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 예술학전공, 소장과 전시의 조건을 되묻는 《오프-토픽 Off-Topic》



📅 2026.7.23(목) - 2026.8.6(목)

🏛️ 이화아트센터

📍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52,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관 A동 2층

⏰ 10:00 - 18:00, 휴관 없음

❓ 010-7513-1937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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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대개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작품이 전시장에 놓이기까지는 크기와 무게, 재료와 보존 방식, 대여 조건처럼 관객의 눈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기준이 작동한다. 이화여자대학교 예술학전공이 7월 23일부터 이화아트센터에서 선보이는 《오프-토픽 Off-Topic》은 바로 그 주변부의 조건을 전면으로 불러낸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의 ‘청년 인력양성 사업: 현장탐구’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이화여자대학교 예술학전공을 수료했거나 재학 중인 권유빈, 박혜윤, 손하늘, 전유진, 지소형이 각각 큐레이터와 아키비스트, 레지스트라, 에듀케이터 역할을 맡아 작품 선정과 연구, 대여, 전시 과정을 직접 진행했다.


‘주제를 벗어난’이라는 뜻의 전시 제목은 주제 밖으로 이탈하겠다는 선언이라기보다, 전시를 가능하게 하는 여러 조건을 다시 살펴보려는 태도에 가깝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소장품 28점은 작품의 규격과 측면, 영상의 길이, 보존과 관리 방식 등 여덟 가지 ‘패턴’에 따라 재구성된다. 개인의 취향이나 우연, 현실적인 제약까지 전시를 형성하는 요소로 다루면서 결과 뒤에 가려졌던 판단과 노동의 과정을 드러낸다.


참여 작가는 강석원, 고혜숙, 공병, 김규식, 김민지, 김일용, 김지혜, 김혜원, 김황록, 박성철, 박소영, 박영숙, 박원주, 박준범, 박진범, 신이피, 안정주, 오이량, 윤두진, 윤명순, 윤향로, 이상은, 전경화, 조해준, 최지현, 한애규, 홍이현숙 등 27명이다. 세대와 매체가 다른 작업들을 하나의 서사로 묶기보다, 작품이 지닌 물리적 속성과 관리 조건을 새로운 연결점으로 삼는 것이 이번 전시의 특징이다.


출품작 가운데 김민지의 'You.To.Pia(유토피아)'(2005)는 비상구 표식과 반사체를 활용해 이상향이라는 개념을 개인의 탈출구와 자기 보존의 감각으로 전환한다. 윤향로의 '스크린샷 9.12.11 1-3'(2017)은 애니메이션 속 에너지의 이동 장면을 추상화한 초기 ‘스크린샷’ 연작으로, 디지털 이미지의 생산과 소비 방식이 회화로 옮겨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홍이현숙의 영상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2020)은 북한산 승가사의 마애불을 카메라로 천천히 훑으며, 직접 만질 수 없는 대상의 촉감을 목소리와 움직임으로 상상하게 한다. 한애규의 '조상 2'(2018)는 테라코타의 질박한 물성과 풍만한 여성의 신체를 통해 여성의 삶과 존재, 문명의 시간을 함께 환기한다.


윤명순의 '돌아오는 방'(2003)은 테라코타와 동선의 결합으로 머묾과 떠남, 연결과 단절이 반복되는 시간의 방을 구성한다. 오이량의 '존재-러브라인.09'(2009)는 타원형 곡선과 반복되는 선의 리듬을 통해 생명의 파장과 보이지 않는 존재를 탐색한다. 박영숙의 '헤이리 여신 우마드-풍요의 여신, 분노의 여신, 사랑의 여신, 죽음의 여신'(2004)은 환경 파괴와 전쟁으로 상처 입은 지구를 치유하는 여신의 이미지를 사진으로 펼쳐 보인다.


지금 이 전시가 흥미로운 이유는 완성된 전시보다 그것을 성립시키는 시스템을 바라보게 한다는 데 있다. 작품을 선택하고 옮기며 기록하고 보존하는 기준은 중립적인 절차처럼 보이지만, 무엇을 보여주고 남길 것인가를 결정한다. 《오프-토픽 Off-Topic》은 이러한 기준을 작품 감상의 바깥이 아니라 감상을 구성하는 일부로 제시한다.


관객은 작품 사이의 주제적 공통점을 서둘러 찾기보다 크기와 재료, 표면, 설치 위치, 영상의 시간처럼 평소 지나치기 쉬운 요소를 천천히 살펴볼 수 있다. 서로 무관해 보이는 작품들이 어떤 기준 아래 이웃하게 됐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전시가 의미를 전달하는 공간인 동시에 수많은 선택이 축적된 구조라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8월 1일 오후 1시부터 3시까지는 참여형 워크숍 'Sensory Index'가 열린다. 참가자는 전시장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과 작품의 세부 장면, 설치 과정과 전시의 흔적을 각자의 기준으로 분류하고 재구성해 ‘인덱스 북’을 만든다. 하나의 전시가 관객마다 어떻게 다르게 읽히고 기억되는지를 살피는 과정이다.


전시장 입구와 이화여자대학교 예술학전공 공식 인스타그램에서는 홍철기 사진작가, 경북대학교미술관 이남미 학예연구사 등 전시와 소장 과정에 관여하는 여러 직군의 인터뷰 영상도 볼 수 있다. 작품뿐 아니라 작품을 둘러싼 사람과 제도, 실무의 층위까지 함께 바라볼 때 《오프-토픽 Off-Topic》이 제안하는 또 하나의 전시 읽기가 완성된다.


자료 및 이미지: 이화여자대학교 예술학전공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