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6] 👿 왜 화가 났니? (폴 고갱 때문에!)

고갱은 자유로운 영혼인가, 난봉꾼인가?
예술이 배달 왔어요💌
2022.05.13 Vol. 86
천국을 찾아 떠난 예술가, 고갱
폴 고갱, Why are you angry?, 1896

안녕하세요! 아램이에요. 🙋🏻‍♀️
화가이자 판화가, 조각가, 도예가, 작가였던 폴 고갱은 후기 인상주의와 모더니즘의 거장 중 한 명입니다. 선명한 색상, 단순한 형태, 평평한 원근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이후 원시주의, 야수파, 입체주의, 초현실주의에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어요.

특히 1890년대 이후 타히티 섬에서 그린 꿈같은 작품들은 그를 미술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유명한 예술가로 만들었죠. 1890년대 고갱이 타히티를 방문했을 때, 그는 천국을 찾는 천재였을까요? 아니면 쾌락을 찾는 허랑방탕한 방랑자였을까요? 🤔

이번 아트레터에선 고갱의 삶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며 독자님들 스스로 ‘예술가의 삶은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생각해 보았으면 해요.

1. 인생이 그리 쉽게 흘러가진 않아
폴 고갱, <What! Are You Jealous?(질투하고 있니?)>, 1892
고갱은 결코 자신감이 부족한 타입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은 위대한 예술가라고 스스로에게나 주변에 항상 말했고, 음 아램이도 그렇게 생각해요. 🙄 고갱의 아버지는 진보 성향의 저널리스트로 프랑스 정치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 가족들과 함께 국외로 쫓겨났어요. 아버지는 이동 중에 사망했고, 어린 고갱과 어머니는 페루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며 이국적인 문화와 도자기, 공예에 빠졌습니다.

이후 고갱은 프랑스로 돌아와 증권사에 취업하며 주식중개인이 되었어요. 덴마크 출신의 저명한 페미니스트 아내를 만나 결혼했지만 돈벌이가 시원치 않고 점점 팔리지 않는 그림이나 그리며 생활이 불안정해졌습니다. 아내는 참다못해 아이들을 데리고 덴마크로 가버렸어요. 고갱은 그의 아내가 돌아오길 바라며 그림이 인기있다고 편지 썼지만, 사실 그는 생전에 그림을 거의 팔지 못했어요. 1890년까지 그의 경력과 경제력은 모두 정체되었습니다. 💸

2. 천국을 찾아 떠나다
폴 고갱, <Manao Tupapau : L'Esprit des morts veille(테하마나)>, 1892
고갱은 개인적, 재정적 어려움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오염되지 않은 세계로 탈출하기 위해 프랑스령 폴리네시아로 떠나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많은 백인 서양인들처럼 고갱 또한 환상적인 천국을 꿈꿨거든요.(🌴 영화 비치 참고) 고갱은 타히티의 문화와 종교에 매료되었습니다. 신비로운 섬의 이야기는 그의 상상력을 매우 자극했습니다. 부푼 꿈을 안고 타히티에 갔건만, 안타깝게도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문화는 이미 선교사들과 식민지 침략자들에 의해 이룩된 상태였고, 많은 질병과 약탈로 섬과 원주민들은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고갱은 굴하지 않고 아내에게 자신이 돈을 많이 벌어서 영향력이 생기면 새 출발 할 수 있도록 프랑스로 돌아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1891년, 그는 타히티 여러 곳을 여행했지만 이미 많은 곳이 프랑스화 되었고 물가도 너무 비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더 원시적인 장소를 찾아 마타이아라는 아주 작은 마을로 이동했어요. 1892년 여름 말, 그는 14살의 테하마나라는 소녀를 만났고, 소녀는 곧 임신을 했습니다. 🤰🏾

3.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폴 고갱, <Where do we come from? Who are we? Where are we going?(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1897-1898
1년 후, 고갱은 테하마나를 버리고 단 4프랑을 손에 쥔 채 프랑스로 돌아왔습니다. 곧 그의 타히티 그림들은 팔리기 시작했고 고갱은 ‘이때다!’ 싶어서 이국적인 폴리네시아 의상을 입고 파리의 보헤미안 몽파르나스 지역에 주간 '살롱'을 운영하며 자리를 잡았습니다. 🍷 그리고 다시 10대 인도계 말레이시아인 소녀와 바람을 피웁니다.

이제 더 이상 그의 아내 메테와의 관계는 회복할 수 없게 되었고, 고갱은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파리 예술계에 환멸을 느꼈습니다. 그는 타히티로 돌아갈 돈을 마련하기 위해 주변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한 친구가 1895년 6월에 도움을 줘 마지막으로 타히티로 떠납니다. 🎟

이후에 고갱은 이전보다 더 놀라운 작품들을 만들었지만, 결코 행복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1903년 5월 8일, 고갱은 54세의 나이로 병이 들고 빈털털이가 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분명한 것은 고갱은 진심으로 타히티의 문화와 예술을 탐험하려는 강력한 욕망에 의해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똑같이, 그는 사회적 관습과 제도, 도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 움직인 것이기도 했습니다. 🐎

4. 당신은 어떤 삶을 살겠습니까?
폴 고갱, <When will you marry?(언제 결혼하니?)>, 1892
고갱의 타히티 그림들 중 하나를 보면, 열대 우림의 풍부한 푸른색과 녹색이 어우러진 배경에 황금빛 피부를 한 인물들의 절묘한 연출은 그가 가히 천재가 아니었다고 부인할 수 없습니다. 타히티의 삶을 묘사한 이 장면은 아마도 고갱의 최고의 작품으로 여겨질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관능적이고 기쁨으로 가득 찬 그림 뒤엔, 갈색 피부의 누드모델들이 고갱 앞에 있었다는 것을요. 🧖🏾

부정하고 싶지만 그녀들은 고갱에게 성적 대상이었어요. 타히티에 있는 동안, 고갱은 수많은 여자들과 잤습니다.(식민지 여성들이 외국인에게 개방적이고 먼저 관계를 원했다는 의견도 있음) 그는 타히티에서 세 번 결혼했고, 모두 매독에 감염되었습니다. 그의 신부 중 한 명은 13살이었고, 두 명은 14살이었어요. 🤦🏻‍♀️

🗯

고갱은 미술사에서 꾸준히 찬양을 받기도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 물론 예술은 영원하므로 그의 작품이 사라진다거나 잊히진 않을 거에요. 고갱은 원초적인 오래된 것과 이제 막 변화하는 새로운 것 사이의 기로에 선 타히티인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작품으로 남기며 인류 문화 발전에 기여했구요. 우리는 고갱의 기발하고도 탐험적인 천재성에 감탄할 수 있지만, 예술가들의 삶은 그저 한낱 작은 존재인 인간들의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잊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 해외 전시 <폴 고갱: Why are you angry?>
베를린 구 국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고갱의 <Why are you angry?>전
전시명: Paul Gauguin, <Why Are You Angry?>
장소: 구 국립미술관 (Berlin - Alte Nationalgalerie)
기간: 2022-03-26 ~ 2022-07-10
내용: 고갱이 이국적인 타히티 섬에서 그린 ‘Why are you angry?’ 외 다양한 작품과 현대 작가들의 작품들이 함께 전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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