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MOLD≫ - 권해일


2021. 08. 10 - 2021. 08. 20

AlterSide

위치: 서울 마포구 방울내로 59 3층 AlterSide

관람시간: 화-토 오후 1시~오후 7시 / 일, 월 휴관

전시 문의: 010-7231-4456, alterside23@gmail.com



권해일은 주로 건축물이나 건설현장, 일반적인 주택 등 도시를 상징하는 건물과 사람과의 관계를 유심히 관찰한다. 그는 현미경을 통해 유기체를 살펴보듯, 빌딩의 단면을 확대하여 포착하거나 건물이 온전한 형태를 갖추기 전의 증식 과정을 평면적으로 압축하여 보여준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건축물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담아낸 이미지는 익숙한 도시 환경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속살을 드러낸다.


권해일, compressor #10_01, Archival Pigment Print, 62.0×41.0cm, 2017. ©권해일, AlterSide


주거 공간의 임시방편적 풍경인 <Compressor>연작은 강박과 같은 수직, 수평의 선과 면에 입각하여 아파트가 세워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권해일은 공사의 시작점부터 건설 회사를 상징하는 강렬한 색감으로 외곽이 둘러싸인 채, 바닥 과 천장을 번갈아 가며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는 건물들을 보며 정의할 수 없는 무력감과 소외감을 느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욕망의 크기와는 대비되듯, 공사 현장의 인부들을 반도체 위의 미세한 부품처럼 작은 존재로 나타내고 있다. 

이후, 권해일은 외부에서 바라보던 건설 현장의 내부로 들어가 사람의 손길이 묻은 대상을 찾아 나선 다. <inside of Spectacle>연작은 차가울 만큼 텅 비어있는 공사현장 안의 모습을 외부와는 다른 시간과 속도로 흘러가는 모호한 공간으로 묘사한다.


권해일, 11. compressor_20167_#04_08, Archival Pigment Print, 62.0×41,0cm, 2017. ©권해일, AlterSide 


최근 권해일의 시선은 도심 속에서 세월의 흔적을 애써 감춰가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양옥집으로 향한다. 사적인 영역을 지키기 위해 쌓아 올렸던 담벼락은 오늘날에 들어서 그보다 높게 올라간 주변 건물들 때문에 그 기능을 온 전히 발휘하고 있진 않아 보인다. 

<Modern House>연작 또한 건축물과 연결된 사람의 모습을 담고 있지만, 건물보 다는 그 안에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 보다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집안에 살고 있는 사람의 일상적 풍경과 생활 습 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양옥집은 고립과 단절이 익숙한 현시대에서 어딘지 모를 판타지적 요소로 다가온다.


권해일, s of S_20178_02_04_, Archival Pigment Print, 647×281cm, 2018. ©권해일, AlterSide


전시 제목인 《MOLD》는 도시의 건물들을 거푸집을 통해 찍어낸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를 가리킴과 동시에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체취와 때를 곰팡이로 표현하며, 물리적이고도 정서적인 집의 의미를 가로지른다. 


이렇듯 권해일은 똑같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네모난 형태 위에서 비슷한 듯 다르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자신 만의 시각으로 담아내며 오늘날 본질적인 의미를 상실해가는 도시의 주거환경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작가의 말>

#1

도시와 건물에 관한 관심은 이제 내부로 향했다. 대부분의 공사 현장은 ‘관계자외 출입금지’ 구역이었기에, 때로는 허가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잠시 조용해지는 정우 시간을 틈타 몰래 숨어들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탐험가나 고고학자가 된 기분이었다. 휘고 구부러진 철근, 빨간색 대야, 임시로 막아놓은 비닐, 여러 폐기물을 담은 포대들, 나로서는 알기 힘들었던 고래 뱃속 같은 이 공간은 의외로 시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밀한 계획에 따라 기계의 힘으로 정교하고 거대하게 생성되는 것 같았던 건물 외형과는 달리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볼품없이 보일 정도로 노동집약적이었다.


#2

김 군이 2층 테라스에서 손을 흔들며 반긴다. 당당하고도 빠르게 내려오는 것이 마치 나를 향해 진격하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주눅이 들고 또 부러웠다. 나보다 딱히 잘난 구석 없는 김 군에게 느끼는 이 저급한 열등감은 2층 양옥집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즈음, 김 군이 신도시로 떠나면서 우리의 관계는 단절되었다. 집주인은 몇 번 바뀌었고 양옥집은 소멸의 시간 앞에 섰다. 문패는 바짝 마르고 이름을 한눈에 알아보지 못할 만큼 쩍 갈라졌다. 초인종은 눌러지지만 소리는 없다. 테라스 기둥의 페인트는 위태하게 색이 바랬고, 생명을 연장하듯 이어 붙인 플라스틱 처마는 이질적이다. 언젠가는 한옥마을처럼 양옥마을을 보호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조금 높은 곳에서 몇 시간 째 관망하고 있다. 누군가 나타났다. 이들은 진정한 현실주의자 같으면서도 초현실주의자 같다. 눈에 익은 행위이지만 연기를 하는 것 같다. 당당하게 보이지만, 자신 앞에서 그렇지 못함을 감추는 듯하다. 현대의 속도를 감내하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떠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떠나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이곳에서 살아온 시간은 일종의 노동이었고, 살아갈 의무를 짊어진 모습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