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여성 예술가 ‘로이스 마일루 존스’는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문화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자신의 뿌리에 대한 깊은 존경과 정체성을 드러냈다. (사진: 1977년 그녀의 스튜디오에서)
안녕하세요, 아램이에요! 🙋🏻♀️
🌕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 추석이 다가왔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오랜만에 가족들과 모여 웃고 즐기는 시간이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가족의 기대나 전통의 무게가 부담스러울 수 있죠. 그리고 명절을 타지에서 보내야 하는 이들은 더욱 외롭고 고립감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이런 시기에, 한 번쯤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요?
자기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시선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날이라면, 오늘 소개할 ‘여성 화가의 자화상’ 주제가 딱 어울릴 것 같네요. 자화상은 셀카의 오래된 형태라고 할 수 있어요. 🤳 여성 화가들은 이를 통해 단순히 자신의 얼굴을 그린다기 보다, 세상에서 그들을 어떻게 바라봐주길 원하는지 표현했습니다. 자화상에 당대의 사회적, 정치적 이슈를 담기도 했죠. 특히 오랜 시간 여성은 예술에서 그저 대상이 되어왔는데, 자화상을 통해 스스로를 능동적인 주체로 그려내며 여성의 권리와 힘을 상징하는 표현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아트레터에서는 이런 맥락을 담아, 여성 화가들이 그린 자화상 5점을 함께 살펴볼까 합니다.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여성들은 주로 그림의 모델로만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소포니스바 안귀솔라(1532~1625)는 이 관습을 깨고 자신을 화폭에 담았어요. 그녀의 자화상은 단순한 자기 묘사가 아니라, 여성 예술가로서의 존재를 당당히 드러낸 혁신적인 작품이었습니다.
1556년에 그린 자화상에서 안귀솔라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그리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녀는 차분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자신을 진지하고 품격 있는 예술가로 표현했어요. 당시 여성 예술가들이 남성 동료들만큼 인정받지 못하던 시대에, 안귀솔라는 자신의 창의성과 지적 능력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아름다움보다는 예술가로서의 능력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죠. ✨
또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는 그녀가 순결하고 덕망 있는 여성이 되고자 하는 바람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요소들은 그녀를 그 시대의 중요한 여성 예술가로 자리매김하게 했어요.
안귀솔라는 운 좋게도 가족의 지지를 받아 예술 교육을 받았고,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드문 일이었습니다. 이후 스페인 궁정에서 필립 2세의 초상화를 그리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엄격한 궁정 화가의 계약 속에서도 그녀는 남성 화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그녀가 왕실에서 그린 그림들은 계약에 따라 그려진 '작업'인 반면, 자화상은 자신만의 세계를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무대였어요. 자화상을 통해 그녀는 창작의 자유를 만끽하며 자신을 예술가로 선언했습니다.
고통을 예술로 승화한 바로크 시대의 여성 화가
👩🎨 아르테미시아 젠틸렌스키
Artemisia Gentileschi, Self-Portrait as the Allegory of Painting, 1638-1639, Royal Collection, London, UK.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당신은 카이사르의 용기를 가진 한 여자의 영혼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한 고객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1593~1653)는 17세기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화가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자화상을 통해 예술가로서의 자부심과 여성으로서의 강인함을 표현했어요. 특히 <회화의 알레고리로서의 자화상>에서는 화판을 들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이는 여성 예술가로서 자신을 당당히 세상에 알리는 강력한 메시지로, 당시로서는 대담한 선언이었어요. ⚔️
그러나 젠틸레스키의 삶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녀는 17살에 아버지의 동료였던 화가 아고스티노 타시에게 성폭력을 당했어요. 당시 타시는 그녀의 스승 이었고, 아르테미시아는 그를 믿고 의지하던 중이었습니다. 타시는 그녀에게 강압적으로 성폭력을 행사했고, 이후에도 결혼을 약속하며 몇 차례의 성관계를 이어갔죠. 그러나 타시는 결국 결혼을 거부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르테미시아의 아버지는 타시를 법정에 고발했습니다.
재판 과정은 잔혹했습니다. 아르테미시아는 그녀의 증언이 신빙성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엄지손가락을 죄는 고문을 견뎌야만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까지 진실을 밝히며 싸웠습니다. 결국 아르테미시아의 “순결”을 빼앗고, 그녀 집 안의 그림을 훔친 게 밝혀진 타시는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당시의 법적 시스템은 그에게 실질적인 처벌을 가하진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아르테미시아에게 큰 상처를 남겼지만, 그녀는 이를 예술로 승화시키며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강력한 동력을 얻었다고 해요.
젠틸레스키의 작품 속 여성들은 이러한 개인적 고통과 경험을 반영하며 강인하고 주체적인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대표작 중 하나인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에서는 남성을 제압하는 여성의 강력한 이미지를 통해 자신이 겪은 억압과 분노를 예술적으로 표현했어요. 바로크 시대 여성의 이미지는 종종 선정적으로 표현되었지만, 젠틸레스키는 그 틀을 깨뜨렸습니다. 그녀는 작품을 통해 여성의 힘과 존엄성을 강조하며, 남성 중심의 예술계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왕실 화가, 자신을 그리다
👩🎨 엘리자베트 비제 르 브룅
Élisabeth Louise Vigée Le Brun, Self-Portrait, 1790,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Italy.
엘리자베트 비제 르 브룅(1755~1842)은 18세기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초상화가였습니다. 그녀는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포함해 귀족들과 부유층의 초상화를 그리며 프랑스 궁정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죠. 하지만 그녀가 남긴 수많은 초상화 중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1790년에 그린 자화상이에요.
이 자화상에서 르 브룅은 우아한 검은 실크 드레스를 입고, 붓과 팔레트를 든 채 캔버스 앞에 서 있습니다. 그녀가 그리고 있는 인물은 바로 그녀의 후원자였던 마리 앙투아네트입니다. 르 브룅은 이 자화상을 통해 단순히 화가로서의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 왕실 화가로서의 권위와 명성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당시의 그녀는 프랑스 왕가의 총애를 받는 화가였으며, 이 자화상은 그녀의 사회적 지위와 예술적 능력을 동시에 상징하고 있죠. 😎
르 브룅은 인물을 이상적으로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초상화 속 인물들의 고유한 성격과 아름다움을 더욱 부각시켜 표현했습니다. 그녀가 그린 여성들은 모두 우아하고 생동감 넘치며, 풍부한 색감으로 그들의 매력을 극대화했어요. 30점이 넘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에서 왕비는 따뜻하고 자애로운 어머니로 그려졌는데, 이는 당시 그녀를 둘러싼 여러 부정적인 소문을 상쇄시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죠.
르 브룅은 프랑스 혁명 이후에도 유럽 여러 나라를 떠돌며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폴란드의 왕,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 등 당대 유럽의 주요 인물들의 초상화도 그녀의 손을 거쳐 탄생했어요. 프랑스를 떠나 있었던 시기에도 그녀의 명성은 유럽 전역에 퍼졌습니다.
자화상에 담긴 여성성과 정체성
👩🎨 암리타 셰르길
Amrita Sher-Gil, Self-Portrait as a Tahitian, 1934, Kiran Nadar Museum of Art, New Delhi, India.
암리타 셰르길(Amrita Sher-Gil, 1913~1941)은 '인도의 프리다 칼로'로 불리며, 현대 인도 미술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습니다. 셰르길은 헝가리에서 태어나 시크 귀족인 인도 아버지와 헝가리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고, 16세에 파리로 건너가 본격적인 미술 교육을 받았죠. 유럽에서 미술을 배우던 중, 그녀는 인도의 전통 예술에 대한 갈망을 느끼기 시작했고, 결국 인도로 돌아와 그곳의 일상과 전통을 현대적 시각으로 표현하게 됩니다.
1934년에 그린 <타히티 여인으로서의 자화상>에서 셰르길은 서구 화가인 폴 고갱이 이상화한 타히티 여성상을 정면으로 비판합니다. 고갱이 타히티 여성을 외부 시선으로 관찰하고, 대상화한 반면, 셰르길은 이를 거부합니다. 그녀는 관객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자율적 인물로 자신을 그려냈어요. 이는 여성성을 강요하는 서구 미술의 관습에 저항하는 상징적 표현이었고,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강렬한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
셰르길의 자화상은 그녀가 여성이기 전에, 인도와 서양 두 세계를 동시에 아우르는 예술가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서구 미술에 대한 저항, 혼혈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인도 여성으로서의 자긍심이 모두 담긴 그녀의 자화상은 관객에게 고정된 시선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깊은 사색을 불러일으킵니다.
안타깝게도 셰르길은 1941년, 첫 대규모 개인전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어요. 그녀의 죽음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지만, 그녀의 작품들은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길을 개척한 위대한 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내면의 혼란을 추상으로 풀어낸 화가
👩🎨 최욱경
자화상을 표지로 그린 최욱경 시집 ‘낯설은 얼굴들처럼’
<나의 이름은>
한때에 나의 이름은 낯설은 얼굴들 중에서 말을 잊어버린 '벙어리 아이'였습니다. (…)
결국은 생활이란 굴레에서 아주 조그마한 채 이름마저 잃어버린 '이름 없는 아이'랍니다.
— 최욱경
최욱경(1940~1985)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이자, 글로벌 아트 씬의 숨은 거장입니다. 그녀는 1940년 서울에서 태어나 198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화폭에 고스란히 담아냈어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겪은 문화적 충돌과 개인적 고민을 작품에 녹여내며, 이미지와 텍스트를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매개체로 활용했습니다.
1960년대 그녀는 잭슨 폴록과 빌럼 데 쿠닝 등으로부터 영감을 받았으나, 단순히 미국식 추상 표현주의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그런 최욱경의 자화상은 이방인으로서의 불안과 정체성의 혼란을 담은 작품들로 남아 있어요.
최욱경이 거울 앞에 선 듯,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담아낸 <자화상>(1967)은 보는 이에게 그녀의 내면세계로의 초대장을 건네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최욱경 시집 '낯설은 얼굴들처럼'의 표지로도 쓰이며, 화려한 색채와 대담한 붓질로 보는 이로 하여금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어요. 😵💫
최욱경, 나는 세 개의 눈을 가졌다, 1966년, 종이콜라주에 잉크, 106X106cm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또, 1960년대에 그린 작품 중 하나인 <나는 세 개의 눈을 가졌다>는 그녀가 겪은 인종차별과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담은 상징적인 작품입니다. 종이를 잘라 붙인 콜라주 기법으로 제작한 이 작품에서 그녀는 'WOOK', 'KYUNG', 'ROOK' 이라는 단어를 써서, 세 개의 눈을 가진 존재로 자신을 표현했는데요. 이는 자신이 느꼈던 이질감과 외부의 시선 속에서 정체성을 찾으려는 갈망을 나타내는 동시에, 미국에서 외국인 여성으로 살았던 자신의 경험을 상징합니다.
이 작품은 비록 얼굴을 묘사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느꼈던 감정과 시대적 고민을 그대로 드러낸 점에서 그녀의 모습이 보여 자화상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욱경은 항상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두려워하면서도, 이 질문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경험한 불안과 혼란을 그림에 담았고, 그 과정에서 추상이야말로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진솔한 방법임을 보여주었죠. 그녀가 자신을 그리는 것은 고독하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느낀 감각과 감정을 색과 형태로 풀어내는 과정은 자신과 세상을 연결하고자 하는 시도였을 것입니다. 🖌️
지금까지 살펴본 다섯 명의 여성 화가들은 자화상을 통해 시대와 맞섰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자신의 얼굴을 그린 것이 아니라, 내면의 고민과 세상을 향한 도전까지 화폭에 담았어요. 여러분도 이번 명절 연휴에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보는 건 어떨까요? “나는 누구인가?”
👩🎨 소포니스바 안귀솔라
👩🎨 아르테미시아 젠틸렌스키
—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한 고객에게 보낸 편지에서
👩🎨 엘리자베트 비제 르 브룅
👩🎨 암리타 셰르길
👩🎨 최욱경
나의 이름은
낯설은 얼굴들 중에서
말을 잊어버린 '벙어리 아이'였습니다. (…)
결국은
생활이란 굴레에서
아주 조그마한 채
이름마저 잃어버린 '이름 없는 아이'랍니다.
↪ [Vol.178] 🍋 삶이 너에게 레몬을 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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