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렌즈로 예술을 들여다본다: 유임주 교수와의 대화

『클림트를 해부하다』 예술 속 숨겨진 생명의 신비를 찾아


유임주 교수의 저서 《클림트를 해부하다》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에 숨겨진 생물학적 도상, 즉 '클림트 코드'를 해석하며 인간의 탄생부터 죽음까지를 탐구합니다. 이 책은 클림트와 그의 시대를 새롭게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하며,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교수님의 연구와 세심한 해석을 통해 클림트의 작품을 새로운 빛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어지는 인터뷰에서 유임주 교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이 책의 탄생 배경, 클림트 작품에 대한 해부학적 접근의 의미, 그리고 예술과 과학의 상호작용에 대한 깊은 통찰을 공유합니다.


클림트의 '키스'에 나타난 생물학적 요소를 최초로 발견하고 연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이러한 아이디어를 어떻게 형성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2006년 우연히 듣게 된 한 강연이 계기였습니다. 200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에릭 캔델 교수님의 강의였는데, 그 강연을 통해 구스타프 클림트가 정자, 난자 등의 생물학적 요소들을 작품에 표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2012년에 캔델 교수님이 《통찰의 시대(Age of Insight)》라는 책을 쓰셨는데, 그 책 역시 클림트의 작품과 생물학적 아이콘에 대한 내용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잊고 살다가 코로나19로 세상이 뒤숭숭했던 2020년, 우연한 기회에 부산 소재의 한 디지털 아트뮤지엄(뮤지엄 원)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곳은 유명한 미술작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디지털화한 화면을 통해 대중이 쉽게 작품을 접할 수 있도록 기획 전시를 열고 있었는데,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니 클림트의 〈키스〉와 〈다나에(Danae)〉 두 작품이 보였습니다. 원본 그림에 약간의 동적 요소를 넣은 동영상이었어요. 관람을 마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디지털 액자로 만들어진 테이블에서 〈키스〉와 〈다나에〉의 그림이 반복적으로 상영되었습니다. 이때 저의 잠재의식 속에 들어 있는 해부학적 상징들이 마구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두 그림에 박혀 있는 무수히 많은 정자, 난자, 수정란 그리고 주머니배를 발견했습니다. 캔델 교수가 강연과 책에서 언급한 내용들이 실제 저의 눈에 목격된 것입니다.


이후 저의 관찰을 확인하기 위해 캔델 교수님의 책을 줄을 그어가면서 꼼꼼하게 읽게 되었는데, 저의 발견이 캔델 교수님의 책에서 아직 충분히 다루지 않은 흥미로운 내용을 품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바로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클림트가 그의 작품에 해부학적 지식과 의학적 발견을 어떻게 통합했는지에 대한 예시를 들어주실 수 있나요?


클림트는 작품 하나를 구성할 때도 치열하게 연구했던 작가입니다. 클림트의 서재에는 다양한 서적들이 비치되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동물의 자연사》라는 그림이 풍부한 일종의 백과사전이었습니다. 제가 책을 구해서 살펴보니, 클림트가 이 책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클림트는 이 책의 그림을 참고하여 〈베토벤 프리즈〉 속 ‘티포에우스’라는 괴물을 형상화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희망 I〉을 보면 가오리처럼 보이는 물고기, 노토사우루스 같은 공룡의 이빨, 개구리알 그리고 다양한 선형동물이 그려져 있습니다. 또 〈법학〉과 〈베토벤 프리즈〉에 나오는 세 악녀의 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구불거리는 구조도 선형동물의 형태와 유사합니다. 클림트가 당시 의과학적 자료들을 참고해 작품을 구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또 한 가지, 클림트는 어떻게 의과학적 지식에 정통했을까요? 그것은 1900년대 초 오스트리아 빈의 독특한 살롱문화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클림트는 지금으로 치면 ‘인플루언서’라고 할 수 있는 베르타 주커칸들이 주도하는 살롱을 출입하면서 많은 지식을 얻었고, 특히 베르타의 남편인 빈 대학 해부학 교수, 에밀 주커칸들과의 교류를 통해 최신의 해부학, 조직학, 발생학적 지식을 얻게 됩니다. 클림트의 요청으로 주커칸들 교수는 예술가를 위한 해부학 강연을 열게 되는데, 이때 해부학적 지식뿐 아니라, 다윈의 진화론과 다윈의 사도로 알려진 헤켈 교수의 연구 내용을 자세히 다뤘습니다. 특히 헤켈 교수의 책에서 참고한 강의용 슬라이드를 많이 활용했습니다.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헤켈 교수의 저작 《인류발생, 또는 인간 발달의 역사: 세균과 부족의 역사》에 들어 있는 정자, 난자, 수정란, 오디배, 주머니배, 태아, 태아막 등의 삽화들이 클림트의 상상력을 자극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러한 내용은 〈키스〉, 〈다나에〉, 〈희망 II〉 등의 작품에 아이콘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번 책에서 흥미로운 자료들과 함께 이 내용을 자세히 다루고 있으니 살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클림트의 작품에서 발견된 과학적 요소들은 당시의 의학 및 과학 발전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나요?


17세기 중반에는 과학이 놀라운 속도로 발전해 인류는 새로운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망원경의 발명은 인간을 더 멀리 있는 세상과 우주로, 현미경의 발명은 인간을 더 미세한 소우주의 세계로 인도해 주었습니다. 특히 현미경은 식물의 세계, 동물의 세계만이 생물 구성의 전부라고 믿었던 당시의 인류에게 ‘미생물의 세계’를 깨우쳐 주었습니다. 또한 그동안 맨눈으로 사물을 관찰하던 연구자들에게 세포 수준에서 일어나는 이벤트를 포착할 수 있는 획기적인 도구가 되어주었어요.


특히 인류는 현미경을 통해 1677년에 처음으로 정자를 발견했고, 그 후 150년이 지난 1827년에 난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후 과학자들은 정자와 난자의 역할, 생명체의 발생에 대한 치열한 논쟁과 연구를 진행했어요. 결국 20세기를 목전에 두고 정자와 난자가 생명 발생에 모두 관여하며, 세포의 핵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정상적인 수정 과정에는 하나의 정자와 하나의 난자만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수정란이 분열을 시작하여 새로운 생명체로 성장하는 전 과정을 이해하게 되죠. 이 놀라운 서사가 클림트의 작품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키스〉에는 정자, 난자, 수정란, 오디배가 아이콘으로 표현되어 인간 발생의 첫 3일을 보여주고 있어요. 또 〈다나에〉와 〈희망 II〉에는 초기주머니배, 후기주머니배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예술과 과학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 보여주려 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예술가들이 교수님의 연구에서 어떤 영감을 얻을 수 있을까요? 또한 현대 과학이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과학자나 예술가 모두 그 방법은 다르지만 결국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는 전문가들입니다. 질문해 주신 부분에 대하여 20세기 최고의 과학자와 예술가의 말을 인용하여 답변을 드리고자 합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말입니다. “나는 상상력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예술가다.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다. 지식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상상력은 세상의 모든 것을 끌어안는다. 위대한 과학자는 위대한 예술가와 같다. 상상력은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위대한 예술가는 과학자와 같다.”


위대한 예술가 파블로 피카소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 그림들은 연구이자 실험이다. 나는 예술 작품으로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내가 하는 모든 건 연구다.”


두 거인의 말씀으로부터 결국 예술과 과학의 본질은 깊이 맞닿아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을 이해하고 잘 표현하기 위해서, 과학은 예술적 상상력을, 예술은 과학적 실험정신을 발휘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다양한 분야에서 힘쓰고 있는 전문가들이 보다 자유롭게 교류하고, 서로의 학문을 배우고 통섭한다면 새롭고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가장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좋은 질문이네요. 제가 처음 이 책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는, 제가 알게 된 놀라운 내용을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이번에 〈키스〉 관련된 연구를 하고, 이 책을 쓰면서 스스로가 많이 변했다는 걸 느낍니다. 사실 저는 그림에 대해 잘 모르고 잘 그리지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클림트라는 작가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고요. 위대한 화가로는 알고 있었지만, 조금 외설스럽다고 생각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연구를 진행하면서, 클림트가 결코 ‘포르노 작가’가 아니라 ‘인간의 생로병사’라는 주제를 깊이 다루며, 그림에 당대의 의과학적 성취를 녹여낸 위대한 철학자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클림트의 작품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추천사를 써 주신 최재천 교수님께서 즐겨 하시는 말씀, “알면 사랑하게 된다”를 깊이 체감하는 경험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것은 클림트라는 거장을 키워낸 1900년대 빈의 환경입니다. 당시에는 여러 학문 분야의 전문가들이 앞서 말한 살롱에서 활발한 소통을 하며 융합적 사고를 키워나갔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창조력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저는 현재를 살고 있는 지금도 창의적 발전을 위해 경계 없는 교류와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자신이 몰두하고 있는 분야가 있다면, 클림트가 그러했던 것처럼 경계 없이 상상하고 여러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연구자이자 교육자로서 늘 그런 점을 배우고 있습니다.


클림트를 해부하다
유임주 글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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