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71] 계절의 끝자락에서

⛄️ 겨울을 느끼고 싶으세요? 겨울 동양화입니다.

예술이 배달 왔어요💌
2021.12.16 Vol. 71

겨울 동양화의 예술

오랜 시간 동안 스승을 기다렸다는 이야기를 하반신이 눈에 다 파묻혀버렸음을 표현해 극적인 효과를 주며 실감나게 표현했다.
정선, 정선 필 정문입설도(鄭敾筆程門立雪圖), 조선, 종이, 30.4x23.4x0.6cm,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대한민국.
안녕하세요. 아램이에요 🙋🏻‍♀️
코끝이 시리도록 차가워진 날씨는 어느덧 계절의 끝에 서있음을 일깨워줍니다. 따뜻한 입김에 지난 추억을 하나씩 떠올리며 지난 시간을 추억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 

오늘 아트레터를 통해 계절의 끝자락에서 고요한 적막 속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겨울 동양화를 만나보세요.

1. 고독하지만 쓸쓸하지 않은 계절의 끝에서

김수철, 겨울산수(冬景山水圖), 조선, 종이, 119.0x46.0cm,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대한민국.
김수철은 조선 말기의 화가입니다. 그림의 우측 상단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어요.

"계산은 고요하고 물어볼 사람 없어도 (溪山寂寂無人間)
임포 처사의 집을 잘도 찾아가네(好訪林逋處士家)"

작품은 송나라 시대에 세상을 등지고 숨어서 산 임포의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임포는 서호의 외딴 산속에 살며 20년 간 마을에 내려오지 않은 채 학과 매화를 사랑했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시인이예요. 🦢 🌸

간결한 선으로 만든 단순한 풍경이지만 자세히 보면 손이 많이 간 그림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화면을 채우는 담한 먹과 곳곳에 찍혀있는 태점(苔點, 수묵화에서 산, 바위, 땅 등에 난 이끼를 나타내기 위해 찍는 작은 점)들은 단순히 임포의 이야기만을 담았다기보다는 작가의 상상을 구체화시키고 장식적인 효과까지 더해졌습니다. 먹빛 가득한 화면 속 눈에 띄는 두 가지의 요소가 있습니다. 빨간 빛으로 채워진 임포의 집과 그 아래 위치한 푸른빛의 다리는 담묵으로 우려낸 화면에 생기를 불어 넣으며 고독하지만 전혀 쓸쓸해 보이지 않는 풍경을 만들고 있어요.


2. 귀여운 편안함이 느껴지는 겨울 풍경

전기(田琦), 전기 필 매화초옥도(田琦筆梅花草屋圖), 조선, 종이, 세로 29.4cm, 가로 33.3cm, 전체길이 32.4cm, 전체너비 36.1cm,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대한민국.
전기는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입니다. 중인 출신으로 김정희에게 사사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29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기 때문에 아쉽게도 많은 작품이 남아있지는 않아요. 😢

이 작품은 앞서 다룬 김수철의 <겨울산수>와 같은 주제이지만 보이는 모습은 전혀 다른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김수철의 <겨울산수>가 아득한 상상 속 공간을 그려낸 것 같다면, 전기의 <매화초옥도>는 바로 앞에 펼쳐진 가까운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낸듯합니다. 눈 덮인 산봉우리바위틈 사이로 만개한 매화, 알록달록한 색채의 사용은 간결하지만 장식적인 요소를 품고 있네요. 🏔

담묵을 이용해 부드럽게 산의 명암을 표현한 것과 상반되는 농묵의 매화나무와 호분(胡粉, 흰색 안료. 대합, 굴 등의 조개껍질을 빻아 만든 합분)을 이용한 꽃송이는 독특한 보는 재미를 추가합니다. 단순하게 표현된 매화나무는 마치 동화책의 삽화를 보는 것과 같이 귀엽고 이는 우리를 편안하게 만들어줘요.

3. 살짝 내린 눈과 함께하는 겨울의 일상

겨울의 산수(八木岡春山筆冬の山水), 일본 근대, 섬유, 172.2x71.5cm,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대한민국.
이 작품은 일본의 화가가 그렸다고 알려져있지만 어떤 화가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는 작가 미상의 작품입니다. 동양화는 간단하게 동북아 삼국(한국화, 일본화, 중국화)의 그림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중 일본화는 가장 장식적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 서양화의 영향을 받아 기존 동양화가 지니고 있던 전통적인 회화 방식과는 약간의 차이를 갖고 있어요. 다양한 미술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발전시켜 독자적인 화풍을 만들어낸 일본화는 화려한 색채와 정교한 구도가 인상적입니다.

이 작품에서도 역시 화려한 색감이 먼저 눈에 띄는데요. 특히 주목해 볼 부분은 눈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대부분의 동양화는 백색의 대상을 묘사할 때 백색의 물감을 사용해 채우기보다는 그 부분을 비워 놓는 경향이 있다면, 이 작품은 색을 덧입혀 채워나가는 것이 독특한 점입니다. 전체적으로 색감이 강한 작품이지만 근경에서 원경으로 갈수록 묘사가 줄어들고 색채의 사용도 적어져 안정적으로 시선을 이동할 수 있습니다.

4. 지조와 절개를 나타내는 눈 내린 소나무 그림

이인상, 설송도(雪松圖), 조선, 종이, 117.3x52.6cm,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대한민국.
이인상은 조선 후기의 화가입니다. 불의와 타협하는 것을 거부했던 그는 관직을 버린 채 단양에 은거하며 시와 서화를 즐겼다고 알려져 있어요. 제목에 직관적으로 나와있듯 이 작품은 눈 내린 소나무를 묘사했습니다. 수직으로 화면을 채우는 소나무 뒤엔 수평의 소나무가 가로지르며 교차되어 독특한 이미지를 만듭니다. 어느 하나 강조되는 부분 없이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담한 먹빛이 이어지는 점 또한 인상적입니다. 앞에서 본 일본화와는 다르게 눈을 비워둠으로써 투명함을 표현한 이 작품을 보며, 다양한 작품 속 '눈'의 표현을 비교해시길 바랍니다.🌨

동양화에서 소나무는 난세에도 자신의 뜻과 절개를 굽히지 않고 지조를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인상의 설송도는 눈이 내리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강직함을 지켜나가는 자신의 성품을 곧대로 드러내는 작품이 아닐까요? 단순함과 간결함이 정수인 정직함이 가득한 이인상의 작품은 화려함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5. 고요한 적막

사사표(査士標), 방 예법 산수도(仿倪法山水圖), 중국 청, 종이, 219.4x60.9x65.9cm,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대한민국.
사사표는 중국 청나라 초기의 화가입니다. 필수(筆數)가 적은 산수화를 그렸고, 감식(鑑識)에 능했다고 전해집니다. 작품 우측 상단의 관서에는"방예고사화법모학도인(仿倪高士畫法模壑道人) 사사표(査士標)" 즉, 사사표가 원대 예찬의 화법을 따라 그렸다고 쓰여있습니다.

어느 하나 튀는 부분 없이 전체적으로 담백한 분위기가 맴도는 이 작품은 고요한 적막을 안겨 줍니다. 🪵 허름한 나뭇가지는 배경이 겨울임을 추측해 볼 수 있어요. 절제된 묘사간결한 필치는 닿을 수 없는 아득한 그리움을 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사표는 명나라 말기에 과거에 급제했으나 명이 망한 후 관직을 버리고 글씨와 그림에 전념했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작품 전반에 드러나는 울적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작품입니다. 🥲

☃️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득하겠느냐
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 박노해 <겨울 사랑>  -

👩🏻
오늘은 아트레터를 통해 다양한 매력의 겨울 동양화를 만나보았습니다.
겨울은 다양한 감상으로 우리의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어 줍니다.
차가운 날씨에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 하루가 되길!
아램이가 응원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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