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가로등과 배경이 영화와 똑같이 일치하지는 않지만, 매우 비슷해 보입니다. 이 그림은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가 낮과 밤, 빛과 어둠처럼 대조된 성질이 공존하는 형용 모순(Oxymoron; 상반된 어휘를 결합시키는 수사법)을 그린 것입니다. 그림 속 어두운 부분에서 유일하게 빛이 나오고 있는 곳은 가로등과 창문이에요. 

1973년에 개봉한 영화 ‘엑소시스트’는 유명 배우를 엄마로 둔 12살 소녀 리건이 사탄에 빙의되어 젊은 신부인 메린에게 엑소시즘을 받는 내용입니다. 리건의 몸속에 있는 악마가 메린 신부의 이름을 부르자 잠시 후 집 앞에 버버리코트를 입은 메린 신부가 도착합니다. 이때, 리건은 2층 방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받으며 서 있고, 영화의 테마 음악이 흘러나오며 영화는 새로운 사건이 시작됨을 알리는데 그 긴장감과 미장센이 굉장합니다. 바로 이 장면이 영화의 포스터와 커버를 장식했죠.

화면에서 유일한 빛이 메린 신부만을 비추며, 리건에게 유일한 희망은 퇴마사 메린뿐이라는 것을 은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영화의 전체 주제인 어둠과 빛의 공존, 선과 악의 공존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

LGBTQ 영화로써 최초의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올 블랙 캐스팅의 영화, ‘Moonlight’의 한 장면에서, 우리는 바다와 달을 관찰하는 샤이론을 뒤에서 바라봅니다.

샤이론은 소년 시절, 매우 복잡한 삶을 살고 있지만, 바다를 응시할 때만은 그의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이 장면은 신비한 여신처럼 보이는 미지의 여인이 바다를 보는 마그리트의 <이브닝 가운> 작품을 연상시켜요. 마그리트는 어렸을 적, 엄마가 스스로 물에 빠져 숨지는 걸 목격했습니다. 그에게 있어 이 그림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처연한 마음, 가슴속 응어리 진 결핍된 애정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완벽하게 같은 장면은 아니지만, 우울함이 뒤섞인 묘한 평화로운 느낌이 동질감을 줍니다. 우리는 샤이론이 자라면서 삶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순간에는 시간이 멈추는 것 같고 달빛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습니다. 🌕

피터 위어 감독의 트루먼 쇼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너무나 유명한 영화죠. 출생 순간부터 TV로 중계되는 삶을 사는 남자, 트루먼은 항상 그를 보호(라 말하고 통제한다.)하는 누군가가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결국, 허구와 현실, 안전 혹은 자유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그의 삶은 어쩌면 우리들 인생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트루먼이 진실을 향해 계단을 오르는 것은 자신의 현실을 파악하고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이해하며 그것을 해결하려는 과정으로 보입니다. 영화 속, 세트장 바깥세상으로 통하는 계단은 마그리트의 그림 <달빛 아래의 건축물>을 연상시켜요. 그림에서 우리는 바깥세상에 회색 구체 말고는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없습니다. 분위기는 어딘지 서늘하고 고요해요. 사람이 없는 건축물을 주로 그린 이탈리아 예술가 조르조 데 키리코의 작품과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는 한 인간이 있습니다. 트루먼이죠. 트루먼도 저 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가 새로운 세계로 나가기로 결심한 이유, 다시금 궁금해지네요. 🛥️

네덜란드 출신 판화가였던 에셔(1898-1972)는 목판화, 석판화, 메조틴트를 통해 과학의 법칙을 깨뜨리고, 분석하거나 뒤집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패턴과 공간의 환영을 반복한 작품을 선보였어요. 기하학적 무늬에서 수학적 변환을 이용해 공간, 시간, 중력을 거스르는 창조적 형태의 테셀레이션(tessellation; ‘타일’이라고 하는 도형들로 겹치지 않으면서 빈틈없게 공간을 채우는 것) 작품 세계를 구축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시간과 공간, 중력에 관한 영화라면, 우리는 바로 ‘크리스토퍼 놀란’을 떠올립니다. 놀란 감독은 우리의 인지와 현실에 깔려 있는 모든 개념을 비틀면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때문에, 그의 영화는 최소한 두세 번은 봐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들 해요.

놀란은 자신의 영화 건축물에 에셔의 작품 일부를 사용했습니다. 인셉션에서 아서(조셉 고든-레빗이 연기한 포인트 맨)는 아리아드네(엘리엇 페이지가 연기한 건축가)에게 무한한 구조물을 구축하여 깨지지 않는 정신적 미로를 만드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대화 도중, 그녀는 그들이 같은 단 하나의 계단을 걸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높은 각도에서 촬영을 해, 우리는 그 계단이 에셔의 <상승과 하강의 계단>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셔와 놀란은 상충되는 비율을 사용하여 시각적인 역설(paradox; 언뜻 보면 일리가 있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것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게 모순되어 있거나 잘못된 결론을 이끌거나 하는 논증이나 사고 실험 등)을 만들었습니다. 🧮

서스페리아(1977)는 화려한 미장센과 강렬한 서스펜스를 연출하는 것으로 유명한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오컬트 공포영화입니다. 오래전 나온 영화임에도 음향과 미장센이 시대를 앞서 훌륭했기에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가 2019년 리메이크작을 만들기도 했어요.

영화에 연출된 장면의 배경 곳곳엔 디테일이 돋보이고, 예술적입니다. 특히 주인공 ‘수지’가 입학하게 된 독일 예술학교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외관과 내부 인테리어도 좋은 감상 포인트예요. 줄거리는 학교 뒤에 숨겨진 끔찍한 현실을 알게 되는 미국 소녀 수지 배넌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를 주의 깊게 보면 에셔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장면들이 많이 보여요. 그중 수지가 목격한 첫 번째 살해 피해자인 친구 ‘팻’의 방 벽지에선 에셔의 작품 <하늘과 물 1>이 보입니다. 🦢🐟

디즈니의 애니메이터들이 만화 영화 속에 예술작품을 종종 그려 넣는다는 건 이전 아트레터(vol.47)에서 소개해드린 적이 있죠. ‘미녀와 야수’(1991) 작품 후반에 야수의 성을 공격하러 갈 것을 부추기는 개스톤이 사망하는 장면에서 그의 눈을 클로즈업 한 장면이 있습니다. 단 1초 비쳤지만, 일시 정지를 해보면 그의 동공에 두개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 장면은 1946년, 에셔의 예술작품 <Eye>를 생각나게 합니다. 과연 에셔의 작품을 넣을 의도가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우린 이제 알게 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