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여행자 2] 나주의 어느 골목 – 2

Travel, Architecture

글.드로잉 이관직 (고려대 겸임교수, 서울시 공공건축가, BSD건축 대표)

여행은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볼거리를 챙기고 거리를 걷는다. 걷다 보면 관광 안내서에 나와 있는 볼거리만큼 눈이 가는 것이 있다. 소박한 것, 일상적인 것. 거리의 흔한 근린생활 건물들, 담벼락에 내리는 햇빛, 그늘진 골목 한쪽에서 물기를 영양으로 살아가는 이끼들. 그 속에 세월이 담겨있다. 담장의 시멘트 미장의 깨진 틈새에서 싹을 키운 잡초를 본다. 나는 이름도 몰라 잡초라고 부르지만 그 집요한 생명력에 감탄한다. 행정기관 어디서 인지 의욕을 가지고 시행했지만 관리가 되지 않는 곳도 많다. 보도블록은 비교적 새것인데 몇 년 동안 버려진 채 여기저기 풀들이 많다.

나주 향교 명륜당
나주 향교 명륜당에서 29x18cm 종이에 펜화 2019

다시 지도를 펼쳤다. 나주 읍성은 1872년 옛 군현지도에 구체적으로 남아있다. 우리나라 보통의 도시가 그렇듯 산으로 둘러싸여 위요되어 있고 동서남북에 성문을 내고 관아와 내아, 객사를 그려놓았다. 조선말의 혼란과 일제 강점기에 침탈로 읍성은 거의 소실되었고 지금은 대부분 복원 유물이다. 옛스러움을 제일 많이 간직하고 있는 것이 나주향교인 것 같다. 담박에서 바라보는 풍경 속에 중삼문도 품격이 있고 비례가 아름답다. 나주에서 제일 유명한 고전 건축물인 객사는 너른 마당을 가지고 있고 규모도 가장 크다. 객사 본건물은 양쪽에 있던 동익헌, 서익헌이 허물어졌을 때 본래 맞배지붕을 팔작지붕으로 고쳐서 복원한 듯한 어색함이 있다. 그 후에 양쪽 건물을 몇 차례 추가로 다시 지으면서 지붕들의 만남이 더욱 이상하다.

나주 정수루
나주 정수루 41x23cm 종이에 수채화 2019
금학헌
나주목 내아 금학헌 내부 37x21cm 종이에 펜화 2019

관광 자료를 얻기 위해 나주 문화원 앞에 있는 안내소를 찾았다. 마침 점심시간. 문이 열릴 때를 기다리며 닫혀 있는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잘생긴 중층의 정수루가 보인다. 금성관의 정문인 망화루 밖에 있는 동향으로 서있는 정수루는 나주목 관아문으로 1603년(선조 36)에 나주목사로 부임한 동계 우복룡이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19세기에 크게 중수된 것. 외동헌과 내동헌이 있었지만 지금은 내동헌인 목사내아(금학헌)만 남아 있다. 향리들의 집무처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겠지만 지금은 이곳저곳에 건물이 차 있고 남은 부분은 주차장으로 쓰고 있다.

금성관 중삼문
금성관 중삼문을 본다 29x18cm 종이에 펜화 2019

나주는 마한 시절로 거슬러 2000년의 도시를 강조한다. 지금 남아있는 2000년 전 유구는 사실 도시가 아니라 왕과 귀족의 무덤과 살림터이다. 조선 후 100년, 조선 500년, 고려 500년 통일신라 500년, 삼국시대와 삼한시대까지 거슬러 가서 2000년의 긴 세월. 도시를 살리기 위한 일종의 도시마케팅의 노력은 단숨에 2000년의 시간을 단숨에 플래카드와 포스터로 만든다. 도시를 활성화시키고 주민의 생업에 도움을 위해 도시 역사를 상품화가 한다. 수 년 전 수원화성을 그리고 공부하다가 관광(觀光)이라는 단어를 새롭게 알았다. 관광은 말 그대로 하면 빛을 보는 일이다. tour, travel, trip, journey와는 어원적으로 뜻이 다르다. 여느 책에서는 중국의 역경에서 나라의 문물을 돌아본다는 뜻으로 어원을 말하기도 하지만, 임금의 행차를 보는 일과 관련한 표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살기 어렵고 볼거리가 없었던 시절에 임금의 행차나 원행(園幸)의 길고 화려한 행렬이야말로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신 나주목지도
신 나주목지도 38x46cm 종이에 수채화 2019

모든 도시는 오래된 세월을 겪으며 누적된 아름다움과 다양한 건축물이 모여 된 아름다움이 있다. 새것에 열광하던 시기. 새로운 사상과 도시가 세워지던 시절 아크로폴리스, 나폴레옹 3세 시절 오스만 백작의 대변혁과 정비의 파리. 빅토리아 여왕 때 산업의 생산성과 미래에 대한 기대의 런던, 새로운 돌연변이로서 계획도시의 비전을 보여준 뉴욕. 새롭게 시작한 후, 세상의 모든 것처럼 도시도 세월 속에 누적되고 순환된다. 사랑받기도 하고 퇴락하기도 한다. 끊임없이 변형된다. 이제 오래된 아름다움이 생겨난다.

오래된 도시는 아름답다. 긴 시간을 삶의 토대로서, 삶의 산물로서 길과 장소와 집들이 수십켜, 수백켜 짜여져 도시를 이룬다. 먹고 자고 교류하고 경쟁하고 관리하고 즐기는 장소인 집들은 갖가지 모양으로 군집되어 도시를 이룬다. 크고 작은 길들은 도시의 모든 곳에 이어져 있다. 복잡하게 엉켜 있고 세월의 흔적을 겹겹이 간직한 도시의 오래됨은 새것의 신선함 이상으로 아름답다. 누적미 혹은 세월이라는 말을 만들어도 좋을까. 또 다른 도시미의 하나는 군집미이다. 다양한 종류가 모아진 것은 아름답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여느 도시의 조감 풍경들은 우열을 비교하기 어렵지만 각각 특유의 모여진 아름다움이 있다. 세월의 누적 속에 도시는 서로 다른 이형의 것들이 만나면서 어색했던 선과 형태가 모여 엉키면서 입체적이면서 펼쳐진 다양한 형태들이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 낸다. 지형과 지리를 배경으로 욕망이 충돌하고 효율이 추구되고 제도와 규제가 나름 작동하면서 늘 진행형인 그 도시다운 군집미를 만들어 낸다. 도시의 군집미는 획일적인 부분과 난잡한 다양한 것들이 혼재되어 만들어진다.

나주는 2000년의 흔적은 모르지만 조선 조의 문화와 역사, 건축물과 도시 흔적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전후의 근대의 유적과 삶의 깊은 흔적들은 골목골목 간직하고 있다. 남아있는 것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은 새 것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려는 생각과 같다. 걸으면서 스쳐가는 우리의 것들 속에 소중한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싶다.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