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이안리, 조영주 - 오렌지 잠


📅 2023. 01. 15 - 2023. 02. 12

🏛️ 원앤제이 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31-14

⏰ 화요일 - 일요일, 오전 11시 - 오후 6시 (월요일 및 공휴일 휴관)

010-9184-9484, euna@oneandj.com


전시 전경, 원앤제이 갤러리, 2023. 촬영: 이의록 ⓒ 원앤제이 갤러리


혼자하면 일상이고 둘이 하면 사건이 되는 일. 잠은 생존의 기본 조건이 되는 상태로서 평범한 생활 양식의 일부이자 섹슈얼한 이미지를 품고 있는 행위다. 서 있는 자세, 혹은 깨어있는 상태가 중력을 거스르며 운동하는 몸이라 할 수 있다면, 의식적 활동을 멈추기 위해 잠을 청하는 행위는 운동성을 상실한 몸을 노출한다. 전시는 이안리, 조영주 2인이 만나 하나의 사건으로서 ‘잠’이라는 상태를 조명하고 움직임을 잃어버린 이미지를 추적한다. 여기에 비타민, 에너지 등 생기를 환기하는 ‘오렌지’를 나란히 두면서 활성과 휴면 사이의 충돌하는 장면을 드러내고 있다. 《오렌지 잠》은 일상의 사물과 각자의 내밀한 기억을 공동의 장소로 불러온다. 일종의 박물표본과도 같은 기억들은 특정할 수 있는 한 장면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등록되지 않은 기억, 하나의 사물 혹은 풍경 저편에 사소하게 보존된 감각에 관여하고 있다.


전시 전경, 원앤제이 갤러리, 2023. 촬영: 이의록 ⓒ 원앤제이 갤러리


전시장은 표백된 빛과 이안리가 조성한 주황빛 파장이 충돌하고 있다. 이때 전시가 내세운 ‘오렌지’는 특정한 빛과 색을 상기하기 위한 상징처럼 보이지만, 일정한 형체를 갖춘 물질적 사물의 위상으로 조명된다. 귤과 달리 오렌지는 두꺼운 껍질로 인해 쉽게 썩지 않는 과일로서 건조될 때조차 원형을 보존한다. 온전한 형상으로 사라져가는 이 기만적인 과일은 시간을 지탱하고 버텨내는 것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안리와 조영주는 그 시간이 남겨둔 잔여물을 주워온다. 모든 광선이 혼합된 하양의 불순함은 오렌지가 보존하는 ‘원형’(原形)의 상태로 말미암아 그 원래의 것, 근원이랄 것에 관한 기준을 질문하도록 만든다. 표백된 조명, 백색의 회화, 흰 카페트. 하얀 풍경 틈틈이 노랗거나 붉은 파편들이 공간을 침투한다. 이곳저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미세한 자국들은 생활의 양식을 암시한다. ‘우리집 거실’에서 발굴할 수 있는 미감을 포착해 일상의 자취를 작업 재료로 가져오는 것이다.


이안리, 〈아르카익 프룻〉, 2023. 혼합재료, 조영주 |〈휴먼가르텐〉(2021), 가변설치. 촬영: 이의록 ⓒ 원앤제이 갤러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물로 오브제 및 설치, 회화를 선보여 온 이안리는 산호, 마른 오렌지, 비누  조각(piece)으로 제작한 조각(sculpture)과 3점의 신작 회화를 전시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방식에 관해 탐구해온 그는 가시적인 것에 착종되어 있는 우리의 시선에서 사물들을 지워낸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비누’(soap)를 모티프로 삼았다. ‘하얀 더러움’이라는 말을 종종 내뱉던 그는 불순한 물질을 씻어내는 물건이 점점 원형을 잃어가면서 어느덧 더러움을 입은 순간을 짚는다. 여러 손길이 닿아 닳아버린, 그다지 손대고 싶지 않은 물질로 남게 된 비누의 그 미묘한 상태 말이다. 깨끗하게 더러운, 매끄럽게 껄끄러운 물질. 비누를 바라보는 이안리의 모순적인 시선은 그가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도 엿볼 수 있다. 〈Orange Sleep〉(2023)에서 포근한 이미지를 비추는 화면과 달리, 하얗게 사라진 그림의 형상 위로 거칠고 훼손된 표면이 보인다. 이미 사라져버린 비누의 부피, 살과 살의 마찰로 잃어버린 형태를 기억하며 촉각적인 방식으로 대상을 이미지화하는 것이다. 〈Moth-like stars〉(2023)에서 작가는 화장실 한편에 납작해진 비누를, 제 쓸모를 다한 하나의 유물로서 발굴한다. 유물이 다른 사물과 달리 과거의 시간을 입고 지금 우리에게 남아있는 대상이라고 할 때 이안리는 마치 화석같이, 과거에 속하지만 오늘에 발견되는 것들을 주목한다. 빛을 향해 달려들다 순식간에 타버린 불나방처럼 찰나의 시간으로 파괴된 대상의 잿더미를 파헤치는 것이다. 〈Angel〉(2023)에서는 잿더미로부터 살아남은 천사의 이미지를 담았다. 작가는 피부에 닿아 사라지는 비누의 물질성으로 육체를 가지지 못한 존재를 떠올리며 실체 없는 물질의 부피를 상상한다. 캔버스의 표면을 갈아내고 덮기를 반복하며 형상을 뭉개버린 그림들은 화석같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물질에 대한 정물화인 동시에, 물거품처럼 사라진 사물의 정경에 관한 풍경화가 된다. 


이안리, 〈시계태엽 오렌지 2〉(부분), 2023. 혼합재료 | 조영주 〈휴먼가르텐〉(2021), 가변설치. 촬영: 이의록 ⓒ 원앤제이 갤러리


조영주는 라이브 퍼포먼스와 영상을 위주로 작업하며 가사 노동, 돌봄 노동 등 인간의 신체가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에 집중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잠’을 키워드로 몸을 재운다. 울사 소재로 된 두 점의 설치 작업과 연계된 사진 작업, 그리고 세 점의 드로잉. 전시의 출품작은 최근 퍼포먼스 형식으로 몸을 앞세운 행보와 차별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인간의 신체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작품들은 생리혈, 분비물 등 여성 신체가 남기는 자취를 상기시키며 공간을 비집는다. 전시장 중앙에 〈진실된 이야기1: 냉(冷)〉(2022)이라는 표제를 가진 작업이 놓여있다. 작은 불꽃을 얹은 듯 보이는 형상은 차가운 여성의 몸에서 분비되는 물질의 자국을 표현한 것이다. 신체의 분비물은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일종의 증상이다. 증상이 우리의 현 상태를 진단하고 외부와 신체의 갈등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지표라고 할 때 조영주는 일견 불순하고 더러운 것으로 치부되는 물질들에서 저항성을 발견한다. 활성화된 신체의 활동으로부터 생산된 물질들은 일종의 증상으로서 신체가 받아들이는 자극에 대한 투쟁의 표상인 것이다. 조영주는 증상으로 발현되는 외부 자극의 원인을 추적하기보다 그 이미지 자체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이 이미지 위에 자신의 몸을 올려두면서 사진 작업 〈진실된 이야기1: 온(溫)〉(2022)를 통해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 신체를 노출한다. 작가를 포함한 세 여성의 신체는 일말의 섹슈얼리티도 노출하지 않으며 피부와 피부가 맞닿을 때 감각되는 온기를 전한다. 바닥에 깔린 흔적 위에 노출된 몸, 카메라를 응시하는 작가의 시선과 꼿꼿한 자세는 차가운 공기와 부딪히며 긴장감을 부여한다. 전시장 벽에 설치된 〈풀 타임-더블: 10월 9일〉(2022)은 날짜와 시간을 의미하는 그래프로, 출산 이후 수십 개월간 작성한 육아일지 중 24시간, 단 하루를 기호화한 작품이다. 2019년도에 제작한 작품을 울사 소재로 출력한 이 작품에는 아기의 수유와 배변, 수면에 대한 기록이 담겼다. 작업은 잠들지 못하는 밤과 낮의 반복을 상기시키며 노동하는 몸과 쉬는 몸의 굴곡을 가시화 한다. 


조영주, 진실된 이야기1_ 냉(冷), 2022. 울사, 160 x 220cm. 촬영: 이의록 ⓒ 원앤제이 갤러리

조영주, 풀 타임-더블_ 10월 9일, 2022. 울사, 110 x 440cm.  촬영: 이의록 ⓒ 원앤제이 갤러리


꿈이라는 정신현상을 안내하는 상태인 자는 행위는 외부 세계와 나의 거리를 확보하는 조건이 된다. 무의식적 활동이라고 여겨지는 꿈은 개인의 상징적인 구조를 만들어내는 작업으로서 한 인간이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투영한다. 이때 꿈은 의식적 활동을 반영한다기보다 몸에 각인된 기억의 발현으로서 의식이 누락한 장면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안리와 조영주는 꿈의 양상으로 현실을 투사하기보다 우리가 지각하고 있는 현실의 장소에서 꿈의 장면을 찾는다. 애초에 실체를 붙잡거나 원형을 파악할 수 조차 없는 사물의 잃어버린 면면, 휘발된 신체의 움직임. 이미 상실해버려 되찾을 수 없는 정체 없는 이미지를 상상하는 것이다. 생활의 흔적, 사물의 자취를 추적하는 일종의 고고학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두 작가는 꿈이 현실의 지각 대상을 근원으로 삼는 것처럼 현실의 대상에서 상상의 기원을 찾는다. 모든 게 가상의 장소로 변환되는 오늘 세계에서 피부가 감각할 수 있는 사물과 현상들에 주목하며 사라져버린 물질의 흔적을 이미지로 남겨두는 것이다. 화석처럼 굳어버린 어제, 유물처럼 죽어버린 오늘, 비누처럼 사라지는 내일. 생산과 소비의 순환 속에서 두 작가는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지금의 시간이 맺지 못한 열매를 매만지며 오늘을 지켜내기 위한 장면을 꿈꾼다. 


<글: 이민주(미술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