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91] ☂️ 당신은 비를 좋아하는 사람인가요?

비에 영감을 받은 그림들.
예술이 배달 왔어요💌
2022.06.24 Vol. 91
비가 오면 그림을 그린 예술가들
John Sloan, Spring Rain, 1912, Delaware Art Museum.
존 슬로안이 그린 비 오는 날 뉴욕의 유니언 스퀘어를 걸어가고 있는 한 여성. 마치 관객이 여성 뒤를 따라 걷는 행인이 된 듯한 느낌을 준다.

안녕하세요! 아램이에요. 🙋🏻‍♀️
날씨와 감정 사이의 관계는 이미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 있죠. 춥고 음산한 계절 동안 정서적 어려움을 느끼는 계절성 정서장애가 나타나는 점이 대표적입니다. 사실 추운 겨울에만 이러한 정서적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요즘 같은 장마철에도 우울·무기력감을 호소하는 분들이 있어요. 햇빛을 받지 못해 세로토닌(만족과 행복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이 부족해지는 것이 원인인데요. 😣

비는 우울한 기분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비로부터 깊은 위안을 받고 감상에 젖기도 해요. 그런 사람들을 pluviophile(플루비오파일)이라고 부른답니다.

[pluviophile] : 비를 좋아해서 비 오는 날에 심신의 평온과 기쁨을 느끼는 사람

이번 아트레터는 하늘이 맑아지기를 기다리면서도, 세상을 차분하게 한 템포 쉬도록 만드는 비에 관한 작품들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1. 비 오는 풍경
Gustave Caillebotte, The Yerres, Effect of Rain (“L’Yerres, effet de pluie”), ca. 1875. Wikimedia Commons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인 귀스타브 카유보트가 그린 보기만 해도 마음이 촉촉해지는 작품입니다. 카유보트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편이었습니다. 유년 시절, 파리의 남동쪽 교외에 위치한 이예르(Yerres) 강둑에 있는 가족 별장에서 몇 번의 여름을 보냈어요. 이예르에 대한 추억이 많았던 칼리보트는 그 지역을 많은 예술작품에 등장시켰습니다.

강물은 거울처럼 반사되고 있고, 빗방울은 잔잔한 물 위에 떨어져 다양한 형태를 만듭니다. 자세히 보면 이 그림은 일본 목판화(우키요에)에 영향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작품을 세로 형식으로 그렸고, 빗방울 패턴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평행한 획을 만들며 떨어진 점, 차분하고 서정적인 시적 감각이 드러난 점에서 말이죠. 이 그림은 카유보트가 동생들과 함께 이예르 강둑에서 보낸 어린 시절 기억의 향수가 만들어 낸 작품입니다. 👦

2. 빗속을 달리는 기차
J. M. W. Turner, Rain, Steam and Speed – The Great Western Railway, National Gallery, London, UK.
그림에서 인상적인 것은 빗속을 질주하며 다가오는 기차의 속도감이 짜릿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 그림의 왼쪽 하단엔 강 위에 떠 있는 보트가 상당한 속도를 내며 기관차와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터너는 영국의 국민 화가답게 산업화의 아이콘인 기차를 풍경화에 배치하며 사람들로부터 여러 감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킵니다. 그의 그림은 모든 요소들이 흐릿하고 대기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지만, 그게 바로 터너 특유의 형태를 해체하는 매력적인 기법입니다.

뒤편으로 보이는 구식 도로교와 템스 강을 가로지르는 최신 철교였던 메이든헤드 브릿지를 통해 자연과 기술의 공생을,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 대한 예측과 기대를 나타낸 것으로 여겨집니다. 19세기 영국 화가 윌리엄 터너의 이 그림은 1844년 왕립 아카데미에서 처음 전시되었고 지금은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서 전시되어 있습니다.

3. 비올 때 출퇴근하기
John Philip Falter, Commuters in the Rain, ca. 1961. Christies.
이 일러스트는 인디애나폴리스에 기반을 둔 출판물 <The Saturday Evening Post>의 표지 그림으로 잘 알려진 존 필립 팰터의 작품입니다. 존 팰터는 이 잡지와 무려 25년 동안 120개 이상의 표지를 제작했어요.

이 삽화는 1961년 10월 7일자 <Saturday Evening Post>의 표지 이미지였습니다. 그림은 19명의 통근자들이 기차에서 내려 갑자기 쏟아진 폭우 속을 뚫고 뛰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우산, 스카프, 신문 등을 펴서 가림막을 찾으며 허둥지둥 건너갑니다. 그들이 느꼈을 긴박감과 좌절감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알 것 같아요…🤯

4. 같이 우산 쓰실래요?
Pierre-Auguste Renoir, The Umbrellas, ca. 1881-86. National Gallery, London, UK.
작품에서 르누아르는 비오는 날 파리의 바쁜 거리를 그렸습니다. 그림 속 인물들은 고르게 분포되어 있지 않고, 구도의 중심 또한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습니다. 화면엔 여러 인물들이 있지만, 아마도 관객들은 프레임의 왼쪽에 있는 여성에게 즉시 주목했을 것입니다. 그녀의 모습은 르누아르의 연인이었던 수잔 발라돈을 그린 것이라고 알려졌습니다. 우산도 없이 화면을 바라보는 여성 옆에 그런 그녀를 예리하게 포착한 남자의 모습이 눈에 띕니다. 곧 다가가 우산을 씌어줄 것만 같죠? 이 커플의 오른쪽엔 두 딸을 보살피며 걸어가는 당시 유행하던 옷 차림새를 한 중년 여성이 보입니다.

르누아르는 부드러우면서도 역동적인 움직임을 훌륭하게 표현했습니다. 그 흐름이 너무 자연스러워 군중 속에 함께 걷고 있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우산을 사용해 비 오는 풍경을 뚜렷하게 나타냈으며, 우산 뒤로 멀리 보이는 하늘엔 짙은 회색 구름이 잔뜩 끼여 있어요. ☔️

5. 무지개들
Albert Bierstadt, Four Rainbows over Niagara, private collection.
알버트 비어슈타트는 미국 서부의 화려하고 탁 트인 풍경을 그렸던 독일계-미국인 화가입니다. 허드슨 리버 화파의 일원이었던 그는 북아메리카 풍경을 그리기 위해 넓은 지역을 여행했고, 수 없이 많은 사진을 찍으며 장엄한 산맥과 멋진 암석들을 그렸습니다. 그의 루미니즘 그림들은 빛을 기초로 하여 자연 현상을 자세히 관찰하고, 조용하고 차분히 깊은 영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특징입니다.

위 작품은 나이아가라 폭포 하늘 위에 뜬 무려 4개의 무지개를 그린 것입니다. 🌈 쌍무지개도 평생 볼 수 있을까 말까 한데 4중 무지개라뇨? 무지개는 공기 중에 있는 물방울에 빛이 반사돼 굴절이 생겨 여러 색깔로 퍼져 보이는 현상입니다. ‘비(rain)’가 내린 뒤 볼 수 있는 ‘활(bow)’이란 뜻이죠. 즉, 무지개가 생기려면 ‘하늘에 해와 빗방울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무지개는 소나기가 내리는 중에나, 비가 막 갠 뒤에 볼 수 있어요. 🌦

알버트가 그린 4중 무지개는 1700년 이래로 기록된 목격이 4-5번 밖에 없어서 정말 특별한 광경을 포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무지개를 볼 수 있었던 건 나이아가라 상공의 대기 불안정 때문이었어요. 대기 중 물방울이 고르게 분포되지 않은 ‘국지성 소나기’로 인해 서로 다른 거리에서 물방울에 관통하는 빛줄기가 여러 차례 굴절돼 다중 무지개가 나타난 거죠. 그림 속 구름을 보세요. 흰색, 붉은색, 회색, 검은색 등 다양한 구름들이 하늘을 메우고 있습니다.

🌧

비가 올 때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그냥 비가 오도록 두는 것이다.
The best thing one can do when it’s raining is to let it rain.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시인)-

비로 인해 햇빛이 사라진 어둠에 우울해하고 두려워 하기보단, 비가 그치고 나면 새로운 것이 재생한다는 희망을 가지고 비를 그저 지켜 보세요. 🙂
🧑🏻‍🎨 추천 아티스트
마르는 것을 잡아두고, 헤쳐지는 것을 응집시키며, 순간을 영원으로 간직하는
김은지 작가
김은지, Everlasting Moment 18, 91cm x 65.2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ARTIST:김은지 (@kimeunjistudio)

김은지 작가는 작업실에 앉아 창문 밖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우리는 지금 고여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고인 물이 썩지 않고 처음 순간처럼 영원하면 좋겠다’는 욕심과 바람에서 작업이 시작되었어요. 주제부의 아크릴과 잉크를 섞은 겔 미디엄 터치는 여러 번 쌓여 깊이감을 만들고, 다채로운 색이 투과되는 레이어는 여러 경험들이 물방울처럼 모여드는 현상을 표현했습니다.

‘고이면 언젠가는 증발된다’. 얇게 쌓은 수많은 레이어는 오랜 시간 한 겹 바르고 건조시키는 순서를 이어나가면서 완성됩니다. 작가의 삶에서 수집된 이미지로 풀어낸 자연과 빛의 색채는 세상의 더 많은 것을 담아내기 위한 작은 샘을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지난 호 아트레터를 못 보셨다면?

[Vol.90] 🍭 형형색색 보자기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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