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가의 공원 산책 1] 자연과 도시의 흐릿해진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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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

영국 게이트헤드(Gateshead)의 솔트웰 공원(Saltwell Park)

지난여름 영국의 뉴캐슬(Newcastle Upon Tyne)이라는 곳에서 3주간 머물렀다. 생활을 했다고 하기에는 다소 짧았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나니 나름의 생활 리듬이 생겼다. 오전에는 방문 연구자로 초대받은 대학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고 오후에는 여행의 동행자들과 박물관, 미술관, 쇼핑센터, 공원 등을 돌며 한가함을 즐겼다. 돈 들이지 않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기엔 공원이 가장 만만했다.

솔트웰 공원 안에 있는 성
공원 안에 있는 성. 지금은 안내소로 사용되고 있다.

누군가는 “조경가가 그걸 몰랐어?” 하겠지만 조경가는 보통 공원을 답사하지 공원에서 산책하지 않는다. 아니 산책하기 어렵다. 관찰하고 분석하며 자신만의 설명과 해석의 언어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산책자로 나갔다가도 비평가가 되려 한다. 외국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관광지로 이름난 곳이 아니라서 찾기 힘든 곳이어도 굳이 찾아가서는 급히 사진 몇 장을 찍고 나온다. 그리곤 공원에 있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방문했던 공원에 관한 텍스트를 찾아 읽으며 그 공원을 어떻게 개념화하고 타인에게 설명할지 궁리한다. 모두들 한적하게 시간을 보내는 공원에서 사진기 셔터를 누르며 바삐 돌아다니는 이가 있다면 조경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솔트웰 공원 입구
솔트웰 공원 입구. 공원의 규모와 달리 소박하다.

지난여름 영국에서는 동행자들과 보조를 맞추다 보니 공원을 휙 둘러보고 나오지 못하고 오랜 시간을 ‘머물러야 했다’. 동행자들은 휴식을 위해, 나는 답사의 목적으로 찾은 게이트헤드(Gateshead)의 숄트웰 공원에서 한 나절을 보냈다. 주변이 한산해 작은 동네 공원이려니 했는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그 크기와 개방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잔디밭과 호수가 어찌나 넓은지 고개를 들지 않아도 잔디밭과 호수, 그 위로 드리워진 하늘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넓은 공원을 골고루, 그리고 꽉 채운 이용자들의 수에도 놀랐다. 사람들은 그룹 지어 공원 여기저기 앉거나 누워서 여름의 오후를 즐기고 있었고,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놀이터를 점령하고 있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장미정원과 오래된 성을 산책하는 이들도 있었다.

솔트웰 공원
넓게 펼쳐진 잔디밭과 호수, 여름 오후의 일상

공원을 두텁게 에워싸는 숲은, 한 번도 숲이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처럼 깊었다.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숲 속 계곡도 원래부터 그곳에 있는 듯했다. 태고 때부터 있던 숲 사이에 길을 놓고 한 모퉁이를 잔디밭으로 바꿔 공원을 조성한 듯했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니 ‘인위적으로 조성된, 디자인된’ 공원이었다. 19세기 초 산업화로 도시가 확장되면서 대기오염 및 식수 부족으로 공중 보건에 대한 위험이 있었고, 시민들은 공원 조성을 요구했다. 시의회는 이를 수용해 한 사업가의 부동산을 사들여 이 공원을 조성했고 1876년 개장했다. 에드워드 켐프 Edward Kemp라는 유명한 조경가가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영국식 정원 양식에 따라 디자인했다.

솔트웰 공원의 울창한 숲
솔트웰 공원의 울창한 숲은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무색하게 만든다.

그런데 어디부터가 자연이고 어디부터가 인공일까? 오래된 공원에서는 그 경계가 흐려진다. 분명 디자이너의 의도에 따라 공원은 만들어졌지만 시간 속에서 나무는 성장하고 숲은 울창해진다. 물길도 변하고 물길 주변의 바위에는 이끼도 끼게 된다. 조경가가 초대하지 않았던 식물들도 슬그머니 들어와 자리를 잡고 성장한다. 또 갖가지 곤충이며 새도 먹이를 찾아 공원으로 들어온다. 그렇게 시간 속에서 작은 소생태계가 형성되고 내 눈 앞에 펼쳐진 경관이 된다. 그렇다고 그 변화의 과정 속에 사람의 개입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산책로가 여러 식물로 덮이지 않도록, 잔디밭에서 이용자들이 쉴 수 있도록, 연못의 물이 썩지 않도록, 계절별 꽃이 피도록 사람들은 개입하지만 자연의 생명력에 묻혀 도드라지지 않는다.

솔트웰공원
솔트웰공원 주변은 짙은 숲이다.

이쯤 되면, 조경가는 공원을 자신의 언어로 말하려는 시도가 주제넘은 짓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앎과 언어가 짧은 것도 있지만 도시의 아주 작은 곳에 침투한 자연이 쉼 없이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며 만드는 경관에 놀라고 감탄하는데 여념 없게 되기 때문이다. 몇 개월 후 가을은 어떤 모습일지 봄과 겨울은 어떨지, 십 년 뒤는 또 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해하며 나의 언어 따위는 잊게 된다. 긴 시간 동안 공원 안에서 허물어진 자연과 인공의 경계 덕에 그곳에서는 경관 안에 머물렀다. 비평가는 경계 밖의 어딘가에서 서성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