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89] 🌸 꽃 한 송이가 바꾸는 세계 : 아트레터

[Vol.189] 🌸 꽃 한 송이가 바꾸는 세계

2025.02.08 Vol.189

카프와니 키왕가, <The Marias, 2020>. 서구가 꽃을 도감에 기록하던 시기, 동시에 식민지 역사 속에서 아프리카인들을 착취했던 과거를 조명하는 작품. 작가가 종이로 만든 공작꽃은 대서양 노예 무역 당시 노예 여성들이 강제 임신 중절을 위해 사용했던 식물을 재현하며, 식물을 통한 억압과 저항의 역사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입춘이 지났다고 해서 봄이 성큼 다가올 줄 알았는데, 웬걸? 매서운 바람과 한파가 봄을 시샘하듯 몰아치고 있어요. ❄️ 하지만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분명 봄은 오고 있어요. 어쩌면 우리가 기다리는 그 따뜻한 기운은, 예술 속에서 먼저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죠.

고대 로마에서는 꽃과 봄을 주관하는 여신 플로라(Flora)를 기다리며 '플로랄리아(Floralia)'라는 축제를 열었다고 합니다. 찬란한 색채와 생명의 에너지가 가득한 이 축제처럼, 오늘은 캔버스 위에서 만개한 꽃들을 소개하려고 해요.

누군가는 꽃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담으며 계절의 변화를 기록했고, 어떤 이들은 꽃에 상징을 부여하며 사랑과 순수, 덧없음의 의미를 그려냈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함께, 꽃이란 소재가 어떻게 예술 속에서 재탄생했는지 살펴봐요. 화려한 색감과 섬세한 터치로 탄생한 작품들 속에서, 어쩌면 우리가 기다리는 봄의 기운을 먼저 느낄 수도 있을 거예요. 🌷

🌻 고흐의 해바라기는 그의 삶이었다

Vincent van Gogh, Sunflowers, 1889, Van Gogh Museum, Amsterdam, Netherlands

▪️ 고흐의 가장 유명한 해바라기 화병 – Sunflowers (1888)

고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림이 바로 이 해바라기 화병이 아닐까요? 🌞 1888년, 그는 프랑스 아를(Arles)의 작은 노란 집에서 친구 폴 고갱(Paul Gauguin)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이 작품을 그렸어요. 그에게 해바라기는 태양의 열기, 생명의 기운, 그리고 열정 그 자체를 의미했죠.

노란 바탕에 노란 해바라기 🎨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 고흐는 다양한 노란색을 사용해 미묘한 색의 차이를 표현했어요. 화병 속 해바라기들은 시들어가는 모습까지 함께 담겨 있죠. 이는 삶과 죽음,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듯 보입니다.

강렬한 붓터치 & 색채 실험 🖌️
이 작품에서 고흐는 색채 이론을 실험하며, 붓터치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독창적인 기법을 보여줬어요. 그래서 단순한 정물화가 아니라, 고흐의 감정이 직접 담긴 듯한 강렬한 작품이 되었죠.

지금 어디에 있을까? 📍
현재 이 작품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어요. 사실 같은 구도로 여러 버전을 그렸는데, 이 그림이 그중 가장 유명하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노란 해바라기 속에 담긴 태양 같은 에너지, 지금 한 번 더 들여다볼까요? ✨

Vincent van Gogh, Withered Sunflowers, 1887, Kröller-Müller Museum, Otterlo, Netherlands

▪️ 덜 알려졌지만 강렬한 ‘누워있는 해바라기’ – Sunflowers (1887)

지금은 모두가 고흐의 재능을 인정하지만, 그의 작품 세계를 처음 알아본 사람 중 하나가 바로 폴 고갱(Paul Gauguin)이었어요. 그리고 고갱이 처음 보고 감탄했던 해바라기 작품이 바로 ‘누워있는 해바라기’ 시리즈였죠.

1887년, 파리 🇫🇷
이 시기 고흐는 여러 개의 해바라기 정물화를 그렸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화병 속 해바라기와 달리, 이 그림 속 해바라기들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에요. 활짝 피어 있다가 힘없이 스러진 듯한 형태는 생명의 강렬함과 덧없음을 동시에 느끼게 합니다.

고갱이 본 고흐의 가능성 👀
이 그림을 본 고갱은 "고흐의 색감과 감정 표현이 남다르다"며 그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어요. 이후 두 사람은 아를(Arles)에서 함께 작업하며 예술적 교류를 나누게 되었죠.

해바라기는 곧 고흐 자신이었다 🌞
고흐의 해바라기 하면 보통 화병 속 꽃을 떠올리지만, 그는 이미 이 시기부터 해바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었어요.

결국, 해바라기는 단순한 꽃이 아니라 고흐 자신을 대변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태양처럼 불타오르다가도 금방 시들어버리는 해바라기처럼, 그의 삶과 예술도 강렬하면서도 덧없는 것이었죠.

🌺 그녀는 꽃을 그린 게 아니라, 꽃처럼 불타올랐다

Olga Wisinger-Florian, Blooming Poppies, 1895-1900, Belvedere, Vienna, Austria.

올가 비징거-플로리안(Olga Wisinger-Florian, 1844-1926)은 19세기 비엔나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여성 화가 중 한 명이에요. 그녀는 꽃을 멈춰있는 정물이 아닌, 생동감 넘치는 장면으로 표현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했어요. 특히 꽃을 그린 작품들은 그녀의 예술 세계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었죠.

양귀비가 피어오르는 순간 ☀️
이 작품은 화면을 가득 채운 양귀비꽃이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듯한 역동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요. 부드러운 색의 조화보다는 선명한 대비와 리드미컬한 터치로 꽃의 생명력을 강조했습니다. 붉은 양귀비와 푸르스름한 배경이 어우러지며 강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자연 속 빛과 공기까지 담아내려 한 듯한 느낌을 줘요. 그림 속 양귀비는 따뜻한 햇빛 아래 활짝 피어 있으며, 바람에 흔들리는 듯한 붓터치는 생동감을 더합니다.

예술가로서 그녀의 강렬한 존재감 🔥
그녀는 화가로서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강인한 예술가이기도 했어요. 1882년, 비엔나의 예술가의 집(Die Künstlerhaus) 전시에서 여성 화가들은 오프닝 행사에 초대되지 않았는데요. 그녀는 이에 분개하며 일기에 이렇게 적었어요.

"여성들은 개막식에 올 수도 없단 말인가! 하지만 우리의 그림은 전시할 가치가 있다니?"

그녀는 자신의 작품이 갤러리에서 제대로 된 위치를 받지 못하자, 직접 그림을 떼어버리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어요. 그만큼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이 강했고, 자신의 작품이 마땅한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던 거죠.

세계가 주목한 그녀의 작품 🌏
올가의 작품은 시카고(1893), 파리(1900), 세인트루이스(1904) 세계박람회에서도 전시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황실과 귀족들 역시 그녀의 그림을 소장하며 그 가치를 인정했죠.

작품 속 양귀비가 마치 그녀 자신처럼 보이지 않나요? 가만히 머무르지 않고, 불타오르듯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올가 비징거-플로리안은 자신의 방식대로 예술을 피워낸 혁명적인 화가였어요.

🦋 얀 반 후이섬, 꽃 정물화의 거장

Jan van Huysum, Flower Still Life, ca. 1700, Mauritshuis, The Hague, Netherlands

얀 반 후이섬(Jan van Huysum, 1682-1749)은 네덜란드 꽃 정물화의 거장입니다. 그의 작품은 마치 투명한 유리병 속에 갇힌 순간을 포착한 듯한 섬세한 디테일과 화려한 색채로 유명해요. 그 중, ‘Flower Still Life’는 18세기 네덜란드 화려한 정물화 스타일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꽃과 나비가 전하는 이야기 🌿
그림 속 꽃들은 저마다의 상징을 품고 있어요. 탐스럽게 핀 장미와 카네이션은 사랑과 열정을, 나팔꽃과 작고 여린 꽃들은 시간의 덧없음을 의미하죠.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요소는 그림 속에 등장하는 나비예요. 🦋
오른쪽 끝에 자리한 ‘페인티드 레이디(Painted Lady)'라는 나비는, 섬세한 날개 무늬까지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어요. 나비의 붉고 흰 무늬는 꽃들의 색감과 어우러지며 조화로운 구성을 이루고 있죠. 이는 마치 꽃과 곤충이 한 생태계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해요.

꽃 화가의 불사조 🏆
당시 미술사가였던 아놀드 하우브라켄(Arnold Houbraken)은 후이섬을 두고 "꽃 화가의 불사조(the phoenix of flower-painters)"라고 불렀어요. 1672년 이후 쇠퇴하던 네덜란드 정물화 전통을 다시 부활시켰기 때문이었죠. 그가 세밀하게 쌓아 올린 꽃의 층위, 빛을 머금은 듯한 부드러운 색감은 후대의 화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예술가의 자부심 🖋️
이 작품은 30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빛을 발합니다. 후이섬은 이를 예견이라도 했다는 듯이 그림 한편에 자신만만하게 “Jan Van Huijsum fecit”(얀 반 후이섬이 만들었다)라는 서명을 남겼어요. 그만큼 자신의 예술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죠!

▪️ 보너스! 피나 미랄레스, 새로운 정물화의 시선

Fina Miralles, Still Life, Museu Nacional d’Art Contemporani de Barcelona, Barcelona, Spain

현대에도 ‘정물화’는 계속해서 새로운 해석을 만나고 있어요. 스페인의 개념미술 작가 피나 미랄레스(Fina Miralles)는 전통적인 정물화 개념을 완전히 해체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꽃 정물화와는 전혀 달라요. 작품 속에서 정물화의 요소들이 마치 해체된 채 재구성된 듯한 느낌을 주죠. 기존의 정물화가 완벽한 균형과 아름다움을 표현했다면, 미랄레스는 오히려 정물화의 한계를 의문시하며, 사물들이 가진 진짜 본질은 무엇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하이퍼리얼리즘적인 동시에 덧없는 순간성을 담아낸 작품으로 평가받아요. 후이섬이 꽃을 정교하게 그려내어 그 아름다움을 영원히 보존하고자 했다면, 미랄레스는 정물화란 결국 사라질 운명을 지닌 이미지임을 보여주고 있죠.

시대와 스타일은 다르지만, 정물화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탐구하고, 그 속에서 영속성과 순간성 사이의 긴장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묘하게 연결된 것 같지 않나요? ⏳

🤍 백합과 연꽃, 성스러움과 깨달음의 상징

로베르 캉팽, ‘메로데 제단화’ 세폭화, 1427-1432, 패널에 유채, 65x117cm, 클로이스터 컬렉션.

▪️ 성경 속 백합, 신성함을 담은 꽃 (15세기)

성경 속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인 ‘수태고지(The Annunciation)’. 네덜란드 화가 로베르 캉팽(Robert Campin)의 이 작품 속에서, 천사 가브리엘은 성모 마리아에게 그녀가 예수를 잉태할 것임을 알리고 있어요. 그리고 그 장면 한편에는 흰 백합이 꽂힌 꽃병이 자리하고 있죠.

백합이 전하는 의미 🕊️
백합이 지닌 순백의 꽃잎은 마리아의 순결을, 꽃병은 그녀의 신성한 모태를 상징해요. 흙에서 자라지만 맑은 색을 유지하는 백합처럼, 마리아도 특별한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뿌리째가 아닌, 잘려진 백합? 🤔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백합이 꽃병에 꽂혀 있다는 것이에요.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많은 작품에서 백합은 대개 뿌리째 그려졌어요. 하지만 여기서는 잘린 채 꽃병에 담겨 있죠.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성모 마리아의 상징 💫
이것은 마리아가 단순히 한 인간이 아니라 신의 계획 속에서 특별한 역할을 맡은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는 장치라고 볼 수 있어요. 대지에서 뽑혀 하늘의 뜻을 전달하는 백합처럼, 마리아도 이제 평범한 삶에서 벗어나 신성한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죠.

백합은 이후 많은 성모 마리아의 초상화에서도 등장하며, 그녀의 상징적인 꽃이 되었습니다.

▪️ 로터스 템플(Lotus Temple), 델리 (1986년 개관)

로터스 템플

인도 델리 한복판, 이국적인 풍경 속에 마치 연못 위에 떠 있는 듯한 순백의 연꽃 모양 건물이 있어요. 이곳은 바로 바하이교(Bahá'í Faith)의 성전, ‘로터스 템플(Lotus Temple)’입니다.

연꽃을 닮은 신성한 건축물 🏛️
로터스 템플은 이름 그대로 완전히 핀 연꽃을 형상화한 건축물이에요. 흥미로운 점은, 이곳이 특정 종교의 예배당이 아니라 모든 종교와 사람들에게 열린 공간이라는 점입니다. 누구든 이곳에서 조용히 명상하고, 기도하고, 내면을 돌아볼 수 있어요.

연꽃이 상징하는 것 🪷
연꽃은 진흙 속에서 자라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꽃을 피우는 존재예요. 이는 불교, 힌두교, 바하이교에서 공통적으로 깨달음과 영적 성장을 상징합니다.

모두에게 열린 공간 🌍
바하이교는 인류가 하나의 공동체이며, 모든 종교가 같은 근원을 가진다고 믿어요. 따라서 로터스 템플도 국적, 신앙, 계층에 관계없이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되었죠.

27장의 대리석 꽃잎이 겹겹이 펼쳐진 이 건축물은 연꽃의 형상을 그대로 재현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들이 마음의 평화를 찾도록 하는 공간입니다. 로터스 템플은 혼란한 세상 속에서 평화와 조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

💡 예술 속 꽃들이 의미하는 것

고대 신화에서 기독교 미술, 현대 건축까지—꽃은 늘 강렬한 메시지를 품어왔어요. 작품 속 꽃들이 가진 의미를 한눈에 정리해볼까요?

오늘, 여러분은 어떤 꽃의 의미에 가장 끌리나요? 한 송이 꽃처럼, 우리도 저마다의 의미를 품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요? ✨

🎨 추천 전시
런던 사치 갤러리, 500여 점의 작품으로 만나는 꽃

오는 2월 12일부터 5월 5일까지, 런던 사치 갤러리(Saatchi Gallery)에서 〈Flowers: Flora in Contemporary Art and Culture〉 전시가 열립니다. 꽃이 예술과 문화 속에서 지닌 상징을 탐구하는 이번 전시, 봄을 맞이하며 꽃의 생명력과 창조적 영감을 경험할 절호의 기회를 확인하세요! 💐

📍 전시 기간: 2024년 2월 12일 ~ 5월 5일
📍 장소: 런던 사치 갤러리(Saatchi Gall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