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7] 공포 영화 말고 공포 미술 어떠세요?

더위를 날려버릴 으스스한 예술 작품 💀

지옥을 그린 화가, 즈지스와프 벡신스키

Zdzislaw Beksinski, Untitled, The Historical Museum, Sanok, Poland. © Gallery of Zdzisław Beksiński
한 여름엔 어김없이 극장가를 휩쓰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바로 공포, 호러 영화죠!🥶 영화관에 가기 힘든 요즘, 공포 영화를 대체할 만한 그야말로 귀신 나올까 두려운 '환시(幻視) 미술'의 창시자 벡신스키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폴란드 현대 미술의 선구자인 즈지스와프 벡신스키의 그림은 섬뜩하면서도 고딕적이고,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로 인해 한번 보면 뇌리에서 떠나가지 않습니다. 이번 주 아트레터에서 죽음의 화가가 선보이는 초현실주의적 오싹함을 느껴보시죠.👽

Zdzislaw Beksinski, Untitled, The Historical Museum, Sanok, Poland. ©Gallery of Zdzisław Beksiński

예술가 이전의 삶

벡신스키는 1929년 2월 24일 폴란드 남부 사녹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공과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했지만 돌연 건축 일을 그만두고 드로잉, 조각, 사진 작업을 하기 시작합니다. 초기부터 그의 작품은 초현실적이고 표현주의적인 특징이 있었는데, 그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살아남으면서 소련, 독일 정부의 억압과 폭력적 행태를 경험하였고 이를 비판하고자 하는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Zdzislaw Beksinski, Untitled, 1984, The Historical Museum, Sanok, Poland. ©Gallery of Zdzisław Beksiński

전성기 (Fantastic Period)

베르세르크를 그린 만화가 미우라 켄타로나, 에일리언을 디자인한 현대미술가 H. R. 기거가 벡신스키의 그림을 보고 창작물을 만든 것과 달리, 벡신스키는 다른 이의 미술 작품이나 영화 같은 외부 작업에서 영감을 받지 않았습니다. 특히 어떠한 위대한 예술가도 존경하지 않았는데요. 다만 그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 항상 클래식과 락음악을 들었습니다. 그가 영감을 받은 것은 오로지 음악뿐이었어요.

우울한 분위기인 그의 작품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벡신스키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그의 작품 대다수가 무제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는 관객들이 그들이 원하는 대로 각 작품을 이해하길 바랬습니다.

Zdzislaw Beksinski, Untitled, The Historical Museum, Sanok, Poland. ©Gallery of Zdzisław Beksiński

그가 그린 디스토피아는 상상 속에 있는 바람직하지 않은 끔찍한 장소로 정의됩니다. 범죄나 가난이 없는 이상적인 장소나 사회인 유토피아와는 정반대이죠. 벡신스키의 디스토피아는 마치 지옥처럼 기괴하고, 공포스럽고, 죽음과 불안과 부패의 장면들이 있는 악몽 같은 세상이었습니다. 이렇게 벡신스키의 디스토피안 초현실주의가 만들어집니다.

이 시기(1960~1980년대 중반)를 벡신스키는 스스로 환상적인 시기(Fantastic Period)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즉, ‘환시 미술’이라는 독특한 자기 세계를 구축한 것이죠. 그 개념은 그의 작품 전반에 남아 있으며, 쾌락적이고 지옥 같고, 인체를 해체·재구성하며 보는 이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암울한 그림 때문에 그의 성격도 비관적이고 우울증이 있을 것 같다고 오해받았지만, 사실 그는 낙천적이고 유머감각까지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Zdzislaw Beksinski, Untitled, The Historical Museum, Sanok, Poland. ©Gallery of Zdzisław Beksiński

국제적 명망을 얻다.

1980년대 중반, 벡신스키는 2가지 이유로 스타 작가가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1984년 드모초프스키라는 화상과 계약을 한 것입니다. 폴란드인으로 파리에서 변호사 자격을 딴 드모초프스키는 어느 날 벡신스키의 작품을 우연히 본 이후, 딱 한 사람 오직 벡신스키만을 위해 화랑을 열고 그의 작품을 모조리 삽니다. 그리고 그 작품들을 서유럽으로 전파했습니다. 이후 미국, 프랑스, 일본에까지 전시를 열며 벡신스키를 위한 화상이 됩니다.

두 번째로 벡신스키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굉장히 거부했고, 폴란드 밖을 나가지 않았습니다. 상업적으로 인기 있는 그림 그리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전시회에도 출현하지 않으며 대중 앞에 나서길 꺼렸습니다. 다만 자신이 원하는 그림만을 진실되게 그리기를 바랐죠. 이러한 점이 오히려 그를 괴짜 화가로 부각하고 유명세를 타게 했습니다. 

Zdzislaw Beksinski, Untitled, 1976, The Historical Museum, Sanok, Poland. ©Gallery of Zdzisław Beksiński

개인적인 비극

1990년대 그의 삶은 비극적이었습니다. 1998년, 그의 아내가 암으로 죽습니다. 이듬해, 유명한 라디오 진행자이자 음악 저널리스트, 영화 번역가가 된 아들 토마스마저 자살하고 맙니다. 벡신스키는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원래도 사교적이지 않은 그였지만, 더욱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았습니다.😞

그러던 2005년, 75세의 나이에 그가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지인의 19세 아들에게 17차례 칼에 찔려 죽었습니다. 이유는 그 십 대의 젊은이가 돈을 빌려달라고 한 것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100달러 정도) 벡신스키는 2005년 2월 21일 사망 당일에 다음과 같은 마지막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Zdzislaw Beksinski, Y, 2005, The Historical Museum, Sanok, Poland. ©Gallery of Zdzisław Beksiński

“꿈을 촬영하는 것처럼 그렇게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 즈지스와프 벡신스키

가끔 무시무시한 장면이 보이는 악몽을 꾸거나 가위에 눌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기억을 얼른 지우고 다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이라고 해서 모두 끔찍하고 사라져야만 하는 걸까요? 한 번도 보지 못한 환상적인 세상을 열심히 기록하고, 새로운 인상과 감명을 줄 수 있다면 무섭고 낯선 장면도 누군가에겐 아름답게 여겨질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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