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65] 그림은 그리움이지

⛰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예술이 배달 왔어요💌
2021.10.22 Vol. 65

그림이 그리움으로 다가올 때

문청, 문청필누각산수도(文淸筆褸閣山水圖), 조선, 종이에 수묵담채,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대한민국.
문청의 누각산수도는 절벽 사이에 겹겹이 위치한 누각의 풍경을 담아냈다. 짧은 선 안에서 빠르게 이뤄지는 농담의 변화가 인상적이다.

문득 참을 수 없는 그리움이 몸을 감쌀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먼 산을 바라보며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하곤 합니다. 산 등성 넘어 어딘가 보이지 않는 마을에 살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은 이별이 믿기지 않기 때문일까요. 잔상처럼 남은 기억을 붙잡고 아득한 그리움을 담아냅니다.🙍

1. 가와무라 만슈, 천촌만주필세양공몽(川村曼舟筆細兩空蒙)

가와무라 만슈, 천촌만주필세양공몽(川村曼舟筆細兩空蒙), 일본 근대, 비단에 수묵,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대한민국.
비가 오는 날에는 어딘가 축축한 마음이 듭니다.☔️ 하늘을 가득 채운 자욱한 안개는 가슴 속 깊이 내려와 마음을 달래주지요. 굽이굽이 이어진 산 너머엔 그리운 사람이 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가와무라 만슈는 사실적인 풍경을 섬세하게 화면에 담아내며 서정적인 이미지를 나타냅니다. 작품은 비가 내리는 산의 풍경을 발묵법을 이용해 부드럽게 표현했습니다. 농묵과 담묵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이으며 화면 전체를 감싸는 은은함은 감상자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습니다. 화려한 표현 없이도 담담하게 감상자를 끌어당기는 작품은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2. 대아당하랑, 대아당하랑필우경산수도(大雅堂霞郞筆雨景山水圖)

대아당하랑, 대아당하랑필우경산수도(大雅堂霞郞筆雨景山水圖), 일본 에도, 비단에 수묵,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대한민국.
대아당하랑은 일본의 승려이자 화가입니다. 작품은 미점준법을 이용해 비를 머금어 무거워진 풍경을 효과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세로로 길게 늘어진 화면 중심을 가르는 나무숲은 화면을 분할하는 효과.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을 것 같은 고독한 원경의 산과 대조되는 유쾌한 분위기의 근경은 작품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입니다.

비를 피해 다리를 건너는 인물은 뒷모습을 보여주며 어떤 표정으로 길을 건너고 있을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내가 만약 작품 속 인물이었다면 어떤 표정과 어떤 생각으로 비 사이를 건너갔을까요?🥲

3. 하시모토 가호, 교본아방필산수도(橋本雅邦筆山水圖)

하시모토 가호, 교본아방필산수도(橋本雅邦筆山水圖), 일본 에도, 비단에 채색,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대한민국.
마치 안개가 내린 듯 아득한 풍경을 담고 있는 하시모토 가호의 작품입니다. 하시모토 가호는 일본의 근세와 근대를 연결하는 화가입니다. 일본화의 묘법을 기초로 하면서도 서양화의 기법을 차용해 본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원근감을 표현했습니다.

작품은 근경에서 원경으로 갈수록 점점 험준한 산의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단계적으로 산의 가파름을 표현한 작품은 화면에 안정감을 부여하며 겹겹이 쌓아올립니다. 거대한 산의 모습과 대비되는 인물의 크기는 아주 작지만 화면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4. 정선, 전정선필수묵산수화(傳鄭敾筆水墨山水圖)

정선, 전정선필수묵산수화(傳鄭敾筆水墨山水圖), 조선,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대한민국.
이 작품은 정선이 그렸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작품입니다. 가로로 짧게 누워있는 선부터 세로로 길게 뻗어나간 선까지 다양한 필법이 눈에 띄고 있지요. 정선이 붓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아주 능숙했음을 알 수 있는 지표입니다.

정선은 조선 후기의 화가로 진경산수화의 대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진경 산수화는 진경 즉, 대상의 겉모습 뿐만 아니라 본질까지 꿰뚫어보는 그림을 말합니다. 기존의 실경산수화에 남종화법을 가미해 형성되었고 ➡️ 정선에 의해 발전해나갔습니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촉촉하고 부드러운 선은 작품 전체를 감싸고 있습니다.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담묵의 선으로 겹겹이 쌓아간 산수풍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안정을 느끼게 합니다.

5. 오위업, 우경산수도(雨景山水圖)

오위업, 우경산수도(雨景山水圖), 청, 종이에 수묵,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대한민국.
작품 좌측 상단의 관서를 통해 오위업이 1663년에 그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위업은 중국 청 대의 화가로 남종화를 그렸습니다. 남종화는 간단하게 말하면 직업적 화공(畫工)들이 그린 북종화와 대비되는 화파를 말합니다. 남종문인화라고도 말하는데 이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사대부 또는 문인의 그림을 남종화 혹은 문인화라고 지칭합니다.

사방에 안개가 자욱한 자연 풍경 속에 두 사람이 우산을 나눠쓰고 다리를 건너는 모습은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을지 상상하게 만듭니다.👬 화면 중간중간 등장하는 담묵의 풍경은 첩첩산중의 이미지를 은은하게 드러냅니다.

🍁
산 너머, 산 너머란 말 속에는
그리움이 살고 있다
그 그리움을 따라가다 보면
아리따운 사람, 고운 마을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나태주 <가을 마티재> 中

🙂
작품에 등장하는 겹겹의 산들은 가슴속 어딘가에 내재된 그리움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림과 그리움은 한 끗의 차이일 뿐이에요. 그림은 곧 그리움으로 다가와 감상자의 시린 마음을 위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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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64] 삶은 스케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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