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안의 여행노트] 1. 라싸에서 신데렐라까지

Travel

글 사진 정이안 (정이안 한의원 원장)

은둔의 나라 티벳으로

진료실을 훌쩍 떠나 바깥세상을 한 바퀴 돌아보고 오는 일은 매번 즐겁다. 티벳을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건 20년 전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던 때다. 당시 트레킹을 위해 카트만두와 포카라에서 머물렀는데 거기서 히말라야를 넘어와 모여 살고 있던 티벳인들과 티벳 사원을 처음 만났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성지(聖地), 라싸에 나도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06년에 칭짱 열차가 개통되었을 때는 기차표 구하기가 어려웠고, 2008년에는 티벳 독립시위사태로 여행이 제한되어 못 갔다. 드디어 2010년, 북경서 출발하는 칭짱 열차를 타게 되었다.

타르초
하늘로 펄럭이는 타르초 (바람의 깃발)

겸손해지게 하는 신의 땅, 라싸

해발 3700m 고산지대에 위치한 라싸까지 가려면 북경서 기차로 이틀을 내리 달려야 하는데, 라싸에 가까워질수록 고산 증상이 심해진다. 신의 땅을 쉽게 볼 수는 없는 모양이다. 티벳어로 ‘성지(聖地)’를 뜻하는 ‘라싸’는 1300년 역사를 지닌 고도답게 시내 어디에서라도 볼 수 있는 포탈라궁을 중심으로 순례자들과 사원이 가득한 곳이다. 시선을 두는 곳마다 구름과 푸른 하늘, 높은 산에 둘러 싸여 있는 라싸는 선택받은 자만이 볼 수 있는 그런 땅이다.

티벳
조캉사원에서 기도하는 티벳여인

집착을 벗어버리게 하는 조캉사원의 새벽

티벳 최초의 통일 왕조를 이룬 송첸 캄포 왕이 왕비로 맞을 문성 공주를 위해 지었다는 포탈라궁은 금빛 지붕이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솟아있는데, 기대했던 만큼이나 인상적이다. 그러나 라싸에서 가장 마음을 빼앗긴 곳은 티벳인들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관음보살을 모셔둔 조캉사원. 티벳인들이 가장 신성시한다는 이 사원은 특히 새벽 풍경이 이색적이다. 사원 외곽을 한 바퀴 크게 도는 바코르는 새벽부터 기도드리러 온 티벳 사람들의 행렬로 가득하다. 새벽시간, 순례자와 기도자 들에 섞여 바코르를 함께 돌아본다. 생활과 종교가 일치된 그들의 참모습에서 집착을 벗어버리려는 깊은 신심을 함께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

하늘 호수를 보다. 남쵸 호수(Namtso Lake)

해발 4718미터에 위치해 있지만 과거에는 바다였다고 하는 남쵸 호수를 하루 동안 다녀올 생각으로 라싸를 약간 벗어나자 바로 황량한 국도가 끝없이 뻗어있다. 국도 옆으로는 한번 또 한 번 이마를 땅에 붙이며 오체 투지하는 순례자들이 간간이 보인다. 차로 4시간을 달려 남쵸 호수 근처까지 가면 5170m의 고개를 넘어야 한다. 하늘 호수도 인간들에게 온전히 그냥 모습을 내어주지는 않을 모양이었던 것 같다. 7000m 이상의 고산들이 호수 주변을 감싸 안고 하얀 구름이 호수 가까이에 붙어 있는 이곳, 바람소리만 들리는 이곳에서 몸과 마음의 평안이 느껴진다.

남쵸호수
하늘 아래 위치한 남쵸호수

파격의 발레, 신데렐라로 여행을 마무리하다.

여행의 마지막 날은 북경에서 하루 묵는 일정이다. 북경의 명소, 오페라하우스(국가대극원)에서 공연된 세계 최정상 컨템포러리 발레단인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파격의 발레,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안무의 ‘신데렐라’를 보기 위해서다. 인공 호수 위의 거대한 UFO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건축물, 오페라 하우스도 돌아보고 좋아하는 공연도 볼 수 있는 기회. 유리 구두 대신 금가루를 묻힌 맨발의 신데렐라도 좋지만 요정엄마로 나오는 베르니스 코피에테르의 관능적이면서도 그로테스크한 춤은 역시 만족스럽다. 샤넬 그룹의 디자이너 제롬 카플랭의 의상과 모던한 아트 미술관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무대 또한 DVD로 감상할 때보다 극도의 세련미가 더욱 잘 느껴진다.

북경오페라하우스
북경오페라하우스의 야경

떠나야 자신을 재발견할 수 있다.

고즈넉하고 조용했던 티벳, 라싸에서의 명상과도 같았던 시간과 파격 발레를 감상하면서 추석 휴가 8박 9일이 그렇게 지나갔다. 여행을 다녀온 후 달라이 라마의 트위터에 팔로우 신청을 했다. 매일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그의 글을 읽으며 라싸에서 어느 날 오전에 한가롭게 거닐었던 그의 여름궁전 뤄뿌링카를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