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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57] 나는 누가 드립 페인팅을 시작한 지 알고 있다

2021-08-12
잭슨 폴락? ❌ 정답은 OO OO❗️

예술이 배달 왔어요 💌
2021.08.12 Vol. 57

잭슨 폴락에게 영향을 준 예술가, 자넷 소벨

Janet Sobel, Untitled, 1946, [사진 출처: Pinterest]
20세기 중반, 알코올 중독을 이겨내고 드리핑 기법(그림물감을 캔버스 위에 흘리거나 붓든지 또는 튀겨서 제작하는 회화기법. 20세기 초, 에른스트가 처음 시도한 것으로 알려짐)을 선보이며 미국 현대 미술의 한 획을 그은 잭슨 폴락. 하지만 오늘은 그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위대한 화가 잭슨 폴락이 드립 페인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미술관에서 한 작품을 본 뒤부터였습니다.🧐

폴락에게 영향을 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여성 예술가였지만, 1940-50년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예술 시대를 주도한 (백인) 남성 예술가들에게 가려져 소외되었던 히든 아티스트 자넷 소벨👩‍🎨 그녀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1. 자넷 소벨, 그녀는 누구인가?

자넷 소벨의 생전 모습, c. 1944. Courtesy of Gary Snyder Fine Art, New York, NY, USA.
1893년 5월 31일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자넷 소벨은 1908년 반유태인 운동으로 인한 러시아 폭동으로 아버지를 여읜 후 가족들과 함께 뉴욕 브루클린으로 이주했습니다. 어렸을 적 자넷은 배우가 되고 싶어 하기도 했으나 영어를 읽거나 쓰는 것을 배우지 못해 꿈을 접었습니다. 17살 때, 맥스 소벨을 만나 결혼했고 뉴욕에서 전통적인 주부이자 어머니로서의 삶을 이어나갔습니다.🤱

놀라운 점은 소벨이 43세가 되어서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막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땐 이미 다섯 명의 장성한 자녀들을 둔 엄마였고, 자녀들 중 일부는 이미 아이가 있어 그녀는 할머니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볼 때엔 교외에 사는 평범한 주부가 예술에 입문한 것이었죠.


2. 예술에 꽃을 피우다

Janet Sobel, Untitled, ca 1946,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NY, USA.
가정 주부였던 소벨은 미술 교습을 한 번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완전히 독학으로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에겐 학습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 큰 손해일 수 있겠지만, 소벨은 덕분에 자신만의 예술과 회화 과정을 발명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그녀가 당시 현대 추상표현주의자들과의 차별점이었습니다. 다양한 제스처를 선보이고 공간을 장악하며 무엇일지 모르는 작품을 그리는 점에선 그녀도 다른 추상표현주의자들과 비슷했습니다. 여기에 소벨은 의상 장식용 보석류를 판매하는 남편으로부터 얻은 에나멜페인트와 유리 조각 같은 재료들을 이용해 독특한 질감을 표현하곤 했죠. 사실, 그 이전부터 우편물, 세탁소에서 가져온 마분지, 손녀가 그리던 그림 노트 위에 그림을 덧 그리는 등 다양한 재료로 실험들을 해왔고, 이러한 경험이 그녀의 작품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했습니다.

사실 소벨이 예술계에 입문하게 된 일화는 다소 재밌습니다. 소벨의 아들 솔은 1930년대 후반 노먼 록웰, 조지아 오키프, 마크 로스코 등이 동문으로 있는 맨해튼의 학생 예술 연맹에 속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소벨이 솔의 그림 중 하나를 비판하자 솔이 붓을 던지며 “그럼 엄마가 직접 그려봐!”라고 외쳤고 소벨이 대신 그림을 그렸는데 그 그림이 너무나 훌륭했던 거죠.🤭

솔은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어머니가 그린 그림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대학원의 미술 교수, 막스 에른스트, 마르크 샤갈 같이 유명한 미술계 인사들에게 어머니의 작품을 소개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후, 그녀의 작품은 호평을 받아 미술 콜렉터 페기 구겐하임의 맨해튼 미술관에서 열린 1945년 그룹 쇼 “The Women”에 출품했습니다. 구겐하임은 소벨을 “최고의 여성 화가”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Janet Sobel, Milky Way, 1945,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NY, USA.
구겐하임 쇼는 소벨에게도, 또 잭슨 폴락에게도 큰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폴락이 전시회에서 그녀의 작품을 보고 큰 인상을 받으며 얼마 뒤에 드리핑 기법을 이용한 액션페인팅 작품을 선보인 것이죠. 당시 폴락에게 영감을 줬던 작품들 중 “Miky Way(은하수)”가 대표적입니다. 캔버스 표면엔 다양한 색상의 페인트가 튀어 떨어지고 소벨이 재빠르게 움직이며 완성한 실행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다양한 색상으로 혼란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구성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검은 밤하늘에 밝은 은하수가 펼쳐진 듯하네요.🌠  현재 이 작품은 MoMA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자넷 소벨의 "Milky Way"의 구성과 기술면에서 유사성을 보이는 잭슨 폴락의 "Blue Poles", 1952, 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Canberra, Australia.

3. 잊혀진다는 것

자넷 소벨이 생전에 작업하던 모습, Wikipedia
아들 솔의 영향으로 많은 예술가, 비평가, 미술계의 중요 인물들에게 관심을 받던 소벨이었지만, 그녀의 인기는 1943년부터 1947년까지가 전부였습니다. 1946년, 소벨의 가족은 뉴욕에서 뉴저지로 이사했고, 그녀의 작품에 대한 예술계의 떠들썩한 분위기는 그녀가 떠나간 거리만큼이나 멀어져 갔습니다.🚛

또한, 많은 관심 이면에는 그녀를 예술가로서 인정하지 않고, 단순히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가정주부라는 시선이 있었습니다. 저명한 미술 비평가인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잭슨 폴락의 드립 페인팅 기술은 칭찬하면서도, 자넷 소벨의 작품은 “원시적”인 “가정 주부”의 작품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휴스턴 대학의 현대 미술 부교수인 산드라 잘만 또한 소벨을 첫 번째로 할머니, 두 번째로 주부, 세 번째로 예술가라고 칭했습니다. 잘만은 덧붙여 얘기합니다.
🗣 “그녀는 아웃사이더라는 이유로 주목을 받았지만 결국 아웃사이더라는 이유로 금방 잊혔습니다. 폴락은 전형적인 미국 예술가였습니다. 검은 옷을 입고, 몸을 웅크리거나 캔버스 위에 서서 역동적으로 페인트를 던지고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죠. 반면에 소벨은 하이힐과 스타킹을 신고 아파트 바닥에 엎드려 캔버스 위로 붓을 흔들어 페인트가 떨어지는 것을 수동적으로 지켜봤습니다.”

당대 추상표현주의 무브먼트가 남성 중심 사조였던 점과 소벨이 예술교육을 받지 않은 원시 미술가였던 점, 주류 미술관 및 갤러리들이 모여있는 뉴욕으로부터 멀어진 이유로 잭슨 폴락에게 드립 페인팅의 유명세를 넘겨주며 서서히 잊혔습니다.


💬
"그녀는 멈출 수 없는 창의성으로 폭발하고 있었습니다.”
- 자넷 소벨의 손녀

🙋‍♀️

자신이 먼저 발견하고 노력하여 이룬 성과가 점차 잊히며, 다른 사람의 이름을 거쳐 불려지는 자넷 소벨이 처음엔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있었기에 현대 미술에 한 획을 긋는 위대한 예술가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그녀가 자기 자식들의 어머니일 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가들의 어머니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새로움을 발견한 자넷 소벨도, 발견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아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낸 잭슨 폴락도 모두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들일 것입니다. 그런 그들을 기리며 세상에 좋은 요소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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