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63] 이번 게임은 '고흐의 그림 찾기'입니다.

🦑 어느 것이 고흐의 작품일까?

예술이 배달 왔어요💌
2021.09.30 Vol. 63

고흐가 보여준 모방의 창조성

(좌) 빈센트 반 고흐, 낮잠(밀레작품모사), 1889-1890, 오르세 미술관 | (우) 장프랑수아 밀레, 낮잠, 1866, 보스턴 미술관
안녕하세요! 아램이에요.🙋‍♀️
요즘 어딜 가나 오징어 게임이 화제입니다. 그럼 여러분, 제가 준비한 게임에 참여해 보시겠습니까? 게임명은 바로 ‘고흐가 그린 그림 찾기’입니다. 맞히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22살, 동료들보다 늦은 나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고흐는 자주 다른 작품을 모작하곤 했습니다. 그렇다고 모작이 나쁘단 건 아니에요. 미술에 입문하게 되면 거의 처음 시작하는 일이 바로 다른 사람의 그림을 따라 그리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고흐는 단순히 그림 필체를 베끼거나 색 배합을 따라 하지 않았어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받아 새롭게 그의 관점에서 색채, 기술, 주제와 구성 등을 변주하려고 노력했죠.

고갱과 다투고 자신의 귀를 자른 후, 생 레미 정신병원에 머물던 겨울. 고흐는 그림 모델을 찾지 못해 선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모사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30여 점이 넘는 모작이 이때 탄생했는데, 오늘 아트레터에서 그중 대표적인 작품들을 소개할게요! 

1. 피에타 - 외젠 들루크루아 모작

(좌) 외젠 들루크루아, 피에타, 1850, 오슬로 국립 미술관 | (우) 빈센트 반 고흐, 피에타, 1889, 반 고흐 미술관
반 고흐는 파리에 오기 전부터 외젠 들루크루아를 존경했습니다. “내가 생각하던 예수의 얼굴을 그린 사람은 들루크루아와 램브란트뿐이다.”라고 얘기하기도 했죠. 아버지는 목사였으며, 한 때 전도사이기도 했던 고흐는 교회에서 쫓겨나면서 그림으로 복음을 전하겠다 하고 화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화가가 되어서는 종교적인 그림은 잘 그리지 않았는데요. 예외적으로 이 작품은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게 풍기는 들라크루아의 판화를 모사했습니다.

들루크루아의 보색 효과가 드러나도록 예수는 빛을 받아 노란색으로, 마리아는 푸른색으로 표현했습니다. 붉은 수염을 하고 비쩍 말라 애처로워 보이는 예수의 모습은 어쩐지 고흐와 닮아 있네요. 병원에서 병들고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의 고통을 예수와 동일시 한 건 아니었을까요? 죽기 1년 전, 이 그림을 그리며 고흐는 고백했습니다.

“종교적 상념은 정신적 고통 속에서 나에게 아주 큰 위안을 준다.” 


2. 죄수들의 원형보행 - 구스타브 도레 모작

(좌) 빈센트 반 고흐, 죄수들의 원형보행(도레 모작) | (우) 구스타브 도레, 뉴게이트의 운동장, 
여기, 한 무리의 죄수들이 광장에 모여 원을 그리며 걷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오른쪽에 경비원들은 죄수들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무언가 자신들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듯한 사람들. 가운데에 위치한 수감자는 고흐의 작품에선 빨간 머리로 색이 더해지고 고개를 들어 관객을 향해 정면을 응시합니다. 나머지는 차가운 톤을 써서 이곳의 폐쇄적인 분위기를 더해주네요. 파란색과 녹색은 죄수들의 우울한 기분을 더욱 극대화합니다.

반 고흐는 구스타브 도어의 판화를 연구한 뒤에 이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원작은 1870년대 뉴게이트 교도소의 풍경을 그린 것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은 감옥 벽은 폐쇄적 공포를 일으킵니다.

3. 씨 뿌리는 사람 - 밀레 모작

(좌) 빈센트 반 고흐, 씨 뿌리는 사람(밀레 모작), 1888 | (우) 밀레, 씨 뿌리는 사람, 1850
반 고흐의 모작 중엔 특히 현실주의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의 작품이 많습니다. 30여 점 이상의 모작 중 21점이 밀레의 작품이었으니까요. 고흐는 밀레의 작품뿐만 아니라 시골 농부들의 희생정신, 정직성, 그리고 검소하면서도 순박함을 종교적으로 표현한 그의 삶 자체를 동경했습니다. 밀레의 일생이 자신에게 모든 영감을 안겨준다고 말하기도 했죠. 

고흐는 <씨 뿌리는 사람>이라는 한 작품으로 여러 점의 모작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인물을 똑같이 그리다가 시간이 갈수록 고흐만의 창작물로 재탄생했습니다. 밀레의 인물은 고흐의 작품에서 일부 피사체로만 표현하고 배경은 고흐의 상상력이 더해져 멋진 그림이 완성되었습니다. 황금빛과 파란색이 어우러져 활기차고 대담한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생명의 원천인 태양은 그림의 중심을 차지합니다.🌞 뒤편엔 농작물이 빼곡히 자라 마음까지 풍요로워집니다. 이 작품은 생명의 순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4. 나사로의 부활 - 렘브란트 모작

(좌) 빈센트 반 고흐, 나사로의 부활(렘브란트 모작), 1890 | (우) 렘브란트 반 라인, 나사로의 부활, 1632
반 고흐가 사랑했던 또 다른 예술가는 렘브란트 반 라인 (1606년-1669년)입니다. 1890년 5월, 병원에서 그는 네덜란드 거장 렘브란트의 작품인 <나사로의 부활>을 본떠 그렸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정확한 모작이 아닙니다. 색이 더해졌다거나 구성이 달라진 것은 둘째 치고, 가장 흥미로운 점은 중심인물인 예수가 빠졌다는 거예요. 이 작품의 주제는 인간의 고통입니다. 나사로와 그의 자매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죠.👭

누워있는 나사로는 붉은 턱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아마도 반 고흐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두 여성의 모델은 실존 인물인데, 그가 아를에 있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마담 룰랭과 지누였습니다. 또한 자신의 밀밭 그림을 배경에 배치하면서 작품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5. 일본 판화 모작

(좌) 빈센트 반 고흐, 비오는 다리(히로시게 모작), 1887 | (우) 우타가와 히로시게, 아타케 대교의 소나기, 1857
1888년 7월 15일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내 모든 작품은 어느 정도 일본 미술에 바탕을 두고 있다”라고 썼습니다. 고흐는 파리에 있는 동안 일본 판화를 발견했고, 그의 작품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본 미니멀리즘적인 구성, 밝은 색상, 원근법의 결여, 새롭고 특이한 관점이 그를 감탄하게 했습니다.😦

고흐가 모작한 모든 작품 중에서,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일본 판화라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합니다. 그는 예술의 동양 사상과 서양 사상을 통합해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작품 몇 점을 모작했는데, 원작보다 좀 더 이국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다른 작품들의 요소를 추가로 첨가했습니다.

🙋‍♀️

반 고흐가 모작한 작품들을 훑어보면서, 우리는 그 안에서 진정한 예술가를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가 새롭게 그린 그림들은 그만의 예술적 목소리를 유지하면서도 원작에 압도되지 않았어요. 특히, 암울하고 어두운 시간을 겪으며 인간의 고통이라는 주제를 통해 다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그만의 명작들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결과적으로 고흐는 그림 자체를 따라 그리기 보단, 자신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을 열망하고 좇았기 때문에 그만큼 훌륭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위대한 삶을 살고 싶다면, 위대한 사람을 따라야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


지난 호 아트레터를 못 보셨다면?

[vol.62] 야! 너두 예술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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