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여행자 4] 강화도 – 1

Travel

글.드로잉 이관직 (BSD건축 대표, 고려대 겸임교수)

여행을 한다. 일상의 시간에서 떼어내서 괄호 안에 묶어 다른 짐들과 함께 가방에 담는다. 다른 마음으로, 다른 시선으로 낯선 여행지를 보고 싶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정말이지 기대처럼 그런 흡족한 순간이 있다. 등산 중에 산 중턱에서 순한 바람을 만나는 기분, 햇빛 일렁이는 수면 아래 밝은 색 모래를 바라볼 때 느낌. 그렇지만 보통의 경우는 낯섦으로 인한 긴장과 불안이 기대와 호기심과 매번 대립한다. 여행은 대립의 상태이다. 

강화성당

성공회 강화성당 사제관 34x24cm 종이에 펜화 2014

이번 여행지는 두 개의 커다란 다리로 남쪽과 북쪽이 연결된 섬이 아닌 섬, 강화도다. 강화도는 우리 민족의 아픔과 자존의 역사를 함께 간직한 곳이다. 서구 열강은 배를 대놓고 대포를 겨누며 개화의 요구하고 힘없는 조선은 맞서다가 패전했다. 짓밟힌 아픈 역사는 더 이전부터 시작한다. 고려의 무신 정권이 원나라의 침탈에 쫓겨 강화로 천도하고 항몽 했었다. 우리나라는 도성, 읍성, 산성의 방어 체계를 가지고 있다. 전란이 생기면 생활 터전인 도성과 읍성을 버리고 방어에 용이한 산성으로 피난, 몽진을 간다. 강화도는 개성과 한양 도성에서 가깝고, 성곽 주변에 설치하는 방어용 수로인 해자를 대체할 수 있는 물살이 빠른 염하가 있어서 있어 외적의 방어에 용이한 곳이어서 고려 이후 많은 피난과 저항의 유적이 있다. 

강화성당

강화온수리성공회성당 34x24cm 종이에 펜화 2014

학생들과 강화도로 답사를 왔다. 학생들이 하나로 마트에서 장을 보는 동안 길가 2층 집 옥상에 올랐다. 70년대쯤 형성되었을 것 같은 동네가 보인다. ‘반선’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시멘트로 미장된 박공벽에 걸린 이 간판은 술집일까? 그 앞 길가에 떡집을 겸하는 제분소가 있다. 온갖 곡류를 갈고 기름도 짠다. 간판 속에 ‘길흥’이라는 동그라미에 넣은 상호가 인상적이다. 동네 이름에 있는 운이 트이고 흥하라는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지명과 달리, 역사의 느낌을 벗어나서도 강화도를 돌아보는 나의 느낌은 왠지 슬프다. 산과 바다, 들과 강으로 천혜의 풍광을 가지고 있는 땅인데, 개발과 생존의 틈에서 곳곳에 드러난 삶의 애환이 엉켜 있는 마을을 내려다보는 마음은 편하지 않다. 

강화 길상면

강화길상면풍경 23x16cm 종이에 펜화 2014

강화길상면거리

강화길상면거리 28x20cm 종이에 담채화 2018

우리나라 다른 도시도 비슷하지만 강화도에도 집들의 밀도에 비해 교회의 첨탑과 간판이 많아 보인다. 특히 강화도는 영국 정교인 성공회가 개화기에 지은 두 곳의 성당, 강화성당과 온수리 성당이 보존되어 있다. 강화성당이 위치한 강화읍 관청리 언덕은 고려 중기 몽고군의 침입에 항쟁하기 위해 강화도에 천도하고 내성을 축조한 남쪽 성터의 일부분으로 강화읍 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견자산 언덕 마루이다. 성터 위에 자리한 성당은 지금도 너른 공용주차장에서 긴 모습의 성루처럼 보인다. 기독교 성경에서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모티브로 설계했다고 전하는 성당은 단순한 긴 직사각형의 평면의 기독교 초기의 바실리카 양식을 보여준다. 한옥과 긴 평면의 교회를 절충한 외관도 독특하지만 2층이 좁아지는 중층의 절충 한옥의 목조 가구가 보여주는 실내의 모습도 독특하다. 사진을 찍기도 했지만 늘어진 펜던트 조명등과 목조 가구가 중첩된 성당의 실내를 그려본다. 

강화 성당

성공회강화성당 실내 20x23cm 종이에 펜화 2018

강화성당이 지어지고 몇 년 뒤인 1906년에 지어졌다는 온수리 성당이라고 불리는 성안드레아 성당은 단층 한옥이다. 출입문을 겸했을 외삼문 형태의 종루가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