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최고의 한국 문화유산 70가지 (4)

Features, Opinion

한국의 정신과 문화 알리기회
17. 영원의 걸작 반가사유상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삼국시대의 많은 불상 중에서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은 가장 기념비적 인 작품으로 꼽힌다. 감마선 사진, 비파괴 형광분석 등을 통해 조사한 결과 83호 불상은 밀랍주 조법으로 제작되었는데, 제작 초기 흙으로 불상의 형태를 만들 때, 입자가 큰 사질점토를 내형토 로 사용해 내부 공간의 공기가 원활히 배출되어 쇳물이 잘 흘러들어 가도록 했으며, 내형토를 확 실하게 고정시키는 철심을 배치했다. 반가사유상의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에 올리고 고요히 사유에 잠긴 모습은 똑같이 ‘사유’를 주제로 한 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비교되곤 한다. 로 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온 몸을 근육질로 표현하고 괴롭고 고뇌에 찬 표정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강렬한 인상과 함께 긴장감을 유발한다면, 반가사유상은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조각 표현과 잔잔 하고 평화로운 미소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맑게 정화시킨다. ‘생각하는 사람’이 내가 이 세상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하는 사고방식의 표현이라면, 반가사유상은 ‘나’를 떠난 무아(無我)의 상태에서 느끼는 법열과 자비심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국보 83호 반가사유상과 재료는 금속과 목재로 각각 다르지만 형태와 모습이 거의 흡사해서 쌍둥이 상으로 불리는 일본의 국보 인 고류지(광륭사)의 반가사유상 또한 신라에서 제작하여 일본에 보낸 것이라는 설이 우세하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Karl Jaspers)는 이 반가사유상을 보고 그가 느낀 감동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고류지의 미륵보살상은 진실로 완벽한 실존의 최고 경지를 한 점 미망 없이 완전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나는 이 표정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조화로우며 세속적 잡사의 한계 상황을 뛰어넘은 인간 실존의 영원한 모습을 상징했다고 생각한다. 철학자로 지낸 온 수십 년간 인간 실존의 진정한 평화로움을 구현한 이 같은 예술품을 달리 본 적이 없다. 이 불상은 모 든 인간이 다다르고자 하는 영원한 평화와 조화가 어울린 절대 이상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18. 찬란한 금은채색의 나라 신라

일본 나라(奈良)시대에 왕명으로 편찬된 『일본서기』(AD 720)에서는 신라를 가리켜 “금은채색이 많은 나라, 그 나라가 신라국이다(金銀彩色多在其國)” 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랍 사학자이며 지 리학자인 알 마크디시(al-Maqdisi)는 『창세와 역사서(The book of the Creation and of History/Kitab al-bad wal-tarikh)』(966)에서 “신라인들은 가옥을 비단과 금실로 수놓은 천으로 단장하며 식사 때는 금으로 만든 그릇을 사용한다”고 적고 있다. 또 다른 아랍의 지리학자 알 이 드리시(al-Idirisi)는 “신라에는 금이 너무 흔한 바, 심지어 그 곳 주민들은 개의 쇠사슬이나 원숭 이의 목테도 금으로 만든다”고 적었다.

19. 금관의 나라 신라
신라 금관
황남대총 북분 금관 |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위와 같은 역사기록이 말해주듯 신라(BC 57~AD 935)는 당시 동아시아에서 금이 가장 풍부하게 생산되는 나라였으며 주변의 나라들이 경탄할 만큼 아름답고 고도로 정밀한 금속공예기술을 발 전시켰다. 지금까지 세계 각지에서 발견된 고대사회의 순금관은 모두 합해서 10여 점 밖에 되지 않는다. 이 중 6점이 신라에서, 그리고 다른 2점은 또 다른 한국의 고대 왕국인 가야에서 만들어 졌다. 금관은 신라의 건국 이야기(김알지)를 형상화하는 나뭇가지 모양의 기본 골격에 얇은 금판 자를 콩알만한 크기로 오려서 금실로 무수하게 꼬아 달아놓아 조그만 움직임에도 이 작은 달개 들이 흔들려 별빛처럼 반짝이도록 했다. 또 그 사이사이에는 비취옥으로 만든 곡옥을 달아서 황 금빛 나무 숲 사이에 일렁이는 푸른 잎의 색채 효과를 거두도록 했다.

20. 금알갱이 5천개로 장식한 신라 금귀걸이

경주 보문동 부부총에서 출토된 국보 90호 금귀걸이는 지금까지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귀걸이 중 가장 정교하고 화려한 걸작으로 꼽힌다. 직경이 0.5mm도 안 되는 작은 금알갱이 5,000개와 얇은 금실을 이용해서 거북등 모양으로 구획하고 다시 그 안에 꽃문양을 표현한 정교함에 놀라 게 된다. 고대 어느 나라보다 앞선 신라의 세련된 미각과 최고의 금속공예기술을 보여준다.

21. 0.3mm 초정밀의 예술 감은사지 사리함
감은사지 동삼층석탑 사리장엄구
감은사지 동삼층석탑 사리장엄구 |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1300년 전에 만들어진 감은사지 동탑 사리함은 외함과 내함으로 이루어져 있다. 30cm 높이의 외함을 열면 18.8cm 높이의 내함이 나오는데, 이 내함을 장식하고 있는 초소형 풍경(절 지붕의 처마에 다는 종)의 무게는 0.04g. 사람이 느낄 수조차 없는 무게다. 풍경의 몸체는 두께 0.1mm 의 얇은 금판을 말아서 만들었고, 풍경을 매단 사슬의 굵기는 머리카락 굵기와 같다. 이 풍경을 현미경을 사용하여 확대해 보면 맨 눈으로는 식별하기조차 어려운 0.3mm의 금알갱이를 세 개씩 모아 부착해 놓은 것이 확인된다. 금알갱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가느다란 금실을 만들고, 금 실을 일정한 크기로 자른 후에 높은 온도의 열을 가하면 표면장력에 의해 순식간에 둥근 모양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금알갱이를 세 개씩 모으고, 금알갱이 사이에 90%의 금과 10%의 은이 섞인 땜쇠를 붙인다. 그리고 열을 가하면 순금보다 녹는점이 살짝 낮은 땜쇠가 먼저 녹으면서 금 알갱이가 순식간에 부착된다. 금알갱이는 녹지 않으면서 은을 10% 섞은 땜쇠만 녹게 하는 온도 (녹는점)의 차이는 15도 내외에 불과하다. 오늘날과 같이 전열기구도 없던 시대에 1,000도 이상 의 고온에서 이 미세한 온도 차이를 어떻게 식별하고 조절하였는지 불가사의한 점이다. 또한 땜 쇠의 크기는 최소로 하고 개별 알갱이들의 둥근 모양은 최대한 유지하면서 땜질한 흔적조차 없이 부착되어있다. 2002년 KBS 역사스페셜팀에서 고대 유물을 재현하는 최고의 장인을 찾아 이 풍경의 재현을 부탁했다. 장인이 현대적인 전열 기구를 가지고 작업해 낸 풍경에서는 현미경으로 확대해 보았을 때, 금알갱이의 땜질한 흔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오늘날의 기술이 1,300년 전의 기술을 능가하기는 고사하고 제대로 재현하는 것조차 어렵다는 결론을 얻었다.

<편집자 주>

‘세계 최초·최고의 한국 문화유산 70가지’ 시리즈는 초당대학교 협찬으로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