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은의 아트하이킹] 2. 속리산의 품에서 위로를 받다

글 그림 김강은 (벽화가, 그림 여행 작가)

그런 날이 있다. 유독 산의 품이 그리워지는 . 날은 그런 날이었다. 한동안 일과 일상에 치여 살다보니 산의 초록이, 풋풋한 향기가 무척이나 그리워졌다. 자연으로의 여행은 언제나 좋지만, 쉼이 간절한 시점에 자연이 주는 포근함과 감동은 조금 진득하게 닿는다. 그래서였을까. 이른 아침부터 세시간 반을 차로 달려가야 했지만 마저도 설렘으로 가득했던 것은. 이번 목적지는 충북 보은군과 경북 상주군 화북면에 걸쳐 있는 속리산이다.

속리산 

다시 찾은 속리산

들머리는 화북탐방지원센터, 입구에 도착하니 봄이 잠시 왔다가 도로 달아난 쌀쌀한 공기가 맞아준다. 생각해보니 곳은 처음이 아니다. 4년전 국립공원 완주 프로젝트를 하던 시절 다녀왔던 속리산이다. 하지만 처음에 듯한 낯선 기분이 들었던 것은 같은 산이라도 코스마다, 계절마다, 그리고 누구와 함께인가에 따라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잠시 시절을 떠올리며 센치해진 기분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화북탐방지원센터에서 속리산 문장대로 향하는 길

등로에는 작은 산죽이 즐비해 있었고, 위엔 아무도 없었다. 이따금씩  바람소리, 소리, 딱따구리 소리만이 적막함 위에 울려퍼질 뿐이었다. 그래, 이것이야말로 그렇게 원하던 전세 등산 아닌가! 오랜만에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는 오롯한 시간이었다. 그윽한 산은 호젓함을 넘어 도시의 소음과 스트레스로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는 했다.

봄이 왔음을 알리며 분홍빛 진달래가 꽃봉우리를 틔우면서도, 계곡 켠에는 하얀 눈이 쌓여있었다. 쪽에서는 꽃을 피우고, 쪽에서는 눈이 쌓여있다니! 속리산에는 계절이 맞물려 있었다. 계절과 계절 사이에, 겨울과 사이에 내가 서있었던 것이다. 때때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특별한 경험을 있다는 것이 산의 독특한 매력이기도 하다.

길에는 잔설과 빛바랜 나뭇잎 등 아직 채 지나지 않은 겨울의 여운이 서려있다.

속리산의 품에 안기다

정상인 문장대가 가까워질수록 산은 점점 가팔라지며 거대한 바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떤 바위는 새의 부리처럼 뾰족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고, 어떤 바위는 할아버지의 모습처럼 깊고 짙은 주름과 연륜을 보여주기도 했다. 거대한 바위를 올려다보고, 만져보고, 위에 서서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다 보니 지루한 줄도 모르고 어느덧 정상에 다다랐다.

문장대에 올라서자 뿌연 안개를 몰아내고 파아란 하늘이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유난히 바람이 사나운 날이었지만 바위 아래에 자리를 잡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거대한 바위의 보호를 받으니 바람은 잔잔해졌고 햇빛은 포근하게 느껴졌다. 속리산은 그렇게 조용히, 나를 품어주었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크고 작은 기암괴석이 아름다운 문장대 정상에서 내려다 본 풍경

문장대 표지석과 함께

힘껏. 다시.

산이 내뿜는 여러 빛깔의 영감의 조각을 주워담기 위해 파렛트를 펼쳤다. 사방이 트인 풍경 중에서도,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앞에 있는 바위였다. 이름이 있는 봉우리인지는 모르겠고, 속리산을 대표하는 바위는 더더욱 아닌 같다. 그럼에도 바위를 그리기로 마음 먹었다. 작은 바위들이 차곡 차곡 쌓여 서로 기대며 하나의 견고한 모양새를 이룬 것이 유난히 마음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가 사는 세상을 상기시키는 것도 같다. 이렇게 속리산은, 바위는, 그리고 자연은 없이 작은 깨달음들을 던져 준다.

평평한 바위에 자리를 잡고 이름 모를 봉우리를 담아보았다

속리산 하이킹 아트

조화라는 단어는 바로 자연으로부터 파생된 단어이던가. 어느 하나 불협화음 내지 않는 풍경이 더할 나위 없이 조화롭다. 파란 하늘, 바람이 만들어낸 구름의 , 햇빛의 온도, 빛을 받은 바위의 색감, 질감, 바위 사이에 자리잡은 소나무……. 덩어리를 이룬 조화로운 요소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곱씹으며 작은 화폭에 옮기는 동안, 왠지 모를 위안을 얻었다. 시멘트처럼 차갑고 딱딱해진 마음에 따스한 활기가 올랐다. 다시 힘껏, 살아갈 힘이 생겼다.

곳에서 담뿍 채운 따스한 에너지로 한동안 씩씩하게 있을 같다. 그러다가 에너지가 떨어지는 날에, 다시 속리산을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