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79] ✨ 아르누보, 새로움을 향한 아름다움

2022-03-04
‘아름다운 시절’의 탄생부터 소멸까지.
예술이 배달 왔어요💌
2022.03.04 Vol. 79

아르누보에 대하여
우크라이나 키예프에 위치한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물 '눈물짓는 여인(The House of the Weeping Widow)'. 비가 오면 정면에 있는 여성의 얼굴의 뺨에 빗물이 눈물처럼 흘러내린다.

안녕하세요! 아램이에요. 🙋🏻‍♀️
오늘부터 제20대 대통령 사전투표가 시작되었습니다. 며칠만 지나면 국민의 선택을 받은 새로운 지도자가 선출된다니 기대가 돼요. 🤩 국내 대선만큼 세계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있죠. 국외에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 세계인의 마음이 타들어가고 있어요… 어서 더 큰 피해 없이 모두가 바라는 평화의 시대가 찾아오길 바랍니다. 🙏

정치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때, 인류는 자연스럽게 변화를 갈구하고 이를 문화적으로 파생시켰습니다. 오늘 소개할 아르누보 또한 과거의 예술 형태에서 벗어나려고 한 변혁적인 양식 중 하나예요. 미적으로 무척 뛰어나고 독보적인 스타일을 지녔지만 유행의 기간(1890~1910)은 생각보다 짧았습니다.

이번 아트레터에선 건축과 도시 계획, 시각 예술과 공예, 패션, 생활용품 등 우리 삶에 다양하게 영향을 미친 아르누보에 대해 살펴볼게요!

👀 언제, 어디서, 누가 시작한거야?
프랑스 건축가 엑토르 기마르가 아르누보 스타일로 설계한 파리의 지하철역
아르누보는 1880년대에 등장해서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될 때까지 유럽과 미국 전역을 풍미한 양식입니다. 전체적인 틀은 현대성을 추구하는 모던(Modern)이라는 컨셉이었지만, 세계적·지역적으로 약간씩의 차이를 지녔어요. 아르누보(art nouveau)는 말 그대로 새로운 예술을 뜻하는 프랑스어이고, 독일어권에서는 미술 주간지 <유겐트>의 제목을 따 ‘유겐트슈틸’로, 영국과 미국에선 ‘모던 스타일’, 오스트리아에서는 ‘분리파’, ‘빈 양식’으로 불렸습니다.

아르누보는 1880년대 벨기에 잡지 L' Art Moderne에 레 뱅(Les Vingt)의 작품을 묘사하기 위한 용어로 처음 등장했어요. 레 뱅트는 예술을 통한 개혁을 추구하는 20명의 화가 및 조각가들로 이루어진 그룹이었습니다. 그들은 회화나 조각과 같은 순수 예술이 공예품 같은 소위 ‘덜 장식적인 예술’과 분리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당시 영국에선 윌리엄 모리스의 예술 공예 운동이 성행했는데 그 영향을 받았던 것이죠. 즉, 아르누보의 디자이너들은 예술과 공예품을 결합하고 다양한 미디어를 포함하는 총체적인 예술 작품을 만들기 원했습니다. 🪢

❇️ 아르누보 양식의 특징
1. 자연
등나무를 모티브로 한 티파니 램프 [Image: Sotheby's]
아르누보에서 자연은 영감의 주요 원천입니다. 식물, 곤충, 동물, 심해 해조류 등 다양한 유기적인 요소가 아르누보 작품에 등장합니다. 🌱

2. 자포니즘
일본 목판화(좌측)의 실루엣, 평평한 색, 대각선 구성, 그리고 잘라낸 이미지를 차용하여 포스터를 그린 앙리 툴루즈 로트렉(우측)
아르누보 작품들은 일본 미술에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19세기 일본에서 유럽으로 미술품 무역이 성행했고, 일본의 목판화와 도자기를 본 서구 예술가들은 흐릿한 색과 불규칙한 시각적 패턴으로부터 큰 영감을 얻었습니다. 🏺

3. 영국
19세기 영국에서 일어났던 미술공예운동유미주의가 아르누보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미술공예운동은 산업사회에서 대량 생산되던 제품과 차별화되는 수공예와 전통 기법으로의 회귀를 주장했습니다. 유미주의는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의 개념과 유사합니다. 예술에서 교훈성을 제거하고 오로지 형식적 미학을 강조하며 예술작품의 아름다움과 분위기에 초점을 맞춥니다. 🇬🇧

4. 곡선 모양
프랑스 파리 미술관 '프티 팔레'의 실내 인테리어
아르누보의 또 다른 특징은 아라베스크 곡선 형태입니다. 아라베스크란 식물 덩굴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연속무늬를 뜻해요. 이 기하학적인 곡선은 리드미컬하고 추상적인 형상으로 건축물의 나선형 계단에 쓰이면서 조화롭고 아름다운 느낌을 줍니다. ✣

5. 장식 스타일
Gustav Klimt, Water Serpents II, 1904, private collection
처음에 장식은 단순한 미적 요소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르누보가 점차 발전하면서 장식적 요소는 화려한 소유물을 통해 사회에서 자신을 어떻게 비춰주는지 거울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를 가진 사람들은 점차 장식에 더 큰 비중을 두었고 걷잡을 수 없이 물체들은 장식으로 뒤덮였어요. 이러한 자아도취적 행태는 이후에 아르누보를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한 도덕적 이슈가 되었습니다. 🪞

6. 날렵함 & 가벼움
Alphonse Mucha, Daydream (Rêverie), 1897, Mucha Trust Collection, Prague, Czech Republic. © 2021 Mucha Trust. Courtesy of North Carolina Museum of Art.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이나 가구 등은 유동적인 유연성, 평온하면서도 풍요로운 색, 가볍고 날렵한 형태를 주로 보입니다. 알폰스 무하의 전시·행사 포스터가 이러한 특징을 잘 표현해 주고 있어요. 보기엔 매우 아름답지만 제작이 무척이나 까다로울 것 같지 않나요? 😅 아르누보 이후 출현한 디자인 양식인 아르데코는 이와 반대로 비대칭보다는 대칭을, 곡선보다는 직선을 지향하며 대량생산에 적합한 현대 양식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 아르누보, 아름다움 이면에 가려진 차별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건축물 카사 바트요
아르누보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 뒤에는 어두운 면도 있었습니다. 지역차, 경제적 빈부격차는 점차 벌어졌고,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부르주아 계층은 화려하고 풍성한 예술품을 뽐내며 노동계층의 끔찍한 현실을 외면했습니다. 도덕적 해이가 만연했죠. 결국 순수예술과 실용예술을 분리하지 말고 “새로운 예술”을 통합해 만들어보자는 아르누보의 열정은 교외, 공장, 노동계층이 사는 빈민가에서 시작되어 대도시의 끝에서 멈췄습니다.

아르누보는 기술적 진화보다는 사회적, 경제적 상황과 더 관련이 있습니다. 예술가들이 손수 제작한 공예 중심의 작품만을 사용하기를 원했고, 결국 이것은 대중들에겐 부산물만이 제공되는 엘리트 형태의 예술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아르누보가 그렇게 빨리 사라지게 된 이유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을 초래한 사회계급의 분열은 사실상 아르누보가 그릇된 유토피아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
🚩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전세계에 유행했을 만큼 파급력이 컸던 아르누보.
예술과 삶의 형식에 대해 그 시절 예술가들이 행한 실험들은 새로운 시도라는 의의가 있습니다.
또 오늘날 중요한 이슈가 된 환경과 자연에 대한 경외, 인간적인 사회를 향한 바람, 공동체의 관심 등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개혁적인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 아르누보를 선물합니다
아르누보의 대표 화가 클림트가 그린 <물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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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 아트레터를 못 보셨다면?

[vol.78] ◾️ 미니멀한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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