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3대 화가 중 한 사람인 장승업은 고아로 자랐고, 훌륭한 스승 밑에서 그림을 배워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의 스승이라 하면, 그를 유일하게 움직이고 열정을 지펴줄 ‘술’ 뿐이었죠. 극심한 정치적 혼란과 국운의 쇠퇴 시기에 살기도 했고, 돈과 벼슬에 관심을 두지 않은 그야말로 예술가 그 자체였어요. 술을 좋아해서 그림을 그릴 때에 술병은 반드시 곁에 있어야 했어요. 그래서 자신의 호를 '취명거사'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
그런 장승업이 특히 예뻐한 제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조선의 마지막 도화서 화원인 안중식이었는데요. 안중식은 고종의 어진과 황태자의 어진을 그렸으며, 장승업의 전통적인 화풍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인 색채와 표현 방법을 더해갔습니다.
특히 안중식의 작품 '백악춘효(白岳春曉)'는 제목만 보면 백악산(북악산)의 봄날 풍경을 그렸어야 하는데, 특이하게도 하나는 여름을 그린 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가을을 그린 작품입니다. 봄도 아닌데 그는 왜 그렇게 봄을 강조했을까요? 🌸
이 작품을 그린 1915년은 조선물산공진회가 열리면서 궁궐 주변이 파헤쳐지는 등 일제가 기물을 파손하는 일들이 일어났던 시기였습니다. 그림 우측, 가을 풍경 전면에 해태 1마리가 없는 것 또한 일제에 의해 소실당한 것이었죠. 당시 종로 청진동에 거주했던 안중식은 그 상황을 보면서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고, 동시에 조선의 새로운 봄날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에 그런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입니다. |
↪ [Vol.129] 🚢 예술의 새로운 터전, 유럽에서 미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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