도구를 활용해 물감을 밀어내고 다시 정리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화면 위에 회화의 층위를 쌓아 올린다. 'Conscious covering'과 'Blank type' 연작은 시각적 이미지를 넘어 두터운 안료가 만들어내는 촉각적 감각까지 환기한다. 


이주해는 손끝의 감각으로 나무를 빛이 통과할 만큼 얇게 깎아내고, 그 틈으로 수채 안료를 스며들게 하는 작업을 이어간다. 나무가 품고 있던 내부 공간을 드러내며 씨방과 암술 등 생명의 근원을 연상시키는 형상을 만들어내고, 파괴 직전의 긴장감 속에서 물질이 품은 생명성을 끌어낸다.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볼 지점은 작품만이 아니라 창작 과정 자체다. 1층 전시장에는 작가들이 실제 사용한 작업 도구와 재료, 작업실 풍경,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이 함께 설치돼 결과물 이전의 시간을 함께 경험하도록 구성했다.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축적된 시행착오와 물질의 흔적을 전시장 안으로 옮겨오며, 창작을 하나의 살아 있는 과정으로 바라보게 한다. 


성수동의 옛 공장 기숙사를 리모델링해 문을 연 성수나무 갤러리는 동시대 한국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실험적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다. 이번 《클리나멘: 비껴가는 궤적들》은 기술이 빠르게 이미지를 생산하는 시대일수록 손과 재료가 만나 만들어내는 예측 불가능한 흔적이 왜 여전히 예술의 중요한 가치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전시다. 창작의 결과보다 과정, 완성보다 물질이 품은 긴장에 주목한다면 더욱 깊이 있는 감상이 가능하다. 


이미지 제공: 성수나무 갤러리 / 포토그래퍼 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