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72] 🍬 내가 아는 팝아트 맞아? : 아트레터

[Vol.172] 🍬 내가 아는 팝아트 맞아?

2024.07.19 Vol. 172

데이비드 맥케이브가 찍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앞에서 마리솔 에스코바와 앤디 워홀, 1965 © 앤디 워홀 박물관, 피츠버그. 카네기 박물관.

안녕하세요, 아램이에요! 🙋🏻‍♀️

요즘 날씨가 참 이상하죠? 비가 성질 있게 내린다고 해야 하나요? 때론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이 퍼붓다가, 다시 보슬보슬 차분하게 내리기도 하죠. 이런 변덕스러운 날씨는 마치 팝아트를 보는 듯해요. 예측 불가하고, 다채롭고, 때론 강렬하고, 때론 섬세한 팝아트의 매력을 닮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팝아트는 앤디 워홀과 마릴린 먼로, 그리고 캠벨 수프 캔이죠. 지난 아트레터 97호에서는 그런 대표적인 이미지들을 다뤘으니 놓치신 분들은 꼭 확인해보세요. 🧐

이번 아트레터에서는 앤디 워홀의 그늘에 가려 덜 알려졌지만, 당시 팝아트의 흐름을 이끌었던 숨은 보석 같은 작가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이들은 시대를 꿰뚫는 통찰력과 독창적인 시선으로 팝아트를 새롭게 정의했어요. 그들의 작품을 통해 팝아트의 다채로운 매력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특히, 오늘 소개할 아티스트 중 한 명의 전시가 현재 국내에서 진행 중입니다. 아트레터 구독자 분들을 위해 특별히 티켓을 마련했으니 끝까지 함께하며 이벤트에도 응모해보세요. 그럼, 시작해볼까요?

강렬한 여성 파워

로잘린 드렉슬러

Rosalyn Drexler, Marilyn Pursued by Death, 1963,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USA.

1926년 뉴욕 브롱크스에서 태어난 로잘린 드렉슬러(Rosalyn Drexler, 1926)는 다재다능한 예술가입니다. 그녀는 팝 아티스트이자 소설가, 극작가로, 뉴욕의 오프 브로드웨이(off-Broadway)에서 상연된 작품을 대상으로 1년에 1명에게 수여하는 최우수 신인작가상인 오비상(Obie Award)을 3번이나 수상했습니다. 또한, 미국 TV 프로그램 중 가장 우수한 작가나 극본에 매년 1회 수여되는 에미상(Emmy Award) 수상 작가이기도 했어요. 이렇게 많은 상을 받은 아티스트도 드물죠. 👸

드렉슬러는 성악을 전공하며 뉴욕 예술고등학교를 다녔고, 화가 지망생인 셔먼 드렉슬러와 결혼한 후 팝아트에 뛰어들었죠. 거기서 그치지 않고, 1950년’대엔 로사 칼로'라는 이름으로 프로레슬러로도 활동했습니다.

드렉슬러는 팝아트가 앤디 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 같은 남성 작가들에 의해 주도되던 시절, 여성의 존재를 강하게 드러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1960년대와 70년대 여성 해방 운동과 맞물려 성차별적 이미지를 비판하고,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했어요.

<Marilyn Pursued by Death>(1963) 작품에서 드렉슬러는 마릴린 먼로가 파파라치에 쫓기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검은 배경에 붉은 선으로 윤곽을 그린 인물들은 위험을 암시해요. 이는 먼로를 아이돌로 소비하는 남성 작가들과 달리, 미디어 희생양으로서의 면모를 부각했습니다.

그녀는 다양한 재능을 통해 여성의 목소리를 높이며 팝아트를 새롭게 정의하고, 여성 예술가로서의 위치를 확립하는 데 큰 기여를 했어요.

쿠바 혁명과 팝아트를 결합시킨

라울 마르티네즈

Raúl Martínez, Oye América, 1967 © Museo Nacional de Bellas Artes.

쿠바에서 태어난 라울 마르티네즈(Raúl Martínez, 1927)는 유럽과 미국에서 미술을 공부한 후, 쿠바 혁명의 열정에 사로잡혀 귀국했습니다. 1953년 쿠바로 돌아온 마르티네즈는 아방가르드 그룹 '로스 온세’로 활동하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했어요. 혁명 이후, 그는 잡지 '루네스 데 레볼루시온'의 예술 감독으로 임명되었고, 쿠바 영화 연구소(ICAIC)와 쿠바 도서 연구소 설립에도 참여했습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마르티네즈는 쿠바 예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

마르티네즈는 1966년 회화에서 잠시 손을 떼고 그래픽 디자인에 집중했습니다. 당시, 미국에선 팝아트가 급부상했고, 이러한 흐름을 캐치한 마르티네즈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반미(反美)주의인 자국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담기에 그래픽 디자인이 적합한 매체라고 생각했죠. 1967년 워홀 스타일을 참고하면서도 독창적인 쿠바 팝아트 색채를 담은 <Oye América(Listen America)> 작품을 통해 혁명의 열정을 표현했습니다. 작품 속 ‘피델 카스트로는 강하고 카리스마있는 모습과는 사뭇 달리, 친근하고 우화적인 모습을 띄며 마르티네즈가 그 동안 연구했던 추상성을 유지하면서도 단순한 그림체를 사용해 혁명 메시지를 전달했어요.

마르티네즈는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팝아트를 결합하여 독특한 쿠바적 스타일을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그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쿠바와 전 세계에서 전시되고 있으며, 혁명적 아이콘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어요. ✊

팝아트의 여왕

마리솔 에스코바

Marisol Escobar, The Party, 1965. Toledo Museum of Art.

마리솔 에스코바(Marisol Escobar, 1930)는 1960년대 뉴욕 팝아트 씬을 강타한 베네수엘라-미국 출신 조각가입니다. 대형 목조 조각 작품으로 유명해진 그녀는 1970년대 들어 잊혀졌지만,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어요. 🪆

1930년 파리에서 태어난 마리솔은 부유한 베네수엘라 가정에서 자라며 다양한 문화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1941년 어머니의 자살 이후 깊은 충격에 빠져 실언증에 걸린 마리솔은 침묵을 지키며 예술에 몰두했어요. 그녀는 로스앤젤레스의 예술 학교에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고, 이후 파리의 에콜 데 보자르와 뉴욕의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공부하며 예술가로서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1957년 로마에서 뉴욕으로 돌아온 마리솔은 팝아트와 접목된 독특한 조각 작품으로 큰 인기를 얻게 돼요. 그녀는 목재, 플라스터, 사진 등을 이용해 사회적 인물과 유명인사들을 묘사했습니다. 앤디 워홀과의 친분으로 팝아트 씬에서 더욱 주목받았지만, 그녀는 항상 독자적인 길을 걸었습니다. 👩‍🎤

마리솔의 대표작 <The Party>(1965-1966)는 고급 사교계를 풍자하는 작품으로, 모든 인물의 얼굴이 마리솔 자신의 모습입니다. 15개의 실물 크기의 인물들은 각각 사진 촬영, 조각 또는 고무나 석고로 주조된 마리솔의 모습이에요. 한두 명은 긴장한 것처럼 보이고, 대부분 고립되어 있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듯 자기중심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이들을 상류 사회에 비유해, 개인의 소외를 강조하며 얕은 상호 관계를 논평하는 독특한 비주얼이 재미있고, 풍자적입니다. 👸

광고판에서 캔버스로

제임스 로젠퀴스트

James Rosenquist, I Love you with my Ford, 1961, oil on canvas, Moderna Museet, Stockholm, Sweden.

부모님의 응원으로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제임스 로젠퀴스트(James Rosenquist, 1933)는 1955년 뉴욕으로 와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수학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타임스퀘어에서 광고판을 그리는 일을 병행하며, 상업 예술 기법을 익혔어요. 그러다가 1960년대 초, 상업 광고를 그만두고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대형 캔버스에 상업 광고 기법을 적용해 대중문화의 아이콘과 일상적인 사물을 묘사했고, 이후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어요. 🖌️

광고판 페인팅에서 출발해 팝아트의 대표 작가로 자리 잡은 제임스 로젠퀴스트. 그는 일찍이 광고와 소비문화의 이미지를 사용해 독특한 예술 세계를 구축했으며, 이로 인해 앤디 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함께 언급되곤 했습니다. 로젠퀴스트의 작품은 광고와 문화 이미지를 통해 광고의 압도적인 특성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초현실주의적 요소를 활용하기도 했어요.

로젠퀴스트의 대표작 중 하나인 <I Love You with My Ford>(1961)는 그의 독특한 스타일을 잘 보여줍니다. 포드 자동차의 라디에이터, 여성의 옆모습, 통조림 스파게티 등 서로 연결되지 않은 이미지들을 거대한 캔버스에 결합한 작품이에요. 이러한 소재는 1950년대 라이프 잡지의 광고에서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로젠퀴스트의 작품은 팝아트의 전형적인 형식을 따르면서도 1960년대 신흥 소비사회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로젠퀴스트는 소비 문화와 광고의 시각적 언어를 이용해 작품을 구성함으로써, 소비주의가 어떻게 우리의 일상과 사회를 지배하는지 보여줬어요. 🪙

팝아트의 여성 개척자

폴린 보티

Pauline Boty, 1963. Photograph by Michael Ward, National Portrait Gallery, London, UK.

폴린 보티(Pauline Boty, 1938)는 1960년대 영국 팝아트 씬에서 활약한 유일한 여성 작가입니다. 그녀는 마릴린 먼로처럼 예쁘장한 얼굴과 몸매, 그리고 금발을 지녔어요. 인형처럼 예쁜 그녀를 언론과 대중은 똑똑하고 당찬 예술가이기보다, 백치미가 있는 핀업걸로 상징하며 조롱거리로 여겼죠. 보티는 금발작품을 통해 남성 중심 사회와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비판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남성과 여성의 대조적인 모습을 통해 당시 사회의 성차별적 구조를 날카롭게 드러냈어요. 👱

보티의 작품에서 남성은 산업적이고 부유한 환경 속에서 활동적인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예를 들어, 엘비스 프레슬리는 멋진 옷을 입은 채, 음악적 재능을 상징하는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방식으로 묘사되는 반면, 여성은 자연 속에서 수동적인 모습으로 평면적으로 그려졌어요. 보티는 이러한 여성들이 성적으로 자주적인지, 아니면 얼굴이나 발이 잘려져 익명화되고 객체화된 존재인지 질문합니다. 그녀는 여성의 성적 자주성이 남성 관객의 만족을 위해 희생되는 현실을 비판했어요. 🩰

Pauline Boty, Color Her Gone, 1962, Wolverhampton Art Gallery, Wolverhampton, UK. ArtUK.

폴린 보티의 삶은 비극적인 결말로 많이 회자됩니다. 1965년, 임신 중이던 그녀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의료진은 “당신이 살기 위해선 아이를 유산시켜야 해야합니다.”라고 했지만 그녀는 치료를 거부하고 아이를 출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보티는 출산 후 4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나이, 고작 28세였죠. 그녀의 작품은 그녀의 사망 이후 오랫동안 대중에게 잊혀졌지만, 1990년대 초에야 다시 주목받게 되었어요.

폴린 보티는 생전에 마릴린 먼로의 죽음에 깊은 영향을 받아 <Colour Her Gone>(1962)과 <The Only Blonde in the World>(1963)이라는 두 작품을 남겼습니다. 이 작품들은 먼로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1960년대 문화와 먼로의 역할을 탐구합니다. 보티는 자신과 어딘지 닮은 먼로를 통해 여성의 복잡한 정체성과 성적 자주성을 표현하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