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73] 외로움이 찾아올 때면

2022-01-06
👤 고독을 마주한 예술가들

예술이 배달 왔어요💌
2022.01.06 Vol. 73

고독의 시간을 작품으로 승화한 예술가

프랑스 안티베 작업실에서 피카소. 1946년. Photographed by Michel Sima

안녕하세요! 아램이에요. 🙋🏻‍♀️
일 년 중 가장 시끌벅적한 연말연시를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친구들과의 파티, 가족들과 단란한 식사, 연인과의 오붓한 데이트. 하지만 이 분주한 시기에도 조용하고 차분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분들이 계실 거예요. 그래요.. 아램이가 그랬어요… 🤦🏻‍♀️

하지만 외로움이 크다고 너무 낙담하지 말아요. 우리가 좋아하는 예술가들은 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시간을 위해 일부러 세상과 단절하기도 하고, 외로움 자체를 훌륭한 작품으로 탄생시키기도 했으니까요!

오늘 아트레터에선 일에 온전히 집중하고 싶은 분들, 그리고 마음을 비우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새롭게 얻고 싶은 분들을 위해 고독의 시간과 마주한 예술가들을 소개합니다.

1. 쿠사마 야요이

2021년 역대 최고 규모로 전시된 영국 테이트 모던의 쿠사마 야요이 전시, <Infinity Room>
쿠사마 야요이는 호박, 패턴, 강박 등의 소재로 유명한 화가이자 조각가, 설치 예술가입니다. 그녀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세상이 혼란스럽자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라지세요. I say, Disappear from this earth.”

쿠사마의 작품 중 큰 모티브는 물방울무늬입니다. 💦 아주 큰 무늬부터 자잘한 점들까지 다양하죠. 마찬가지로 지구는 우주의 백만 개의 별들 중 작은 물방울 같은 점 하나일 뿐입니다. 그녀는 무한한 우주에 대한 아이디어를 <인피니티 룸>으로 탄생시켰습니다. 🪐

<인피니티 룸>은 거울을 이용해 무한대의 반복으로 이루어진 설치 공간입니다. 우주처럼 거대한 공간 안에 들어서면 관객은 자신이 엄청나게 작고 길을 잃은 작은 생명체가 됨을 깨닫습니다. 원근법을 이용해 외로움에 잠기게 만든 것이죠. 90세가 넘은 쿠사마는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고 나이가 들수록 더 외로움이 힘들다고 말합니다. 👵🏼 그리고 아주 어렸을 적, 10살 때 경험한 환각을 떠올리며 번쩍이는 빛, 아우라, 그리고 빽빽한 점들로 공간을 묘사했습니다. 그녀가 초대한 조명과 거울로 가득 채워진 넓은 방을 둘러보며, 더욱 강렬한 경험과 실존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 보세요.


2. 파블로 피카소

피카소의 작업실
  • 사교적인 피카소
우리가 알고 있는 피카소는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그림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를 좋아하는 명랑하고 활달한 사람입니다. 🗣 17살에 부모님과 함께 바르셀로나로 이사를 가면서 엘스 콰트레 가츠(Els Quatre Gats) 카페를 자주 찾곤 했죠. 그 카페는 단순히 친구들을 만나는 장소가 아니라, 그의 예술 세계를 보여주는 첫 경험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지금까지 이 카페는 영업을 하고 있어요!) ☕️ 나중에 파리로 이사한 뒤엔 몽마르뜨나 세탁선에서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습니다. 프랑스 시인인 기욤 아폴리네르앙드레 브르통, 콜렉터이자 후원인이었던 거투르드 스타인 등과 예술 외에도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서 토론하곤 했죠.

  • 고독한 피카소
피카소처럼 사교적인 사람도 작업실에 들어서는 순간, 고독의 시간과 마주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만날 시간이었던 거죠. 👨🏻‍🎨 그는 스튜디오에 있는 동안 혼자 일했고, 아무도 그에게 간섭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작업을 하는 동안은 예민해져 격노하는 일도 많았죠. 70대였던 1952년, 피카소는 자신이 고야, 렘브란트, 티치아노처럼 위대한 화가가 아니라 대중적인 연예인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외로움을 더욱 크게 느꼈다고 해요. 75년이라는 세월동안 총 16만 점의 작품을 남긴 가장 생산적인 예술가 피카소. 그는 고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위대한 고독이 없다면, 어떤 진지한 일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Without great solitude, no serious work is possible.”

3. 프랜시스 베이컨

프랜시스 베이컨,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에서 출발한 습작 (1953)
영국계 아일랜드 화가인 프랜시스 베이컨은 현대 미술사에서 아마도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인물일 것입니다. 이 그림으로, 그는 에드바르 뭉크의 1895년의 <절규>와 피카소의 1936년 <게르니카>와 같은 실존적인 작품들 옆에 나란히 자리를 꿰찼습니다.

그는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선천적으로 천식이 있어 학교에 가지 못했고, 굉장히 수줍은 성격을 지녀 또래 친구들을 사귀기 어려웠죠. 🤭 한마디로 완벽한 “I” 유형. 하지만 그는 꽤 이중적인 마음을 지녔습니다. 수줍고 불안한 기질을 지녔지만, “Normal”의 범위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컸고 동시에 매우 냉소적이었습니다. 😒

어릴 적부터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깨닫고, 16살 때 어머님의 속옷을 입다가 아버지에게 들켜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이후에 베를린, 런던 등 자유로운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밤이 되면 분장, 화장을 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즐거움을 찾았습니다. 스스로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그는 화려한 밤생활과 여전히 내성적인 성격 사이에서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휴식은 바로 캔버스 앞에서의 시간이었습니다. 🪑

매일 아침 캔버스 앞에서 프랜시스 베이컨은 항상 혼자였습니다. 오전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작업실에서 조용히 혼자 일했고, 작업이 끝나면 비싼 식당, 소호 클럽 등에 가서 굴과 샴페인을 시키며 예술가, 작가, 보헤미안들과 함께 입담 좋은 손님으로 변했습니다. 🥂 그렇다고 그가 절대적으로 매력적이고 관대한 사람이라고 오해하지는 마세요. 그는 누구도 자신의 일에 방해하지 못하도록 했고, 일에 있어선 굉장히 이기적이었으며 극도로 잔인했습니다. 그 때문이었을까요? 그가 사귄 파트너 중 두 명은 자살을 하기도 했어요. 😬

4. 엘스워스 켈리

엘스워스 켈리의 작업실에서, 1954. Photo: Courtesy Ellsworth Kelly Studio 
외로움을 최상의 가치로 끌어올린 예술가가 여기 또 있습니다. 프란시스 베이컨처럼 엘스워스 켈리도 어린 시절 병을 앓았던 수줍음이 많은 소년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그가 신선한 공기를 마시게 하기 위해 5살 때부터 야외에서 새를 관찰하도록 했습니다. 🕊 이 경험은 그의 예술 경력의 기본이 되었어요. 그것은 바로 침묵에 대한 사랑자연을 관찰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이후 일생 동안 조류 관찰자가 되었고 자연의 색(잎, 숲 등)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

미국인인 켈리는 조국과 유럽의 영향을 동시에 받아 이를 혼합한 만능 예술가입니다. 조각가이자 화가, 판화가로서 그는 미니멀리즘과 컬러필드 페인팅을 다루었습니다. 켈리가 유럽의 영향을 받은 스토리는 조금 특별해요. 젊은 시절 유럽 특수부대에 파견되어 복무했는데, 독일군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위장술로 탱크 모형을 디자인했습니다. 🪖 전쟁이 끝난 후, 보스턴에 있는 예술학교에 학업 과정을 마치기 위해 돌아갔지만 1948년에 파리로 돌아와 그 후 6년 동안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세 명의 예술가 장 아르프, 브랑쿠시, 몬드리안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켈리는 프랑스에 있는 동안 프랑스어를 배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어를 말하거나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를 매우 외롭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에게 집중했습니다. 자신을 찾으려 했고 스스로가 사회적 거리를 두었죠. 1996년 뉴욕 타임즈 인터뷰에서 그는 스스로 낯선 사람이 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러한 점들이 괴롭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예술작품에 대해 몇 시간 동안 말하고 떠드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코멘트를 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비평가들은 그의 예술이 너무 접근하기 쉽고 단순하다고 평하기도 했는데, 그는 '단순한'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쉬운'이라는 단어를 더 좋아했습니다. 사실 그의 작업은 굉장히 섬세하고 고단한 과정이 따랐습니다. 마치 색종이를 잘라 붙인 듯한 그의 회화는 작은 손자국, 붓칠의 흔적조차 전혀 없는 말끔함이 핵심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켈리는 오히려 관객이 자신의 작품을 쉽게 바라보고, 쉽게 감상하며 자신의 땀과 테크닉이 잊히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

🧍🏻‍♀️
인간은 선천적으로 고독한 존재입니다. 고독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고독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나'라는 존재가 유일무이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오직 한 명뿐인 ‘나’의 그 유일성 때문에 ‘나’는 가장 위대한 가치를 가지기도, 또 고독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고독하기 때문에 위대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위대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고독합니다.
오늘은 미소처럼 고독을 머금고, 새로운 출발점에 서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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