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11.26 – 202.12.7
🏛️ 인천아트플랫폼 G3
📍 인천광역시 중구 제물량로218번길 3
⏰ 13:00 – 18:00

| ✦ 한 줄 인사이트
불안과 속도의 시대에 전희경은 바다의 수면을 ‘0점’으로 삼아, 프리다이빙으로 몸이 기억한 물의 감각을 회화로 번역하며 우리 각자가 스스로의 기준축에서 얼마나 깊이 잠수할 수 있는지, 숨의 속도와 시선의 깊이를 천천히 재보자고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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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아래로 잠수하는 회화
전희경의 개인전 《물의 표면: 그 깊이를 찾는 방식(Surface of Water: On the Way to Depth)》은 제목 그대로, 수면 위에서 시작해 심연으로 천천히 내려가는 전시다. 바다의 수면을 ‘0’이라는 기준축으로 설정하고, 그 아래로 잠수하듯 내려가며 감정과 기억의 층위를 더듬는 회화적 여정을 펼친다. 유년기의 수영 선수 경험과 2023·2025년 제주에서의 프리다이빙이 몸에 남긴 감각이 이번 전시의 중요한 출발점이다. 물속이라는 매체를 통해 과거의 나, 오래 방치된 기억, 말로 붙잡기 어려운 정서를 다시 호출하는 방식이다. 관람객은 이 회화를 따라 내려가며, 결국 자기 안의 어딘가와 마주서는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수면을 ‘0점’으로 잡는다는 것
요즘 작가가 꽂혀 있는 지점은 임의의 타임·스페이스에서 어디를 ‘0’으로 삼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 전시에서 그 기준점은 ‘바다의 표면’이다. 수면은 지금의 나, 혹은 우리가 서 있는 현재의 좌표에 가깝다. 그 기준선을 정하는 순간, 과거의 시간과 세계는 자연스럽게 아래로 가라앉는다. 땅 아래, 물 아래, 기억 아래.
프리다이빙은 그 0점 아래로 물리적으로 진입하는 행위다. 그러나 작가에게 잠수는 단순히 심폐 지구력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과 정서의 문제로 확장된다. 물 아래로 들어가는 동안, 몸의 행동은 감정과 기억의 이동으로 치환된다. 몇 미터 아래로 내려갔는가보다, 내려가는 동안 불쑥 올라오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더 중요하다. 그건 말 그대로 “기준축 이전의 시공간으로 이동하는 경험”에 더 가깝다.
바다를 무서워하던 아이가 심연을 찾는 방식
전희경의 물 감각에는 꽤 구체적인 서사가 따라붙는다. 여섯 살에 수영을 시작해 어린이 수영단, 주니어 선수반까지 올라갔지만, 강한 체벌과 훈련을 견디지 못해 열 살을 채운 즈음 그만뒀다. 땅 위에서 달리기는 늘 반 꼴찌였지만, 물속에서는 누구보다 오래, 누구보다 멀리 갈 수 있던 아이. 발이 닿지 않는 깊이에서 다람쥐처럼 계속 회전할 수 있었던 몸.
그런데 바다는 달랐다. 초등학교 시절 바다에 빠져 죽을 뻔한 기억 이후, 작가는 바다를 피했다. 스킨스쿠버라는 버킷리스트도 끝내 미루었다. 그런 작가가 다시 바다로 돌아간 계기는 제주에서 우연히 던진 한마디, 그리고 요가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시작된 프리다이빙이다.
프리다이빙은 ‘0점 너머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였다. 물속에서 바라본 세상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수면 아래, 지평선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경험은 현재에서 과거로 순간 이동하는 듯한 감각을 준다. 물고기, 산호, 돌, 심지어 몇 개의 플라스틱 조각까지도 심연으로 내려가는 길의 동반자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작가는 말한다. 심연의 문 앞에서 자꾸 떠밀려 올라오고 만다고. 귀와 숨이 버티지 못해, 정확히 그 지점에서 반복해서 밀려나는 경험. 이 “닿고자 하지만 이내 멀어지는” 움직임이 이번 전시 전체의 정조를 이룬다.
대형 설치 회화 〈불맞춤 Linked with you〉 — 떨어진 장소들을 잇는 신호

<불맞춤 Linked with you> 145 x 540cm, Acrylic on cotton fabric, Installation, 2025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관객을 맞이하는 건 145×540cm 규모의 설치 회화 〈불맞춤 Linked with you〉다. ‘불맞춤’이라는 제목은 본래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장소가 횃불을 들어 신호를 주고받던 행위에서 가져온 말이다. 작가는 이 단어를, 물 아래 어딘가, 땅 속 어느 돌의 모서리, 숲 너머의 장소, 과거의 여러 좌표와 지금의 나 사이를 잇는 은유로 사용한다.
작업 과정도 철저히 “물 쪽”에 있다. 면천을 먼저 물에 적시고, 아크릴 물감과 패브릭 미디엄을 섞어 분무기만으로 색을 얹어간다. 붓 대신 분무기를 택한 선택은 우연히 번지는 수분의 움직임과 마르는 속도를 작가의 신체 감각으로 조정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그 번짐은 바닷속을 헤엄치는 몸짓, 물장구를 치는 발차기, 숨을 참고 아래로 내려가는 동작과 겹쳐진다.
〈불맞춤〉은 주로 설치 형식으로 구성되며, 떨어져 있는 공간들을 하나의 회화적 장 속으로 끌어들인다. 공기, 빛, 바람 같은 요소가 천 위에 드리워진 색과 얽히며, 전시장은 잠정적인 ‘수면 아래’로 변한다. 뉴욕 개인전 제목이었던 〈Soundings of Blue〉, 그리고 이번 전시 제목 사이에는 ‘깊이를 재는 행위’라는 공통 관심사가 놓여 있다. 수심을 재는 사운딩 행위, 기준점에서 아래로의 거리를 표시하는 행위, 그리고 그 아래에 있을 무언가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욕망까지 모두 “링크됨”이라는 태도로 묶인다.
〈물장구-발차기〉 — 의지와 부력 사이에서 생긴 파동

<물장구-발차기 The Kick Beneath Water> 260.6 x 486.6cm, Acrylic on canvas, 2025
260.6×486.6cm의 대형 회화 〈물장구-발차기(The Kick Beneath Water)〉는 바다 속에서 계속 아래로 내려가고 싶어 하는 의지와, 그럼에도 자꾸 떠오르게 만드는 물의 부력을 동시에 품은 작업이다. 화면에는 수많은 유기적 터치와 파도의 흔적, 거품의 흔적이 겹겹이 쌓인다. 작가는 여기에 수직과 수평의 긴장된 터치를 섞는다. 직립 보행하는 인간의 몸, 지평선과 수직으로 서 있는 몸을 떠올리게 하는 이 구조는 우리가 삶에서 기대는 안정성의 조형 언어에 가깝다.
재미있는 지점은, 이 수직·수평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화면 속에서는 유기적인 터치가 주도권을 쥐고 있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수직·수평의 축이 그림의 구조를 사실상 지탱한다. 마치 삶에서 내내 의지하면서도 잘 의식하지 못하는 기준선과 같다.
여기에 코발트, 울트라마린, 프러시안, 인디고 등 서로 다른 7~8가지 블루가 겹쳐진다. 색채는 단순한 바다의 묘사를 넘어서, 직관과 감정, 몸의 감각을 불러내는 매개로 작동한다. 수면의 경계에서 만나는 공기의 움직임, 깊은 물속 어딘가로 가라앉는 감각, 젖어 있으면서도 젖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신체의 상태 같은 것들이 이 블루 톤 안에서 미세하게 진동한다. 작가가 말하는 “깊은 집중의 상태, 무중력 같은 상태”가 바로 이 색을 통해 구현된다.
〈기준축 Axis of Self〉 — 모든 깊이는 나로부터 측정된다

<기준축 Axis of Self> 65.1x53cm, acrylic on canvas, 2025
〈기준축〉은 이번 전시에서 비교적 작은 크기지만, 개념적으로는 전시의 핵심에 놓인 작업이다. 작가는 “모든 깊이는 내 안에서부터 측정된다”라는 문장으로 이 작품을 설명한다. 2023년 숲과 바다, 2025년 땅과 바다를 오가며 진행해온 리서치들은 모두 ‘0점 아래’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됐다.
기준축은 물의 표면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표면은 곧 ‘나’라는 자아의 표면이기도 하다. 깊이와 시간, 심연의 방향은 결국 나라는 기준에서만 측정된다. 감정의 깊이, 내면의 깊이는 숫자로 잴 수 없지만, 자기 안으로 잠수해 내려간 거리만큼의 부피를 갖는 추상적인 값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오랜만에 자화상 형식으로 이 기준축을 붙잡는다.
화면 위에서는 앱소번트 젯소를 여러 번 올려 물감이 쉽게 섞이지 않도록 만든 뒤, 아크릴 터치가 스스로 뭉치고 번지는 무늬를 유도한다. 시간과 물, 물감의 양이 스스로 만든 무늬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조형한 얼굴이라기보다, 바다의 표면과 내면 사이에 떠 있는 하나의 존재처럼 보인다.
〈심연의 끝자락〉 — 닿고 싶지만 끝내 닿지 못하는 자리

<심연의 끝자락 Verge of the Deep> 90.9x72.7cm, acrylic on canvas, 2025
〈심연의 끝자락(Verge of the Deep)〉은 바다의 바닥, 그 바닥 너머를 상상하는 그림이다. 프리다이빙에서 2분을 채우지 못한 1분 50초의 숨, 그 짧지만 고통스러운 시간에 대한 체험에서 출발한 작업이기도 하다. 바다 속에서 돌 하나를 만지기 위해 손을 뻗고 발차기를 하면서도, 결국 숨에 밀려 수면으로 떠오르는 반복된 경험.
그렇다면 우리가 닿고 싶어 하는 ‘심연’은 정말 바다에만 있을까. 작가는 인간 내면에도 끝내 닿기 어려운 깊은 장소가 있을 것이라 말한다. 그곳 역시 숨이 차오를 만큼 감당하기 힘든 공간일 것이다.
화면은 위쪽 중앙에 조금 더 밝은 톤을, 아래쪽 앞 공간에는 둥글게 어두운 톤을 배치해, 어두운 전경에서 살짝 밝은 안쪽을 바라보는 미묘한 거리감을 만든다. 푸른 붓 터치 사이에 숨겨진 선묘는 부드러우면서도 격정적인 움직임을 만들고, 하얗고 길게 미끄러지는 선들은 중력과 물줄기가 동시에 느껴지는 심연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조용하지만 끊어지지 않는 물소리가 들리는 듯한 화면이다.
사운드 작업 〈연결감각 Connected Senses〉 — 심연의 리듬을 듣는 방법
이번 전시에는 서혜민 작가와 협업한 스테레오 사운드 작업 〈연결감각〉도 함께 소개된다. 2분 36초 길이의 루프 구조로 구성된 이 사운드는, 물속에서 느끼는 리듬과 맥박, 숨의 속도를 소리로 번역하는 장치에 가깝다. 회화가 시각적으로 ‘잠수’를 제안한다면, 사운드는 청각을 통해 관객의 몸을 심연의 리듬에 동조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회화를 보며 천천히 호흡을 맞춰 듣다 보면, 관람의 속도 자체가 서서히 느려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물의 표면: 그 깊이를 찾는 방식》은 빠르게 훑어보기에는 아까운 전시다. 물과 바다, 심연이라는 키워드는 이미 익숙한 이미지지만, 작가는 이를 ‘경험의 언어’로 다시 번역해낸다.
바다를 잘 모르는 사람,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에게도 이 전시는 유효하다. 중요한 건 실제 수심이 아니라, 각자가 허용할 수 있는 내면의 깊이다.
📅 2025.11.26 – 20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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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광역시 중구 제물량로218번길 3
⏰ 13:00 – 18:00
✦ 한 줄 인사이트
불안과 속도의 시대에 전희경은 바다의 수면을 ‘0점’으로 삼아, 프리다이빙으로 몸이 기억한 물의 감각을 회화로 번역하며 우리 각자가 스스로의 기준축에서 얼마나 깊이 잠수할 수 있는지, 숨의 속도와 시선의 깊이를 천천히 재보자고 권유한다.
물 아래로 잠수하는 회화
전희경의 개인전 《물의 표면: 그 깊이를 찾는 방식(Surface of Water: On the Way to Depth)》은 제목 그대로, 수면 위에서 시작해 심연으로 천천히 내려가는 전시다. 바다의 수면을 ‘0’이라는 기준축으로 설정하고, 그 아래로 잠수하듯 내려가며 감정과 기억의 층위를 더듬는 회화적 여정을 펼친다. 유년기의 수영 선수 경험과 2023·2025년 제주에서의 프리다이빙이 몸에 남긴 감각이 이번 전시의 중요한 출발점이다. 물속이라는 매체를 통해 과거의 나, 오래 방치된 기억, 말로 붙잡기 어려운 정서를 다시 호출하는 방식이다. 관람객은 이 회화를 따라 내려가며, 결국 자기 안의 어딘가와 마주서는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수면을 ‘0점’으로 잡는다는 것
요즘 작가가 꽂혀 있는 지점은 임의의 타임·스페이스에서 어디를 ‘0’으로 삼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 전시에서 그 기준점은 ‘바다의 표면’이다. 수면은 지금의 나, 혹은 우리가 서 있는 현재의 좌표에 가깝다. 그 기준선을 정하는 순간, 과거의 시간과 세계는 자연스럽게 아래로 가라앉는다. 땅 아래, 물 아래, 기억 아래.
프리다이빙은 그 0점 아래로 물리적으로 진입하는 행위다. 그러나 작가에게 잠수는 단순히 심폐 지구력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과 정서의 문제로 확장된다. 물 아래로 들어가는 동안, 몸의 행동은 감정과 기억의 이동으로 치환된다. 몇 미터 아래로 내려갔는가보다, 내려가는 동안 불쑥 올라오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더 중요하다. 그건 말 그대로 “기준축 이전의 시공간으로 이동하는 경험”에 더 가깝다.
바다를 무서워하던 아이가 심연을 찾는 방식
전희경의 물 감각에는 꽤 구체적인 서사가 따라붙는다. 여섯 살에 수영을 시작해 어린이 수영단, 주니어 선수반까지 올라갔지만, 강한 체벌과 훈련을 견디지 못해 열 살을 채운 즈음 그만뒀다. 땅 위에서 달리기는 늘 반 꼴찌였지만, 물속에서는 누구보다 오래, 누구보다 멀리 갈 수 있던 아이. 발이 닿지 않는 깊이에서 다람쥐처럼 계속 회전할 수 있었던 몸.
그런데 바다는 달랐다. 초등학교 시절 바다에 빠져 죽을 뻔한 기억 이후, 작가는 바다를 피했다. 스킨스쿠버라는 버킷리스트도 끝내 미루었다. 그런 작가가 다시 바다로 돌아간 계기는 제주에서 우연히 던진 한마디, 그리고 요가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시작된 프리다이빙이다.
프리다이빙은 ‘0점 너머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였다. 물속에서 바라본 세상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수면 아래, 지평선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경험은 현재에서 과거로 순간 이동하는 듯한 감각을 준다. 물고기, 산호, 돌, 심지어 몇 개의 플라스틱 조각까지도 심연으로 내려가는 길의 동반자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작가는 말한다. 심연의 문 앞에서 자꾸 떠밀려 올라오고 만다고. 귀와 숨이 버티지 못해, 정확히 그 지점에서 반복해서 밀려나는 경험. 이 “닿고자 하지만 이내 멀어지는” 움직임이 이번 전시 전체의 정조를 이룬다.
대형 설치 회화 〈불맞춤 Linked with you〉 — 떨어진 장소들을 잇는 신호
<불맞춤 Linked with you> 145 x 540cm, Acrylic on cotton fabric, Installation, 2025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관객을 맞이하는 건 145×540cm 규모의 설치 회화 〈불맞춤 Linked with you〉다. ‘불맞춤’이라는 제목은 본래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장소가 횃불을 들어 신호를 주고받던 행위에서 가져온 말이다. 작가는 이 단어를, 물 아래 어딘가, 땅 속 어느 돌의 모서리, 숲 너머의 장소, 과거의 여러 좌표와 지금의 나 사이를 잇는 은유로 사용한다.
작업 과정도 철저히 “물 쪽”에 있다. 면천을 먼저 물에 적시고, 아크릴 물감과 패브릭 미디엄을 섞어 분무기만으로 색을 얹어간다. 붓 대신 분무기를 택한 선택은 우연히 번지는 수분의 움직임과 마르는 속도를 작가의 신체 감각으로 조정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그 번짐은 바닷속을 헤엄치는 몸짓, 물장구를 치는 발차기, 숨을 참고 아래로 내려가는 동작과 겹쳐진다.
〈불맞춤〉은 주로 설치 형식으로 구성되며, 떨어져 있는 공간들을 하나의 회화적 장 속으로 끌어들인다. 공기, 빛, 바람 같은 요소가 천 위에 드리워진 색과 얽히며, 전시장은 잠정적인 ‘수면 아래’로 변한다. 뉴욕 개인전 제목이었던 〈Soundings of Blue〉, 그리고 이번 전시 제목 사이에는 ‘깊이를 재는 행위’라는 공통 관심사가 놓여 있다. 수심을 재는 사운딩 행위, 기준점에서 아래로의 거리를 표시하는 행위, 그리고 그 아래에 있을 무언가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욕망까지 모두 “링크됨”이라는 태도로 묶인다.
〈물장구-발차기〉 — 의지와 부력 사이에서 생긴 파동
<물장구-발차기 The Kick Beneath Water> 260.6 x 486.6cm, Acrylic on canvas, 2025
260.6×486.6cm의 대형 회화 〈물장구-발차기(The Kick Beneath Water)〉는 바다 속에서 계속 아래로 내려가고 싶어 하는 의지와, 그럼에도 자꾸 떠오르게 만드는 물의 부력을 동시에 품은 작업이다. 화면에는 수많은 유기적 터치와 파도의 흔적, 거품의 흔적이 겹겹이 쌓인다. 작가는 여기에 수직과 수평의 긴장된 터치를 섞는다. 직립 보행하는 인간의 몸, 지평선과 수직으로 서 있는 몸을 떠올리게 하는 이 구조는 우리가 삶에서 기대는 안정성의 조형 언어에 가깝다.
재미있는 지점은, 이 수직·수평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화면 속에서는 유기적인 터치가 주도권을 쥐고 있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수직·수평의 축이 그림의 구조를 사실상 지탱한다. 마치 삶에서 내내 의지하면서도 잘 의식하지 못하는 기준선과 같다.
여기에 코발트, 울트라마린, 프러시안, 인디고 등 서로 다른 7~8가지 블루가 겹쳐진다. 색채는 단순한 바다의 묘사를 넘어서, 직관과 감정, 몸의 감각을 불러내는 매개로 작동한다. 수면의 경계에서 만나는 공기의 움직임, 깊은 물속 어딘가로 가라앉는 감각, 젖어 있으면서도 젖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신체의 상태 같은 것들이 이 블루 톤 안에서 미세하게 진동한다. 작가가 말하는 “깊은 집중의 상태, 무중력 같은 상태”가 바로 이 색을 통해 구현된다.
〈기준축 Axis of Self〉 — 모든 깊이는 나로부터 측정된다
<기준축 Axis of Self> 65.1x53cm, acrylic on canvas, 2025
〈기준축〉은 이번 전시에서 비교적 작은 크기지만, 개념적으로는 전시의 핵심에 놓인 작업이다. 작가는 “모든 깊이는 내 안에서부터 측정된다”라는 문장으로 이 작품을 설명한다. 2023년 숲과 바다, 2025년 땅과 바다를 오가며 진행해온 리서치들은 모두 ‘0점 아래’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됐다.
기준축은 물의 표면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표면은 곧 ‘나’라는 자아의 표면이기도 하다. 깊이와 시간, 심연의 방향은 결국 나라는 기준에서만 측정된다. 감정의 깊이, 내면의 깊이는 숫자로 잴 수 없지만, 자기 안으로 잠수해 내려간 거리만큼의 부피를 갖는 추상적인 값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오랜만에 자화상 형식으로 이 기준축을 붙잡는다.
화면 위에서는 앱소번트 젯소를 여러 번 올려 물감이 쉽게 섞이지 않도록 만든 뒤, 아크릴 터치가 스스로 뭉치고 번지는 무늬를 유도한다. 시간과 물, 물감의 양이 스스로 만든 무늬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조형한 얼굴이라기보다, 바다의 표면과 내면 사이에 떠 있는 하나의 존재처럼 보인다.
〈심연의 끝자락〉 — 닿고 싶지만 끝내 닿지 못하는 자리
<심연의 끝자락 Verge of the Deep> 90.9x72.7cm, acrylic on canvas, 2025
〈심연의 끝자락(Verge of the Deep)〉은 바다의 바닥, 그 바닥 너머를 상상하는 그림이다. 프리다이빙에서 2분을 채우지 못한 1분 50초의 숨, 그 짧지만 고통스러운 시간에 대한 체험에서 출발한 작업이기도 하다. 바다 속에서 돌 하나를 만지기 위해 손을 뻗고 발차기를 하면서도, 결국 숨에 밀려 수면으로 떠오르는 반복된 경험.
그렇다면 우리가 닿고 싶어 하는 ‘심연’은 정말 바다에만 있을까. 작가는 인간 내면에도 끝내 닿기 어려운 깊은 장소가 있을 것이라 말한다. 그곳 역시 숨이 차오를 만큼 감당하기 힘든 공간일 것이다.
화면은 위쪽 중앙에 조금 더 밝은 톤을, 아래쪽 앞 공간에는 둥글게 어두운 톤을 배치해, 어두운 전경에서 살짝 밝은 안쪽을 바라보는 미묘한 거리감을 만든다. 푸른 붓 터치 사이에 숨겨진 선묘는 부드러우면서도 격정적인 움직임을 만들고, 하얗고 길게 미끄러지는 선들은 중력과 물줄기가 동시에 느껴지는 심연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조용하지만 끊어지지 않는 물소리가 들리는 듯한 화면이다.
사운드 작업 〈연결감각 Connected Senses〉 — 심연의 리듬을 듣는 방법
이번 전시에는 서혜민 작가와 협업한 스테레오 사운드 작업 〈연결감각〉도 함께 소개된다. 2분 36초 길이의 루프 구조로 구성된 이 사운드는, 물속에서 느끼는 리듬과 맥박, 숨의 속도를 소리로 번역하는 장치에 가깝다. 회화가 시각적으로 ‘잠수’를 제안한다면, 사운드는 청각을 통해 관객의 몸을 심연의 리듬에 동조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회화를 보며 천천히 호흡을 맞춰 듣다 보면, 관람의 속도 자체가 서서히 느려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물의 표면: 그 깊이를 찾는 방식》은 빠르게 훑어보기에는 아까운 전시다. 물과 바다, 심연이라는 키워드는 이미 익숙한 이미지지만, 작가는 이를 ‘경험의 언어’로 다시 번역해낸다.
바다를 잘 모르는 사람,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에게도 이 전시는 유효하다. 중요한 건 실제 수심이 아니라, 각자가 허용할 수 있는 내면의 깊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