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세의 나이에 아파트 창문에서 떨어져 사망한 대지-신체 예술가 아나 멘디에타의 작품 <무제(Untitled)>, 1976. 살인 용의자는 그녀의 남편이었으나, 무혐의로 풀려나게 된다.
🙋🏻♀️ 안녕하세요, 아램이에요!
예술은 경계를 허물고 규범에 도전하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철학자 아도르노는 “모든 예술 작품은 범법 행위다”라고 주장했어요. 예술가는 자신이 창작한 작품과 인간적인 면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됩니다. 그렇다면 개인적, 사회적 문제를 불러일으킨 예술가들의 작품들은 ‘캔슬 컬처(Cancel Culture;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에게 팔로우 취소와 보이콧하는 문화 현상)’의 초점에 맞춰 전부 취소되고, 삭제되어야 할까요?
폴 고갱은 아내와 아이들을 가난에 방치한 채 홀로 프랑스령 폴리네시아로 이주했습니다. 미지의 세계를 찾아 떠난다는 그의 주장은 결과적으로, 성매매 관광(sexcursion)이 되었는데요. 그는 타히티 섬에서 세 명의 원주민 여성과 결혼했고, 그중 가장 어린 나이가 13살이었습니다. 그는 이 사춘기 소녀들과 함께 아이들을 낳았고, 그들을 모두 매독에 감염시켰어요. 😖 결국 자신 또한 매독으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2010년 테이트 모던에서 고갱 전시회가 열렸을 당시 디렉터였던 비센테 토돌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사람을 완전히 혐오하고 또 혐오할 수 있지만, 작품은 작품일 뿐입니다." 일부에서는 미술관에서 고갱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 강간 문화를 지지하는 것이라고 여전히 항의하기도 합니다.
반유대주의로 물의를 빚은 에드가 드가
드가는 어린시절 어머니의 외도를 목격하며 여성혐오증이 발현되었다.
1894년, 프랑스는 독일에 군사 기밀을 판매한 혐의로 유대인 육군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사실 이 사건은 드레퓌스가 군국주의, 반유대주의, 애국주의로 인한 누명을 쓴 것이었어요. 이때 에드가 드가는 강력하게 그를 유죄라고 주장하며 반유대주의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이후, 드레퓌스의 무죄가 드러났고, 드가는 인상파를 포함한 예술계에서 많은 동료들을 잃었습니다. 그는 많은 유대인들과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접촉을 끊었고, (유대인이 아님에도)자신의 모델에게 유대인이라고 소리지르며 스튜디오 밖으로 내쫓기도 했어요. 유대인 인상파 화가였던 카미유 피사로의 작품 또한 비난하며 공격했습니다. 🤬
미국의 미니멀리즘 조각가 칼 안드레는 그의 아내이자 대지-신체 예술(earth-body art)가였던 아나 멘디에타의 살인 사건에 연루되었습니다. 1985년, 멘디에타가 뉴욕 그리니치빌리지 34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시신으로 발견되었는데, 당시 그와 아내가 창문에서 말다툼을 했다는 주민들의 목격이 있었어요. 수사는 2년 반 동안 진행되었고, 처음엔 안드레가 멘디에타를 살인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하지만 1988년, 안드레가 살인을 했다는 합법적인 이유가 없다며 멘디에타 지지자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처음 사고가 났을 때, 그는 ‘내가 아내보다 대중들에게 더 잘 알려졌다는 사실로 논쟁을 벌이다가 그녀가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둘 다 폭음을 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 날도 술을 많이 마셨는데, 정확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라고 이야기해 멘디에타의 죽음은 사고이거나 자살인 것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후, 2011년 <뉴요커> 인터뷰에선 ‘무더웠던 밤이 갑자기 서늘해져, 아내가 창문을 닫으려다 균형을 잡지 못하고 떨어졌다’고 말하며 일관성 없는 사건 설명으로 사람들의 의심을 샀습니다. 🤔
쿠사마 야요이는 2002년 출간한 자서전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주의 발언을 했고, 이후 자신의 죄를 인정함으로써 모든 예술가들에게 모범을 보였습니다. 책에서 쿠사마는 흑인을 '동물적인 섹스 테크닉'과 '독특한 냄새'를 지닌 존재로 고정관념화했으며, 흑인 퍼포먼스 아티스트의 입술과 성기에 대해 음란한 내용을 묘사하고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가 슬럼가로 변한 것은 흑인이 이주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쿠사마는 알려진 것처럼 고립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자신의 발언을 숨기거나 정신증을 핑계로 해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작품이 비판을 받자 다음과 같이 진정성 있는 성명을 발표했어요.
"제 책에서 상처를 주고 불쾌감을 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깊이 후회합니다. 제 메시지는 항상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 희망, 연민, 존중이었습니다. 제 평생의 의도는 예술을 통해 인류를 고양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일으킨 고통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소아성애증이 의심된 에릭 길
에릭 길, Eve
예술가의 성격과 삶은 그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에릭 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릭 길은 20세기 최고의 예술가이자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데, 길 산스(Gill Sans) 서체는 BBC와 펭귄북스가 사용한 영국의 대표적인 타이포그래피죠.
길은 세 딸을 두었는데, 길의 표현에 따르면 "거룩한 가난" 속에서 홈스쿨링을 받으며 고립된 채 자랐습니다. 가정 교육은 주로 육체 노동과 성경 읽기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어린 시절 내내 아빠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하기도 했어요. 길은 성에 집착하여 여동생, 가정부, 동료, 친구의 아내들과 성적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이 키우는 개를 대상으로 성적 실험을 하기도 했어요. 이게 어떻게 알려졌냐구요? 그는 일기에 자신의 활동을 꼼꼼히 기록했습니다. 길은 자신의 아이들을 작품의 모델로 사용했는데, 사춘기 이전의 소녀의 섬세한 스케치와 조각이 바로 근친상간의 피해자인 아이들이었던 것입니다. 🤦🏻♀️
파시즘을 주장한 살바도르 달리
달리와 그의 아내 갈라는, 각각 관음증과 노출증이 있어 천상의 커플이라고 불렸다. Salvador Dali, Dream Caused by the Flight of a Bee around a Pomegranate a Second before Waking, 1944
살바도르 달리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사디스트, 마조히스트, 인종 차별주의자, 파시스트인 달리는 논란의 항목엔 모두 체크 표시를 해야할 것 같네요. 그는 히틀러에게 집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그의 자서전 <살바도르 달리의 비밀스러운 삶>에서 스스로 밝힌 바 있는데, 책 한 구절 한 구절이 그의 네크로필리아(Necrophilia; 시신·유골 애착증 환자)에 관한 내용들이었습니다. 🧛🏻
동료 예술가에게 보낸 편지에선 그가 미국 흑인들에게 린치를 가하고 불로 태우는데 성적 흥분을 느꼈다고 고백했습니다. 또한 죽은 시체에 만족하지 않고 모든 흑인을 지배하기를 원한다고도 했죠. 백인들이 단결하면 모든 유색 인종이 백인들의 노예가 될 수 있다고 그는 광적으로 말했습니다. 인신공양(Human sacrifice)과 동물 학대도 그의 작품의 주요 내용이었으며, 스페인 독재자 프랑코의 잔인함에 대한 파시즘적 찬미로 결국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추방당했습니다. 노년엔 아내 갈라를 폭행해 갈비뼈와 골반뼈를 부러뜨렸다는 설이 있고, 치료를 받던 갈라는 약물 과다 복용으로 치매를 앓다가 사망하였다고 해요.
예술은 경계를 허물고 규범에 도전하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철학자 아도르노는 “모든 예술 작품은 범법 행위다”라고 주장했어요. 예술가는 자신이 창작한 작품과 인간적인 면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됩니다. 그렇다면 개인적, 사회적 문제를 불러일으킨 예술가들의 작품들은 ‘캔슬 컬처(Cancel Culture;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에게 팔로우 취소와 보이콧하는 문화 현상)’의 초점에 맞춰 전부 취소되고, 삭제되어야 할까요?
이번 아트레터는 사생활에 민감한 이슈가 있던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해 탐험해보려고 합니다. 다양한 의견과 관점을 존중하면서, 다양성과 대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 [Vol.147] 🎬 예술작품에서 영감받아 탄생한 미장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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