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95] 💞🌱 사랑은 어떻게 자라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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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의 장면들로 읽는 예술의 순간.

2025.10.18 Vol.195

니콘 사진 콘테스트 2024–2025 '사진 스토리' 부문 수상작 <The Stage of Life (Yi Liu)>. 한 산모의 출산 장면을 포착했다. 두려움, 고통, 그리고 생명이 교차하는 그 순간은 말 그대로 ‘삶의 무대’에 막 첫발을 내딛는 찬란한 순간이 아닐까?

10월은 유난히 ‘생명’이 가까이 느껴지는 달이에요. 🌿
하늘은 높고 공기는 선명해지고, 들판에는 수확의 기운이 가득하죠. 그래서일까요? 이 시기에 태어난 아기들은 유독 건강하고 활력이 넘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국 에섹스대 연구팀에 따르면, 을에 태어난 아이들이 다른 계절보다 신체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해요. 여름의 햇살 아래에서 임신 후기의 산모가 충분한 비타민 D를 섭취하면서 태아가 더 강하게 자란다는 이유 때문이죠. 실제로 10월, 11월생 아이들이 평균적으로 더 빠르고, 더 높이 뛰며, 근육도 단단했다고 합니다. 🌞

10월 10일이 ‘임산부의 날’인 것도 우연은 아닌 듯해요. 생명의 시작을 기리고, 그것을 품는 존재에게 감사하는 의미를 담고 있죠. 게다가 크리스마스와 연말의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잉태된 사랑이 여름을 지나 가을에 열매 맺는다는 속설까지 있으니, 10월은 그야말로 탄생의 달이라 부를 만해요.

이번 주 아트레터는 예고 없이 찾아와 세상의 공기를 바꿔놓는 ‘아기와 양육’이라는 생명의 예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해요. 👶🏻 첫 울음으로 시작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길러내고 자라나는지 함께 바라보려 합니다.

읽다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끝까지 읽으면 티켓(🎟️)이 손에 들어오는 아트레터. 힘차게 시작해 볼게요! 😉

늑대의 젖, 로마의 시작
페테르 파울 루벤스 - 로물루스와 레무스
Peter Paul Rubens, Romulus and Remus, 1615, Capitoline Museums, Rome, Italy.
🌕 새벽의 테베레 강가. 거친 숨을 몰아쉬는 늑대가 젖을 물리고, 강의 신이 항아리에 기대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내려다봅니다. 나뭇가지에 앉은 딱따구리는 먹이를 물어 나르고, 한 목동이 풀숲을 헤치며 발걸음을 멈추죠. 로마의 ‘미래’가 아직 이름조차 갖기 전, 버려진 두 아기.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둘러싼 이 장면을 루벤스는 폭발적인 육감과 속도감으로 묶어냅니다. 살과 털, 물결과 바람이 한 화면에서 뒤엉키며, 질문 하나가 선명해져요. 💭 낳은 이가 부모일까, 돌보는 이가 부모일까?

👶🏻 이 장면의 주인공은 로마의 건국 신화를 대표하는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입니다. 형제 가운데 로물루스는 전설적 로마의 건국자이자 초대 왕이 되었죠. 태어난 아이를 모두 죽이라는 아물리우스의 명령을 피해 가축을 치는 시종 파우스툴루스가 테베레 강으로 아기들을 흘려보냈고, 이를 늑대가 발견해 젖을 먹이고 딱따구리가 음식을 갖다주며 살린 이야기입니다.

🔍 한눈에 보는 감상 포인트
  • 시선의 동선: 늑대의 몸에서 아기, 아기에서 좌측 강의 신, 다시 우측 목동으로. 화면을 시계 방향으로 타고 시선을 흘려보세요. 한 장면 안에 “발견→보살핌→서사의 시작”이 순환합니다.
  • 상징의 삼중주: 늑대(모성/생존), 딱따구리(섭생/보급), 강의 신(보호/합법성). “혈통”이 아닌 생태적 연대가 도시에 정통성을 부여한다는 역설.
  • 버려짐’의 미학: 버려졌기에 만난 타자(동물·자연·평민). 로마는 배제의 순간에서 출발했고, 그 공백을 메운 것은 제국이 아닌 돌봄의 실천이었음을 암시합니다.

🍼 아기를 키우는 일은 혈연만으로 설명되지 않죠. 밤중 수유, 체온을 나누는 포옹, 낯선 도움의 손길… 루벤스의 화면처럼, 양육은 관계망에서 시작됩니다. 가족, 이웃, 의료진, 지역사회. 우리를 ‘사람으로’ 길러낸 건 언제나 여러 존재들의 합주였어요. 이 그림은 건국 신화를 웅장한 전투 장면이 아니라 첫 수유의 순간으로 시작합니다. 한 도시의 탄생도 한 아이의 양육처럼 누군가의 돌봄에서 시작되죠.

💡 짧은 팁: 이렇게 보면 더 재밌어요
  • 늑대의 갈빗결과 아기 피부의 광택 대비에 주목해 보세요. ‘야성/연약함’이 아니라 두 종류의 생명력이 마주보는 구도예요.
  • 화면 구석의 목동(파우스툴루스)은 ‘낳은 이’가 아닌 ‘기르는 이’의 도입부. 부성/모성의 역할 전환을 예고하는 작은 신호탄입니다.

구하려는 자, 그 이름은 아버지
라오콘 군상
Laocoön and His Sons, excavated in 1506, Vatican Museums, Vatican.
🌊 트로이의 저녁, 바다에서 검은 파도가 들려옵니다. 땅이 미세하게 떨리며 신의 분노가 다가오고, 곧 물결을 가르며 두 마리의 거대한 바다뱀이 솟아올라요. 그들은 신의 명령을 받든 전령처럼, 트로이의 사제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을 향해 미끄러지듯 다가옵니다. 잠시 후 살과 비늘, 근육과 비명이 한데 엉켜버린 절망의 군상이 탄생하죠.

〈라오콘 군상〉은 바로 그 찰나를 붙잡은 작품이에요. 라오콘은 트로이의 제사장이었고, 그리스군의 목마를 성 안에 들여서는 안 된다고 외친 인물이죠. ⚔️ “그 안에는 병사가 숨어 있다!” 그는 신탁을 거스르며 진실을 경고했고, 그 대가로 신들은 두 마리의 뱀을 보내 그와 그의 아들들을 옭아맸습니다. 아버지는 이를 악물고 아이를 끌어안지만, 신의 분노 앞에서 인간의 팔은 너무나 무력했죠.

이 조각은 기원전 1세기경 로도스 섬의 세 조각가가 만든 것으로, 1506년 로마의 포도밭에서 우연히 발견되었어요. 교황 율리오 2세는 이 이야기를 듣고 미켈란젤로에게 조각을 감정하게 했고, 미켈란젤로는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조각품”이라며 격찬했죠. 이 말을 듣고 교황은 농부로부터 라오콘을 즉시 구입해 대중이 감상할 수 있게 공개했는데, 오늘날 이를 바티칸 미술관의 기원으로 봅니다. 🏛

🔍 한눈에 보는 감상 포인트
  • 시선의 중심: 라오콘의 비틀린 몸통에서 두 아들에게로 흘러가는 시선. 아버지의 절규가 파도처럼 번집니다.
  • 비명 대신 침묵: 그는 소리치지 않아요. 입은 열려 있지만 목에는 울음이 걸린 듯 멈춰 있죠. 신을 향한 원망과 자식을 잃는 고통이 뒤섞인 ‘절제된 절규’가 울립니다.
  • 근육의 완성도: 실제로 라오콘의 몸은 마치 살아 있는 해부학 같습니다. 뱀의 독에 부풀어 오른 근육, 소름처럼 돋은 혈관, 눈동자까지 살아 있는 듯해요. 그 정밀함은 지금도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라오콘의 이야기는 결국 ‘지키려는 자의 비극’이에요. 아이를 구하려다 함께 삼켜지고, 진실을 말하다 신의 벌을 받는 인간. 그 모습은 어쩌면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부모가 아이를 위해 세상과 싸우다 상처받고, 옳다고 믿은 일을 지키려다 오히려 손가락질을 받는 순간들. 우리는 여전히 그 라오콘의 표정을 알고 있죠.

이 조각을 바라보면 생각하게 됩니다. 부모란, 예언자란,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란... 결국 구하려다 함께 삼켜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고요.

대공황의 모나리자
도로시아 랭 - 이민자 어머니
Dorothea Lange, Migrant Family, 1936, Museum of Fine Arts, Boston, MA, USA.
캘리포니아의 가난한 *피-피커; 7명의 자녀를 둔 32세의 어머니. 1936년 2월 [원문: 3월]

* 피-피커(Pea-picker; 완두콩 따는 사람; 대공황 기간 동안 가난한 이주 노동자에게 쓰는 경멸적인 언급)

“나는 그녀의 이름이나 그녀의 역사를 묻지 않았다. 그녀는 나에게 그녀의 나이를 말했다, 그녀는 32살이다. 그녀는 그들이 주변 들판에서 가져온 냉동 채소와 아이들이 죽인 새들을 가지고 살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음식을 사기 위해 방금 차의 타이어를 팔았다.”
- '도로시아 랭'의 책 본문 중

🌾 1936년, 캘리포니아 니포모의 임시 캠프.
한 여자가 낡은 천막 아래 앉아 멀리 어디쯤을 바라봅니다. 얼굴에는 피로가, 품에는 아이들이. 도로시아 랭은 그날, 이 여인의 얼굴을 렌즈에 담았어요. 이름은 플로렌스 톰슨, 일곱 아이의 엄마. 단 10분 남짓한 시간, 일곱 장의 셔터가 눌렸고, 그중 한 장의 사진이 세계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게 됩니다. 이 사진은 대공황기의 이주 노동자 구호 캠페인을 촉발하며 뉴딜 정책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 사진 속 플로렌스의 표정은 말 대신 시대를 말합니다. 입술은 굳게 다물렸지만, 그 안에는 배고픔과 두려움, 그리고 ‘부모로서의 체념하지 않음’이 함께 서려 있죠. 그녀는 절망하지 않았어요. 단지 피로했을 뿐. 세상은 그녀를 ‘1930년대의 모나리자’라 불렀지만, 그 미소의 부재야말로 당대의 진실이었습니다.

랭은 가난을 찍지 않았어요. 그녀는 “버티는 인간의 존엄”을 찍었습니다. 플로렌스는 남편을 잃고, 농장에서, 식당에서, 병원에서 그 어떤 일도 가리지 않았죠. 하루에 500파운드의 목화를 따던 그녀의 손은 이미 굳은살투성이였지만, 아이들을 먹이는 손길만큼은 결코 멈추지 않았어요. 그 삶의 무게가 사진 한 장에 응축된 겁니다.

🔍 한눈에 보는 감상 포인트
  • 표정의 서사: 주름 사이에는 체념이 아니라, 끝내 꺼지지 않는 의지가 있습니다.
  • 아이들의 자세: 모두 얼굴을 돌리고, 엄마만이 카메라를 마주합니다. 그 한 시선이 ‘개인’에서 ‘국가’로, ‘모성’에서 ‘인류’로 확장되죠.
  • 빛의 방향: 얼굴을 비추는 빛은 희미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처럼요.

⚠️ 하지만, 이 상징적인 사진 뒤에는 또 다른 진실이 있었습니다. 플로렌스 톰슨은 캘리포니아 농장을 전전하며 살아가던 중, 차가 고장 나 잠시 멈춰섰습니다. 사내아이들이 부품을 사러 간 사이, 사진작가가 다가왔죠. 랭은 몇 장의 사진을 찍으며 “공개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사진은 곧 정부 기관으로 넘어가 신문 1면을 장식했습니다. 작가가 풀어낸 “타이어를 팔아 음식을 샀다”는 이야기도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서사는 순식간에 ‘굶주린 이주 노동자 어머니’의 상징으로 소비되었죠.

사진은 너무나도 유명해졌지만, 사진 속 여성은 아무런 명예도 권리도 갖지 못했습니다. 사진의 원본은 미국 정부 소유로 넘어갔고, 그녀는 초상권이나 저작권료를 한 푼도 받지 못했어요. 오히려 사람들은 그녀를 ‘불쌍한 어머니’로 기억했고, 플로렌스는 그 이미지를 평생 짊어져야 했습니다.

🗣 훗날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사진은 나를 구하지 못했어요. 난 여전히 가난했고, 아이들을 먹여야 했죠.”

이 작품은 분명 역사와 정책을 움직인 위대한 기록 사진이었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현실을 왜곡한 불편한 예술의 상징으로도 남았습니다. 예술은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주기도 하지만, 그 힘이 한 개인의 삶을 지워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 그걸 잊지 말아야겠죠.

사랑에도 계급이 있었다
루시리오 데 앨버커키 - 흑인 어머니
Lucílio de Albuquerque, Mãe Preta, 1912, Bahia Museum of Art, Salvador, Brazil.
👩🏿‍🍼 한 여인이 하얀 아기를 품에 안고 젖을 물립니다. 그 옆엔 자신의 아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기다리고 있어요. 어머니의 품이 아니라, 주인의 아이에게 먼저 내어준 젖을.

루시리오 데 앨버커키의 1912년작 〈Mãe Preta〉(흑인 어머니) 는 브라질 회화사에서 보기 드문 정직한 그림입니다. 화면 속 흑인 여성은 단지 ‘젖을 먹이는 보모’가 아니라, 식민주의와 인종, 젠더가 교차하는 모성의 초상이에요.

하얀 아이의 얼굴에는 평온이, 검은 아이에게는 결핍이 담겨 있죠. 이 대비는 말 한마디 없이 불평등의 시스템을 설명합니다. ‘Mãe preta’는 포르투갈어로 ‘검은 어머니’를 뜻하지만, 실제로는 브라질 식민지 시대에 백인 주인집의 아이를 대신 키운 흑인 유모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어요. 많은 이들이 노예 신분이었고, 자기 아이는 영양실조로 죽어가는데도 주인의 아이를 우선 돌봐야 했죠. 앨버커키는 이 그림으로 사랑조차 계급화된 현실을 정면으로 보여주었습니다.

🔍 한눈에 보는 감상 포인트
  • 두 아이의 위치: 하얀 아이는 품 안에, 검은 아이는 발치에. 단 한 줄의 거리 차이가 당시 사회 구조 전체를 드러냅니다.
  • 빛의 배분: 화면의 중심은 백인 아기에게 쏠려 있지만, 실은 그 빛을 내는 이는 흑인 어머니의 살결이에요. ‘보이지 않는 존재’가 세상을 지탱하고 있다는 역설.
  • 표정의 힘: 어머니의 눈에는 슬픔보다 자기 의무를 견디는 강인함이 있습니다. 그건 시대가 만든 비극이자, 여성의 또 다른 존엄이기도 하죠.

당시 브라질 미술계는 이 작품을 불편해했습니다.
“너무 현실적이다”, “예술이 아니라 사회문제다.” 국립미술관은 이 그림의 구매를 거절했고, 평론가들은 외면했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 이 작품은 억압된 여성과 흑인 모성의 상징으로 다시 조명받게 됩니다.

작품은 조용하지만 무겁게 말합니다. 사랑에도 구조가 있고, 돌봄에도 계급이 있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생명을 지탱해온 건 언제나 그 누군가의 어머니가 내어준 품이었다는 것을. 🖤

출판 불가 판정 받은 키스
J. 로스 보먼 - Gay Dads Kissing
J. Ross Baughman, Gay Dads Kissing, 1983,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Washington, DC, USA.
🏠 1983년, 캐나다 토론토의 어느 집. 한 남자가 아들과 산책하기 위해 집을 나서기 전, 유리문 사이로 파트너에게 짧은 인사를 건넵니다. 평범한 가족의 오후 같지만, 이 장면은 당시 세상이 허락하지 않던 사랑의 기록이었습니다.

1977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보도 사진가 제이 로스 보먼은 게이 아버지들의 현실을 다룬 라이프(Life) 매거진 특집 기사 <더블 클로짓(The Double Closet)>을 위해 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두 남성, 마이클과 로버트는 함께 네 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었죠. 그중 한 명은 다운증후군을 앓던 딸이었고, 사진 속 배경에도 그녀가 등장합니다. 👧🏻

🚫 그러나 당시 라이프 편집진은 이 사진을 게재하지 못했습니다. 광고주와 보수 독자의 반발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죠. 결국 표지는 거품 가득한 욕조 속 여배우로 대체되었고, 이 가족의 키스는 ‘출판 불가’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보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건 단순한 키스가 아니라, 부모로서의 권리를 증명하는 장면”이라 믿었죠. 결국 사진은 게이 매거진 Christopher Street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왔고, 이후 에스콰이어(Esquire)에도 실리며 많은 이들에게 ‘보이지 않던 가족의 얼굴’을 보여주었습니다. 🌈

🔍 한눈에 보는 감상 포인트
  • 유리문 사이의 거리: 사회가 만든 보이지 않는 벽. 그 위에서 나누는 가장 평범한 사랑의 제스처.
  • 아이의 시선: 아빠의 등에 매달린 아이의 표정이 자연스럽습니다. 이 가족에게 사랑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하루의 일상이에요.
  • 시대의 모순: 1980년대, 라이프는 ‘사랑’보다 ‘두려움’을 선택했죠. 지금 라이프는 폐간되었고, 이 사진은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마이클과 로버트는 이후 40년 가까이 함께했고, 2011년 정식으로 결혼했습니다. 사진 속 딸은 안타깝게도 33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나머지 세 자녀들은 다양한 직업, 배우자 및 자녀와 함께 각자의 삶을 꾸려가며 지금도 건강히 살아 있습니다. 사랑이 가족의 자격을 증명해야 했던 시대, 그들은 그 벽 너머로 입을 맞추며 세상을 바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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